거액 보상금? 세월호 유족들이 거리에 나선 이유

2015-04-07     허완

자식을 잃은 ‘잔인한 4월’에 부모는 다시 길바닥에 앉았다. “돈 몇 푼 더 달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머리까지 밀었다. 아이 학생증을 목에 건 엄마·아빠의 머리카락이 전동이발기에 뭉텅뭉텅 잘려나가던 4월2일. 그날은 단원고 희생 학생의 배·보상금이 평균 8억2천만원이라고 정부가 발표한 다음날이었다. 자식 목숨을 앞세워 돈이나 더 챙기려는 비정한 엄마·아빠로 몰아가지 말고 “억울하게 숨진 내 새끼가 왜 그렇게 죽었는지부터 밝혀달라”고 울부짖었다.

반면 600만 명에 가까운 국민이 서명해 제정된 세월호 특별법은 풍전등화다. 정부가 특별조사위원회를 공무원이 장악한 관제 기구로 전락시킬 내심을 3월27일 입법 예고한 특별법 시행령에서 공개했다. 이석태 위원장은 “(사퇴는) 아직,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앞으로의 행보는 국민의 뜻에 따라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입법 예고 기간(4월6일)이 끝나면 차관회의(4월9일)와 국무회의(4월14일)를 거쳐 정부 시행령을 확정할 모양이다. 꽃다운 304명의 목숨이 세월호와 함께 침몰한 지 1년, 대한민국은 그대로다.

- 취재 정은주·송호진 기자, 편집 구둘래 기자, 사진 김진수 기자, 디자인 장광석

‘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4월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비닐로 몸을 싸고 밤을 지새우고 있다. 세월호 유족들은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철회 등을 요구하며 ‘416시간 노숙 농성’을 진행 중이다.

해양수산부가 전날 보도자료를 내어 세월호 희생자 배·보상 기준을 발표한 것을 대부분 그대로 실었다. 일부 언론은 배·보상금 규모를 천안함 희생자의 그것과 비교하기도 했다.

현재 유족이 반대하는 정부 시행령은 두 종류가 있다. 첫째, 지난 3월27일 해양수산부가 입법예고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진상조사)이 있다.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위)의 활동과 규모를 대폭 축소하는 내용이다. 정부가 강행처리할 가능성이 높지만, 그래도 번복될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다.

두번째 시행령(배·보상)이다. 배·보상금 기준과 신청 절차 등을 담은 내용이다. 입법 예고와 국무회의까지 거쳐 이 시행령은 이미 3월29일 발효됐다. 지난 3월30일, <인터넷 한겨레21>은 이 시행령에 따라 정부가 유족들에게 위자료로 8천만원을 제시했다는 점을 단독보도했다. 이 시행령을 개정하지 않는 한, 정부의 이런 방침은 바뀌지 않는다.

1. 배·보상이 많다고?

이 때문에 세월호 유족들은 거액을 수령하게 된 것으로 비쳐지고 있다. 그러나 이 배·보상액은 단언컨대 최저 수준이다. 정부는 20년 전 사건의 배·보상금과 비교해 설명했지만, 정작 세월호 참사 전후에 발생한 대형 사고와 비교해보면 실체가 드러난다.

법률가들은 그 어떤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세월호 유족들이 ‘엄청난’ 배·보상금을 받는 것은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오세범 변호사는 “대형 사고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유는 생명의 가치를 하찮게 여기기 때문이다. 희생된 가족이 살아 돌아올 수 없지만 그 가치라도 제대로 책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2. 유족을 배제한 결정

하지만 세월호 피해 구제 특별법은 배·보상금 기준을 세월호 배·보상 심의위원회(배·보상 심의위)에서 결정하도록 했다. 첫 회의는 3월31일에 열렸다. 바로 그날 기준을 의결했다.

단원고 학생 고 박수현군의 아버지 박종대씨가 묻는다. “희생된 우리 아이들 250명이 살아 있으면 모두 막노동꾼이 됐을 것이라는 얘기입니까?”

3. 월급은 막노동자 수준

그런데 여기서 단원고 학생들의 예상 소득은 단순 건설노동자 수준(월 193만원)을 적용했다. 최저 수입이다. 단원고 교사 희생자는 사고 당시 소득을 기준으로 계산했다. 그 결과 학생 희생자보다 배·보상금이 3억원 정도 많아졌다.

4. 위자료는 교통사고 수준

김희수 변호사는 “어이가 없다”고 했다. “교통사고는 개인과 개인 사이에 발생한 우연한 사건이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는 선박 도입과 운행, 구조 과정에서 국가의 잘못이 명백하다. 교통사고와 단순 비교할 수 없는 문제다.” 세월호 가족대책위를 지원하는 황필규 변호사는 “정부가 세월호 참사가 교통사고에 불과했다고 공언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부가 최근 재해·재난 사건보다 훨씬 적은 위자료를 내놓고 ‘어디 한번 당해봐라’라는 심산이다.”

5. 부풀려 알려진 배·보상금

하지만 국민 성금은 모금한 단체가 어떻게 배분할지 결정할 권한을 갖고 있다. 이에 따라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포함한 각 단체에서 성금 배분을 준비한다. 그런데도 정부가 배·보상 기준을 발표하면서 “대구 지하철 참사나 천안함 사건 같은 경우 국민 성금 배분 비율을 보면 대략 60~70%를 위로지원금에 사용하고 나머지 금액은 재단 설립 등에 사용했다”며 ‘3억원’이라고 단정한 것이다.

이로부터 1인당 배·보상액이 8억2천만원이라는 수치가 나왔다. 일부러 부풀린 것 아니냐는 지적에 박경철 해수부 세월호 피해·보상 지원단장은 “언론에서 총 지급액을 말해달라는 요구가 많아 취합했을 뿐 별다른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배·보상금을 받았는데 나중에 국가가 저지른 불법행위가 밝혀지면 어떻게 될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배·보상금, 위로지원금 지급 결정에 동의할 때 국가와 신청인(피해자)이 민사소송법상 재판상 화해가 성립한 것으로 본다”고 돼 있다.

6. 국가의 돈은 없다

그런데 이 돈은 국가가 부담하는 것이 아니다. 박경철 단장은 “일단 국비로 지급한 뒤 청해진해운과 세월호 소유주인 유병언 일가를 비롯한 사고 책임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해 받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정부는 구상권 청구를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우선 검찰이 법원에 1244억원의 재산에 대한 추징 보전을 청구했다. 추징 보전이란 법원이 몰수 또는 추징을 선고할 것을 대비한 재산 처분을 금지하는 조치다. 민사상 가압류와 비슷하다. 법무부도 재산 1282억원을 가압류했다. 대상은 유병언 일가뿐 아니라 차명 부동산 명의자나 이준석 선장 등 세월호 선박직 직원, 청해진해운 임직원 등의 재산이다.

청해진해운 입장에선 세월호 여객 1명당 최대 3억5천만원, 사고당 총 3억달러(약 3천억원) 한도로 여객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한 상태다. 청해진 해운만이 아니라, 보험자인 한국해운조합이 배상책임을 나눠지는 셈이다. 어느 쪽이 됐건, 이들의 재원이 충분하므로, 정부는 우선 국비로 지급하겠다는 배·보상금을 나중에 모두 돌려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정부도 ‘공동 불법행위자’로 배상 책임을 질 수 있는 상황이다. 승객 퇴선 유도를 하지 않는 등 부실구조를 했다는 혐의로 김경일 전 목포해경 123정장이 이미 1심에서 유죄(징역 4년)를 선고받았다. 김 전 정장의 유죄가 확정되면, 이에 대한 국가의 책임도 결정된다. 국가에 얼마만큼의 책임이 있는지는 구상권 청구소송에서 밝혀지겠지만, 일단 현재의 배·보상 기준을 마련 과정에선 이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었다.

7. 국가와 화해하라?

이 내용은 세월호 특위 활동 전체를 사실상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세월호 특위의 진상 조사 결과는 물론 세월호 재판도 확정되기 전에 배·보상이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특위 활동 기간은 최장 1년6개월인데 해수부가 3월27일에야 시행령을 입법 예고해 아직 출범도 못했다. 세월호 선원, 청해진해운 임직원, 김경일 전 정장의 재판은 광주고법에서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세월호 참사 피해 구제 특별법’(제16조)을 보면, “배·보상금, 위로지원금 지급 결정에 동의할 때 국가와 신청인(피해자)이 민사소송법상 재판상 화해가 성립한 것으로 본다”고 돼 있다. 똑같은 조항이 들어 있는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대해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지난 1월 배상을 거부하는 판결을 내놓았다. 유신헌법에 반대하다 불법연행, 고문 끝에 ‘문인간첩단’으로 조작돼 옥고를 치른 소설가 이호철씨가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였다. 그는 생활지원금을 받았을 뿐이지만 법원은 피해 일체를 국가와 화해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1993년 10월 292명이 숨진 서해훼리호 사건에서 정부는 9910만원을 일괄 지급했다. 이 금액은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는 전제로 산정됐다. 희생자 10명의 유족 45명은 이를 거부하고 국가와 한국해운조합 등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해 5년 만에 4억4800만원을 받아냈다. 법원이 국가를 ‘불법행위자’로 인정해 서해훼리와 한국해운조합이 공동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또 희생자뿐 아니라 그의 배우자와 자녀들에게도 각각 위자료 4500만~5900만원과 3천만~3900만원을 지급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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