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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이 어때서 | 언니가 돌아왔다
ⓒgettyimagesbank

언니가 돌아왔다. 나이 마흔을 가뿐이 넘기고 올해 중학생이 될 첫째 딸과 두 살 아래 둘째 딸과 함께. 그리스 신화 속 영웅 오디세우스는 20년의 장장한 모험 끝에 아내가 기다리는 고향으로 돌아왔다는데, 나는 13년 만에 다시 싱글이 되니 비로소 돌아온 기분이 든다. 대대손손 널리 읽힐 장편 서사시는 안 되어도, 인생의 가장 지난한 여행담쯤은 될 법한 결혼 생활을 남기고서. 그래도 중요한 건, 내가 돌아왔다. 장렬히 두 손 벌려 세상에 외치고 싶을 만큼 후련하지만, 나를 맞이하며 환호해줄 관중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 결혼은 그토록 축복받는 의식인데, 이혼은 왜 이토록 쓸쓸해야만 할까.

며칠 전, 오랜만에 엘에이 한인 타운에 나갔다가 상가 주차장에서 지인과 마주쳤다. 7년여 전, 한 친구를 통해 알게 된 분이었다. 간만에 만나 반갑게 인사를 드리니 보자마자 하시는 말씀이,

"M(공통 친구 이름)이랑 연락하세요?"

"아니요. 저도 연락 안 한 지 벌써 4년이 넘어요."

"정말 연락 안 하세요? 소식 못 들었어요?"

"네."

"나도 못 본 지 오래 돼서. 사람들이 그러는데, 그 친구 이혼했다고 하던데."

"아, 예. 저는 잘 모르는 일인데요."

"이혼했다고 하던데."

"글쎄요. 저도 연락을 안 해서."

그녀는 안타까운 일이라는 듯 얼굴을 찡그려 보였다. 나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를 보내고는 내 차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누군가의 삶에 있어 중요한 결정이 어떤 이에게는 가벼운 가십거리가 되는구나.

삶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적당히 아는 사람들과 마주하는 일이 피로해지는 것은, 구차하게 먼저 나서서 변명해야 할 것 같은 부담 때문이다. 이미 남들의 관점으로 해석된 이야기를 두고, 당신이 바라보는 바와 다르다는 것을 굳이 설명하고 싶게 만드는 상황이 불편하기도 하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만나는 엄마들의 반응은 조금 다르다. 그녀들도 물론 궁금해 한다. 다만 화제를 이어가는 방식은 다르다. 이혼을 두고 함부로 자신의 해석을 섞지 않는다. 연민이든 호기심이든 관심을 함부로 드러내는 일이 무례함이 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당사자에게 불행인지 아닌지를 미리 판단하지 않는다. 덕분에 그들과의 소통은 좀 더 수월한 편이다. 학교 선생에게 사실을 알릴 때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의 환경 변화를 알려야 하기에 소식을 전해주면 대답은 간단하다. 네, 잘 알겠습니다. 그에 관한 대화를 더 이어갈지 말지는, 상황의 당사자가 결정할 수 있도록 거리감을 유지한다. 상담 내용은 오직, 아이들에게 집중된다. 나의 구구절절한 이혼 이야기가 섞일 필요는 없다.

이혼은 중대한 삶의 변화이자 결정이지만, 무작정 애도의 표현을 받아야만 하는 일은 아니다. 이혼했다고 해서 이전의 결혼 생활이 모조리 실패나 불행이라는 표식을 달아야 할 이유도 없다. 남편이 개자식이어서, 아내가 쌍년이어서 맞이하는 파경은 생각보다 드물다. 우리의 경우, 살다 보니 함께 하는 생활이 더 이상 즐겁지 않아졌고 그것을 넘어서 커다란 고통이 되었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오히려 이혼을 함께 받아들이게 되자, 차라리 해방감을 느꼈다. 이혼은 어쩌면, 고통에의 출구이기도 했다. 새로운 고통과 불편함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감당할 만했다. 때로는 오래된 고통보다 새로운 고통이 더 견딜 만도 하니까. 수동적 반복은 사람을 침잠하게 하지만, 능동적 나섬은 두려움과 함께 삶의 동력을 선사한다. 적어도 내 힘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자부심이 내게는 큰 힘이 되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여전히 복잡하고 다양한 결을 지닌 나의 상황이 모조리 "이혼"이라는 사건을 통해 정리되고 바라봐지는 것. 나는 이혼녀가 되는 중이지만(아직 소송 중이다),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고 미국 생활 13년차의 이민자에 글쓰기를 시작한 지 몇 년 안 되는 작가이기도 하다. 적응이 쉽지 않아 좌충우돌하고 있다고 해도, 새로운 삶의 단계에 맞춰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는 중이다. 어렵고 힘들다. 그렇다고 불행하지는 않다. 아니, 불행하다고 하면 또 어떤가. 행복을 구호라도 되는 양 외치면서, 양 옆에 남편과 아이라는 노를 끼고 진 빠지게 저어가던 결혼이란 자맥질에서 벗어나, 나 좀 불행했다고 내뱉는 게 더 홀가분한 걸 어쩌나.

사람이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는 일을 두고 우리는 이유를 묻지 않는다. 결별과 이혼을 두고는 모두들 번거롭게 이유 찾기에 골몰한다. 사랑과 결혼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이별과 이혼은 부자연스러운 일일까. 이별 역시 만남만큼 자연스러운 일은 아닐까. 다만, 즉각적 축복을 이끌어 내기에는 드러나는 풍경이 쓸쓸해 보인다는 것인데, 때에 따라서는 축복이 어울릴 수도 있다. 죽지 않고는 다시 태어날 수 없는 것처럼, 어떤 죽음은 축복이 될 수도 있다.

지난 여름, 어느 여성을 만나 대화를 나누다가 이혼 소식을 알렸다. 그녀는 평온한 얼굴로 대답했다.

"축하해요. 더 멋진 삶이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내가 받은, 이혼에 관한 언급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말이었다.

나는 이혼을 결정하고 새로이 살아나는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 안전한 불행보다는 불안한 가능성을 택했다고 생각한다. 각자에게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 시기마다 또 다른 서사가 있다. 누구보다 사랑했던 남자였고 내 가장 큰 행복의 원천이었던 남자는, 이제는 내게 적당한 실망과 두통거리를 안겨주는 남자와 함께 느슨하게 통합된다. 한 시기가 지나면 또 다른 시기가 온다. 날선 바늘로 무장한 채 온갖 공격과 비난을 퍼부었던 그 사람이 차츰 편안해졌다. 언젠가는 함께 평온해지기를 빈다. 그리고 나는, 이별을 겪는 이들만큼 축원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연말을 맞아 나는 내게 특별한 축하의식을 선물하기로 했다. 내 인생 최고의 멋지고 편안한 여행을 두 딸들과 함께 했다. 신혼여행지로 손꼽히는 보라보라 섬의 어느 리조트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뜨거운 햇살 아래 껍질처럼 얇은 수영복 하나만 걸치고서 쏟아지는 비를 맞아도 닦지 않고 젖고 마르기를 느긋이 반복했다. 결혼 생활 내내 나를 괴롭혔던 불면이 차츰 사라졌다. 물속을 유영하듯 몸의 긴장을 풀고 흐르듯 여행지의 일상을 떠다녔다. 오래 전의 깊은 잠이 되돌아 왔다. 행복과 자유의 감각이 슬며시 몸을 풀고 제 존재를 알려왔다. 자전거를 다시 타듯, 낯설어졌으나 사라지지 않은 감각들이 되살아났다. 다시 균형을 잡고 바람을 싣고 페달을 밟고 리듬을 찾아 달려간다. 비틀대도 괜찮다. 돌아오는 언니들은 그런 법이다. 삶의 진실은 휘청임에 있음을, 어느 시인의 말처럼 흔들려서 삶을 피우는 중인 것임을, 언니들은 알고 있다. 고대 신화보다 더 오래된 언니들의 지혜가 내 몸 안에 이미 있다. 언니들이 돌아오는 중이다. 나는 두 손 벌려 그녀들을 맞이하면 된다.

* 주부생활 2016년 2월호에 "이혼이 어때서"라는 제목으로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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