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라라, 일베하는 그 수습을

'일베'를 무조건 타자화하지 말라는 속 편한 소리들을 보면, 과연 그들은 한국 사회의 진보를 원하는 것인지, 혹은 더 이상의 퇴보를 막아야 한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지금 우리가 '일베의 타자화'를 걱정할 때인가? 그들로 인해 타자화되고 있는 수많은 소수자들은 걱정되지 않는가? '일베에서 '생리대 인증' 같은 소리 하다 걸려도 괜찮다'는 메시지가 한국 사회에 유포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공공연하게 여성 혐오 발언을 유포하던 일베 회원이 공영방송 KBS의 기자직을 수행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잘라라, 일베하는 그 수습을.

2015-04-02     노정태
ⓒ한겨레

1.

일단 사실관계부터 확인해보자.

관련 보도)

자, 이러한 '일베 기자' 논란이, KBS의 입사시험에 있어서 '사상검증'을 강화시킬 것이며, 결국 방향만 다를 뿐 또 하나의 '마녀사냥'을 낳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과연 그 우려는 타당한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문제가 드러난 시점에 이미 '이 건으로 인해 KBS 입사시험에 사상검증이 포함될까 우려된다'는 말을 하는 건, 너무 편한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아,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운영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물론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일은 벌어졌고, 이제는 그런 말을 할 시점이 아니다.

2.

형식이 내용이다. 형식으로부터 자유로운 내용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일베에 글을 쓰면 일베 형식을 따라야 하고, 일베 형식은 여성혐오와 호남혐오를 근간으로 삼는다. 그 사이트에서 통하는 방식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그 자체가 여성혐오 발언을 한다는 말과, 거의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일베 하는 놈'이라는 낙인이 찍힌다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이거 나 알아 나쁜 거야 일베 하는 애들 봤어'라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사전적 정의상 '낙인찍기'에 속하긴 할 것이다. 그런데 '낙인찍기'라고 해서 그냥 '악'이라고만 하지 말고, 질문을 좀 나눠보자.

(2) '일베 하는 애'가 가치관을 갱신하는데 그 낙인이 도움이 되지 않나?

첫째, 일베에서 활발한 사용자 노릇을 한다는 것은, 앞서도 말했듯 그 사이트에서 통용되는 보편적 화법인 여성혐오와 호남혐오를 자연스럽게 구사한다는 것을 뜻한다. '일베 하는 놈'이라는 낙인이 '나쁜' 낙인이라면, 그것은 그 사이트의 언어 자체에 문제가 있고, 사용자가 그 속에서 스스로 빠져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든지 노력하여 벗어던질 수 있고 그래야 한다는 말이다.

오히려 '나는 일베를 했다, 나쁘다'라는 죄책감을 느낄 때, 비로소 스스로의 행동을 다잡고 보다 여성과 모든 사람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바람직한 시민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혐오와 호남혐오. 그 거대한 악을 포괄하는 이름을 '일베'라고 하는 것, 그래서 '타자화'의 효과를 불러오는 것, 그것은 그 자체로 나쁜 일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 사회의 도덕적 기준선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비난받을 소리를 하며 즐기고, 그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뭉친 자들을, 왜 '악'이라고 비난해서는 안 되는가?

당연히 '일베가 안 되면, 오유도 잘라야 하는 거 아냐?' 같은 소리가 나올 것이다. 그런데 그런 소리가 나올까봐 근심하는 행위가 가능한 시점은 진작에 지났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모든 것이 잘 되었다면 모든 사람이 행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묻자. '낙인찍기'는 나쁜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우리는 사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에게 일단 낙인을 찍어야만 한다.

나는 한국 남자다. 그런데 내가 '한국 남자'라는 범주에 속한다고 흔히 여겨지는 이러저러한 악덕을 피하기 위해서는, 일단 그런 범주가 있음을 인정하고, 나 자신에 거기에 속하며, 아무리 발버둥쳐도 근본적으로는 탈피할 수 없음을 명확히 인지해야 한다. '나는 한국 남자 아니거든?' 이라고 우겨봐야, 그것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을 뿐더러, 나 자신의 발전에도 도움이 안 된다.

'너 일베 하냐?' 같은 말을 손쉽게 '폭력'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그 점에서, 오히려 본인들이 지향하는 '일베 회원의 정신적 교화'를 어렵거나 불가능하게 만든다.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해야 기독교적인 참회와 속죄가 가능할 게 아닌가.

4.

'일베'를 무조건 타자화하지 말라는 속 편한 소리들을 보면, 과연 그들은 한국 사회의 진보를 원하는 것인지, 혹은 더 이상의 퇴보를 막아야 한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지금 우리가 '일베의 타자화'를 걱정할 때인가? 그들로 인해 타자화되고 있는 수많은 소수자들은 걱정되지 않는가?

'일베에서 '생리대 인증' 같은 소리 하다 걸려도 괜찮다'는 메시지가 한국 사회에 유포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공공연하게 여성 혐오 발언을 유포하던 일베 회원이 공영방송 KBS의 기자직을 수행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잘라라, 일베하는 그 수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