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70년] 엘리스 자카리아스 해군 대령의 라디오방송이 일본과 미국에 끼친 영향

올해 8월 초 쇼와 일왕의 '옥음 방송(玉音放送)' 원본이 공개되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종전을 둘러싸고 일본 본토 결전을 추진하고자 하는 군부와 평화를 추진하는 파의 대립, 라디오에서 옥음방송을 저지하기 위해 젊은 장교들이 일으킨 쿠데타 등은 영화화된 적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가운데, 한 미국인이 평화를 위해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2015-08-15     Tomoko Nagano
ⓒhuffpost japan

'또 하나의 평화 협상'의 무대는 역시, 라디오였다. 태평양 전쟁에서 라디오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방송된 내용 대부분은 일본과 미국의 프로파간다에 의한 처절한 정보 전쟁이었다. 그런 라디오에 변화가 나타난 것은 1945년 5월 독일이 무조건 항복하고 일본이 연합군에 맞서 싸울 유일한 나라가 된 시기였다. 스즈키 칸타로가 내각 총리에 취임하고 한 달 뒤의 일이었다. 미국이 라디오 스튜디오로 사용했던 장소는 워싱턴 DC에 있는 내무부 안의 시설이었다. 나도 이곳을 방문한 적 있는데 지금도 예전 그대로의 형태로 남아있다. 독일이 항복한 날 이후 이 스튜디오에서는 일본에 평화를 촉구하는 내용이 방송되기 시작했다. 미국 워싱턴 국립공문서관에는 당시의 음원과 일본의 대응을 기록한 '피스 토크(Peace Talk)'라는 제목의 파일이 남아 있다.

"아버지는 일본을 사랑했습니다. 매우 아름다운 나라라고 하셨죠." 그러면서 제라드씨는 추억의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그것은 히로히토 일왕의 동생인 다카마쓰노미야 노부히토 친왕(다카마쓰 왕자)이 신혼 여행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 호위역을 맡았던 자카리아스, 왕자와 공주의 사진이었다. 일본에서 체류하던 중, 몇 번이나 황실 행사에 초대된 자카리아스는 특히 다카마쓰노미야 노부히토 친왕과 친분을했다. 쑥대밭이 되어가는 일본에 마음이 아팠던 자카리아스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더 이상 힘든 전쟁을 계속할 이유는 없다. 이대로라면 수백만, 수천만의 인명 피해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 목숨들을 구하기 위해 방송을 시작했다"고 말이다. 일본에서 황실과 굉장히 가까운 존재였던 자카리아스는 방송의 대상을 선택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의 저서 '비밀 미션(Secret Missions)'에서 자카리아스는 이렇게 기술했다. "나는 일본의 항복을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일왕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그에게 호소했다."

"총리님, 스즈키 간타로 해군대장님은 저와의 대화를 기억하실 겁니다. 감히 말하지만, 다카마쓰 왕자와 공주님이 미국에 오셨을 때를 기억해보시길 간청합니다. 저를 개인적으로 아시는 분들은 절 믿어주실 거로 생각합니다."

생전 다카마쓰 왕자와 친분이 깊었던 외교 평론가 가세 히데아키는 히로히토 일왕과 다카마쓰 왕자 사이에서 들은 에피소드를 말한 바 있다. "다카마쓰 왕자가 해군 사령부의 참모로 있었는데 황제에게 편지를 썼다. 해군은 포병 병력을 상실한 다급한 상황이며, 자신의 형 일왕에게 사적으로 편지를 써 평화를 고려해보라고 간청했다."

"당시 자카리아스가 라디오 방송을 몇 개 했지만, 제일 중요했던 것은 일왕에게 메시지를 전했던 것으로 생각한다. 그것이 미국의 프로파간다였다면 끔찍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떻게 보느냐에 달렸다. 그는 그 방송이 미국의 프로파간다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이를 수행할 용기가 필요했다. 그렇지 않다면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없다는 것을 자카리아스는 잘 알고 있었다."

"일본 지도자들이 당면한 두 가지 선택이 있다. 그중 하나는 태평양 서약에 있는 그대로 무조건적으로 항복하고 그에 동의하는 것이다."

이 라디오 방송이 나오던 밤, 일본 정부도 움직였다. 도고 시게노리 외무대신이 쏜 긴급 극비 전보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연합군 측이 일본에 항복을 요구하는 포츠담선언을 발표한 것은 그 다음날이었다. 그러나 자카리아스는 경악했다. 포츠담선언에서 정부에 대해 자신이 호소한, 일본 정부도 요청한 "국체 수호"라는 단어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제라드씨는 지금도 분노에 떨었던 아버지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후 '피스 토크'는 중단됐다. 그리고 8월 6일 히로시마,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다카마쓰 왕자와 만찬을 함께했을 때, 전하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카리아스의 방송은 평화지지자들이 본토결전을 주장하는 군부를 끌어내리는 데 필요한 탄약을 제공했다. 전쟁이 계속되면서, 서로 최악의 결과를 맞이할 거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제라드씨는 아버지가 정말 기쁜 듯이 그 편지를 자신에게 보여줬다고 회상한다.

"평화 지지자에 제공된 탄약" 그 탄약에 담겨 있던 것은 서로의 나라의 문화를 깊게 이해하는 데서 배양된 일련의 신뢰와 상호작용이었다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