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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손석희로부터 손석희를 지켜야 한다 | 한국 언론의 예외주의
ⓒJTBC

1.

지난주에 일과 관련해서 몇 사람이 모인 회의 중에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 자리에 지난 한 달 사이에 인터넷에서 공개적으로 지탄을 받거나 "공분을 산" 사람들이 세 명이나 된다는 걸 깨달았다.

나 빼고는 다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사람들인데, 그중 한 분이 "충격에서는 좀 헤어나오셨나요?"하는 장난스러운 인사를 받자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하하, 상현님도 있는데요, 뭐."

2.

지난주에 쓴 글에 비난의 댓글과 반론이 쏟아지는 것을 지켜본 내 친구들은 "네 글을 게재한 매체들은 지원사격은 좀 해줘야 하는 거 아냐? 어떻게 바로 반론만 싣고 팔짱 끼고 있을 수 있어?"하고 흥분한다.

하지만 나는 그 매체들이 그럴 것으로 기대하지 않았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3.

나는 기자 자신이 신고해서 체포되는 모습을 특종으로 보도하는 태도가 유니버설하게 동의하는 저널리즘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한 것이지만, 내 글을 실었던 몇몇 매체들이 내 주장에 동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생각해 볼 문제 정도라고 판단했고, 트래픽을 몰아올 이슈라고 여겼기 때문에 게재를 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And there's nothing inherently wrong about wanting more clicks in this day and age).

아니, 나는 그 매체들 역시 같은 상황에서 같은 행동을 했을 것임을 잘 안다. (내 글을 달라고 한 매체 중 하나의 관계자는 내게 "저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당당히 밝혔다). 같은 상황에 접하면 그들도 같은 행동을 할 것임을 잘 알면서도 내가 게재를 허락한 것은, 그런 그들도 고민은 한 번 해볼 문제라는 정도의 인식은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언론의 현실 개입에 너그럽다.

4.

나는 내가 정당한 문제제기라고 생각한 이슈에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심한 분노의 댓글들이 달리는 것을 보고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특히 "고상한 척한다"고 비난하는 류의 댓글에 대해서.

나는 결국 언론관의 충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한국사회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언론의 현실 개입에 너그럽다. 보수 논객들은 정부에 들어가는 것을 승진의 자연스러운 마지막 단계라고 볼 만큼 한국의 보수사회는 너그럽고, 운동가와 언론인의 구분을 아무런 고민 없이 넘나들어도 그것이야말로 "행동하는 양심"이라고 할 만큼 한국의 진보사회는 관대하다.

하지만 누구 말대로 그게 한국 언론의 특성이고, 한국적 저널리즘이라면 나는 할 말이 없다. 나는 그 "특성"을, 혹은 한국의 "긴급상황"은 세계 저널리즘의 기준에서 예외를 허용한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국제기준을 이 문제에 들이댄 셈이고, 그게 잘난 체하는 걸로 보였다면, 그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5.

내가 일하는 곳에 파트너사로 입주해서 종종 이야기를 나누는 Korea Exposé의 구세웅님이 이번 일을 기사화했다. (링크)

그가 그 기사를 쓰기 전에 나와 이 문제를 이야기한 적이 없음에도 그가 내 주장에, 내가 그의 주장에 동의를 하는 것을 보면서 깨닫게 된 것은, 그와 내가 공유하는 언론관과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한국인들이 가진 언론관 사이에 커다란 계곡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과연 세계 기준과 다른 한국적 저널리즘이 존재할까?

내가 이번 문제를 굳이 판도라의 상자에 비유한 이유는 현재 가장 존경받는 언론이 온국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선을 넘었기 때문이다.

6.

많은 사람들에 따르면 한국은 독수리 앞에서 굶어 죽어가는 여자아이 같은 상황인데 기자가 사진만 찍고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 사진의 비유가 가진 absurd함은 잠시 제쳐두고, 던지고 싶은 질문은:

그 긴급성은 앞으로 누가 결정할 것인가?

어떤 편파적인 "기레기"가 양심을 걸고 이번 사안은 중요한 것이니 세계 기준이 어떻더라도 이번에는 개입하겠다면 누가 무슨 반대를 하겠는가?

내가 이번 문제를 굳이 판도라의 상자에 비유한 이유는 그 전에는 우리 언론이 훌륭했기 때문이 아니라, 현재 가장 존경받는 언론이 온 국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선을 넘었기 때문이다.

7.

나는 언론은 국선변호인 같은 역할을 부여받았다고 본다. 만약에 아무도 맡지 않으려는 흉악범의 변호를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국선변호인들이 자신의 양심에 의해서 변호를 게을리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건 민주 법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내가 기자 개인의 양심보다 프로페셔널의 윤리(이 단어가 거슬리는 이유는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ethics의 한국어 표현을 쓴 것뿐이다)가 우선이라는 이야기를 한 것은 바로 그 차원이다. 본인의 양심이 울어도 직업이 기자라면 저널리즘이라는 institution은 지켜내야 한다.

현대사회는 각 분야에서 그런 프로페셔널들이 이룩한 인류의 자랑스러운 업적이고, 사회의 각 구석에서 그런 프로페셔널리즘이 버텨주지 못하면 복잡한 사회는 제대로 기능할 수 없기 때문이다.

JTBC라는 한국언론의 소중한 성과를 지켜내는 길은 그 방송이 조금이라도 지나쳤을 때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다.

8.

하지만 많은 한국인들은 언론을 그렇게 보지 않고, 그 잘못은 다른 누구도 아닌 언론에 있다.

박정희가 영구독재를 위해 유신개헌을 시도할 때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가당치 않은 예외주의를 들고나와 지원사격을 했던 인물이 유명 일간지 논설위원이었다는 사실이 오늘날 시사하는 바가 있다면, 한국이 예외상황이라고 주장하는 언론은 의심하거나 최소한 정당한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는 것 아닐까.

내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MBC의 기자들을 정치적인 이유로 해고한 MBC 임원은 과거 종교권력에 맞서 살해의 위협을 받아가며 보도를 강행해서 박수를 받은 인물이고, 그 외에도 우리 사회에는 진보의 투사였다가 극보수로 전향한 정치인, 언론인이 유독 많다는 사실 역시 생각해볼 만한 일이다.

9.

그들이 180도 변절하고 독재권력이 된 것은 그들이 정말 나쁜 사람들이어서일까? 우리 사회가 그들이 선을 조금 넘었을 때 그들에게 정당한 질문을 던져서 긴장시키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것을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를 위한 투사를 조금의 의심도 않고 전적으로 신뢰하다가 변절했다고 목소리 높이는 이 사이클은 이제 멈춰야 한다. 이번 사태에서 저널리즘의 집념을 보여준 JTBC라는 한국언론의 소중한 성과를 지켜내는 길은 그 방송이 조금이라도 지나쳤을 때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다. JTBC와 손석희가 소중할수록 비판적 감시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손석희로부터 손석희를 지켜내야 한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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