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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발상으로 만드는 21세기 예능은 결코 '농담'이 될 수 없다

딸의 남편을 엄마가 골라준다? 조선시대에나 있을 법한 상황이 21세기 티브이에 등장했다. 지난 5월31일 방송한 <대타맞선 프로젝트 엄마야>(SBS)는 딸의 맞선 상대를 엄마가 대신 만나는 내용으로 논란을 불렀다. 엄마들이 ‘사위 후보’들과 대화하는 동안 정작 맞선 당사자인 딸들은 뒤돌아 앉아 남자의 얼굴도 보지 못했다. 딱 한번 밀실에서 일대일 대화 시간만 주어졌을 뿐이다. 이마저도 남자들이 대화하고 싶은 한명의 여자만 선택할 수 있어서, 당사자인 여성은 얼굴도 보지 못하고 짝을 찾는 것과 다름없었다. 최종 선택도 엄마와 남자의 마음이 통해야만 딸한테 기회가 주어졌다. 제작진은 프로그램 홈페이지에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포맷의 커플매칭 프로그램”이라고 강조했지만, 시청자 게시판에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만든 프로그램인지 모르겠다”는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

구시대적 발상으로 시청자들을 놀라게 한 프로그램은 <엄마야>만이 아니다. 올 들어 시대착오적 예능프로그램이 연이어 등장하면서 입길에 올랐다. 지난 2월10일 방송한 <본분금메달>(KBS2)은 ‘아이돌은 어떤 순간에도 예뻐야 한다’며 시종일관 예쁜 표정을 강조하고, 여자 아이돌의 몸무게를 몰래 카메라로 재는 식의 설정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주의 조치까지 받았다. 당시 여성민우회는 “여자 아이돌을 가수로서의 능력을 보여주는 존재가 아닌, ‘보기 좋은 꽃’ 같은 존재로 전락시켰다”고 비판했다.

7월에는 JTBC가 걸그룹들을 ‘먹방 요정’이라 부르며 한자리에 모아, 누가 누가 잘 먹느냐 대결을 시키는 <잘 먹는 소녀들>이란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본방송에 앞서 6월 중순 포털사이트에서 먹는 모습을 생중계까지 한다. ‘먹방의 1인자’를 가리겠다며 걸그룹들한테 많이 먹기를 요구하고, 이를 중계까지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할까?

시대 퇴행적 예능프로그램들은 남성보다는 여성을 내세우거나 대상으로 한다. 올해 한 결혼정보업체의 조사에서, 배우자 조건 1위는 남녀 모두 ‘성격’이었다. 하지만 <엄마야>는 ‘남자는 능력, 여자는 외모’라는 고정관념을 강조한다. 의사, 연구원, 외식업체 대표, 아이티(IT) 회사 창업자인 남자들의 직업을 강조하는 반면, 여자들을 소개할 때는 그저 송지효, 손담비를 닮았다는 식으로 외모에만 초점을 맞췄다. 엄마들은 첫 만남부터 ‘사위 후보’들의 수입을 묻고, 고급 차가 누구 소유인지 확인하며, 별 관심 없던 남자가 건물주의 아들이라는 사실에 호감을 표현했다. 프로그램은 여성의 속물 이미지만 대놓고 조명함으로써, 자칫 여성 전반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근거로 쓰일 수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예능프로그램의 퇴행은 방송환경 변화에 따른 시청률 경쟁 심화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종편과 케이블 등에서 예능프로그램이 쏟아지면서, 일단 한번 해본 뒤 반응을 보는 ‘맛보기’(파일럿) 프로그램이 난무하는 실태가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한 지상파 예능국 관계자는 “최근에는 방송사가 실패를 줄이려고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는 프로그램들을 우후죽순 선보이면서 ‘자격 요건이 갖춰지지 않은’ 프로그램들도 전파를 타게 된다”고 말했다. <엄마야>도 방영 전 내부 우려가 컸지만 일단 내보내보자며 편성했다고 한다. SBS 쪽은 “우려는 짐작했지만 피디 육성 차원이 컸다”고 말했다.

온라인의 화제성이 중요해지면서 인터넷에서 재생산되며 소비될 만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는 조급증도 부작용을 낳는 요인으로 꼽힌다. 한 지상파 예능국 관계자는 “요즘 예능은 젊은층을 주축으로 온라인에서 캡처나 짤방 등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되며 화제를 낳는 콘텐츠가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그런 상황에서 가장 요긴한 게 아이돌, 특히 걸그룹이다.

김선영 대중문화평론가는 “결혼조차 어른의 판단에 맡기는 식으로 여성의 독립성을 부정하고, 걸그룹의 먹는 모습까지 상품화하는 퇴행적 발상이 계속될 경우 티브이가 시청자들에게 외면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SBS 쪽은 “맞선을 통해 모녀간의 입장 차이를 보여주고 이해 과정을 담으려고 한 것인데 잘 표현되지 않은 것 같다”며 “시청자 정서와 시대의 측면을 고려한 앞서가는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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