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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선진화법은 죄가 없다
ⓒ한겨레

나는 오늘 법 하나를 변호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의원들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해 국회를 식물로 만든 주범.' 바로 여기 피고인석, 국회선진화법에 씌워진 죄목이다.

이 법을 지지하는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대통령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임기를 마치면 한이 남을 것 같다"며 국회를 탓했다.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에 나선 3명은 법 개정 방침을 고수한다고 밝혔고, 개정에 반대해온 야당도 방향을 돌리는 분위기다. 헌법재판소는 "19대 국회 임기 내에 결정하겠다"며 위헌성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회선진화법은 어떻게, 왜 태어난 것인가. 법은 2012년 5월 여야 합의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취지는 '국회에서 물리적 충돌을 방지하고 안건이 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심의되도록 한다'(제안 이유). 해머와 전기톱, 최루탄까지 등장했던 18대 '동물국회'에 대한 반성 속에 쟁점법안은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 찬성이 있어야 본회의 상정이 가능하도록 국회법을 고친 것이다.

4년이 지난 지금, 국회선진화법은 '국회식물화법' '국정마비법'이란 비난을 받고 있다. 과연 그 책임이 법에 있는 것인가. 대화와 타협 노력을 다하지 않은 여야 지도부에 있는 것 아닌가. 국회라는 장기판에서 대통령 지침과 당론에 따라 말(馬) 노릇, 졸(卒) 노릇을 해온 의원들에게 있는 것 아닌가.

쟁점이 됐던 여당의 '중점처리법안'을 보면 대부분 정부 제출 법안들이다. 대통령과 장관들, 여당이 야당 의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의문이다. 그들은 '심의·표결권 침해'를 말했지만 아쉬워한 건 심의권이 아니라 표결권이었다. 현실과 동떨어진 법이 잘못된 것 아니냐고? 그럼, 대화와 타협을 포기하면 되는 것인가. 예전처럼 의장이 직권상정하면 날치기와 육탄전으로 맞서면 되는가.

백번 양보해도 '선진화법은 위헌'이란 주장만큼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새누리당은 "헌법 49조의 다수결 원리에 반한다"고 했다. 헌법 49조는 이렇게 돼 있다. '국회는 헌법 또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앞부분과 뒷부분 중 어느 쪽이 우선하느냐는 논란도 이 문구를 벗어날 수 없다.

결국 강조하고 싶었던 건 효율성일 것이다. 지난 1월 28일 헌재 공개변론에서 주호영 의원은 "합의 처리될 수 있는 법안은 이 사회의 변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다수당 뜻대로 처리하고, 그 책임을 다수당이 지면 될 거 아니냐'는, 이 논리는 국민주권에 어긋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헌법 1조 2항)고 할 때 국민은 과반의 국민이 아니다. 100%의 국민이다. 모든 국민이 함께,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게 민주주의다. 51%가 국회를, 나라를 마음대로 쥐고 흔든다면 그것은 51%의 독재, 다수의 독재일 뿐이다.

4·13 총선은 박근혜 대통령의 일방적 국정운영에 대한 심판이었다. 51% 득표로 당선된 대통령은 취임후 49%의 목소리를 외면해왔다. 이상한 건 '선진화법 개정'을 총선 공약으로 내세운 새누리당이 참패했는데도 선거가 끝나자 다들 개정 쪽으로 몰려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한국 사회는 힘의 논리, 수(數)의 논리에 길들여져 있다.

대화와 타협의 정신이 빠진 다수결은 패싸움에 가깝다. 패싸움의 승패는 머릿수로 가려진다. 여대야소든, 여소야대든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다수결은 필요하지만 대화 노력, 설득 노력을 다한 다음에 나와야 한다. 헌재 공개변론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장영수 고려대 교수는 선진화법을 비판하면서도 "상대당이 설득될 가능성이 없다 해도 충분한 토론은 의사당 창밖 국민들을 위해 필요하다"고 했다.

법을 고치느냐, 마느냐는 국회의원들의 권한이다. 다만 지금까지의 모든 책임이 법에 있다고 말하지는 말라. 그건 여러분을 국회로 보낸 민주주의를 모욕하는 것이다. 차라리 선진화법이 필요 없는 국회를 만들라. 이것이 총선에 나타난 시민들의 요구다.

* 이 글은 중앙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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