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공격적 사업 확장으로 존재감을 키우는 반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뚜렷한 반전 카드가 아직은 보이지 않는 상태다. 시험대에 올랐다는 시선이 나온다.
(왼쪽에서 세 번째부터)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10월29일 경북 경주시 경주예술의전당에서 열린 'APEC CEO 서밋'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특별연설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12일 한국거래소 안팎에 따르면 주식 시장에서 삼성전자를 향한 기대감이 더욱 강해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주 5~9일 개인 투자자들의 삼성전자 순매수액은 2조9150억 원으로 3조 원에 육박했다. 2024년 9월(2조9530억 원) 이후 가장 많은 금액이다. 8일 기준 삼성전자 신용잔고 금액도 1조9770억 원으로 역대 최대를 나타냈다. 삼성전자 주식에 ‘빚을 내서 투자(빚투)’하는 규모도 고점을 찍은 것이다.
지난해 1월2일을 5만3200원으로 맞이했던 삼성전자 주식은 이날 13만8800원에 장을 마감했다. 1년 동안 161% 급등한 수치다.
삼성전자를 향한 역대급 관심에는 반도체 사업을 향한 여러 호재가 배경에 깔려 있다.
◆ 삼성전자 실적과 이재용 향한 기대감, 현대차 정의선 '로봇'으로 미래 정조준
앞서 8일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연결기준 매출 93조 원, 영업이익 20조 원을 거둔 것으로 잠정집계됐다고 발표했다. 부문별 실적이 공식적으로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의 영업이익은 17조 원가량으로 추정된다. 전체와 DS부문 모두 분기 역대 최대치를 갈아치우는 것이다.
최근에는 범용 메모리 가격 상승에 힘입어 D램 시장에서 1년 만에 1위 자리를 탈환하기도 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의 메모리 트래커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 D램 매출은 192억 달러(약 28조 원)로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삼성전자를 향한 기대감은 단순히 반도체 호황에만 있지 않다는 시선이 나온다. 이재용 회장이 지난해 7월 부당합병 관련 사법리스크를 털어내고 ‘광폭 행보’를 보이면서 그룹 전반의 성장이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반영된 것이다.
지난해 삼성전자가 BMW 차세대 전기차에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프로세서(엑시노스 오토)를 공급한 것, 삼성SDS가 국내 기업 최초로 오픈AI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파트너 계약을 맺은 것 등 그룹에서 이 회장의 적극적 행보가 구체적 성과로 나오고 있다.
100조 원이 넘는 현금을 통한 대규모 투자도 이 회장 체제에서 더욱 기대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차그룹은 ‘로봇’을 통해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할 것이라는 관측이 커지고 있다. 올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6’에서도 현대차그룹은 가장 큰 관심을 받은 곳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CES에서 로봇 계열사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처음으로 실물 시연했다. 아틀라스는 인간에 가까운 자연스러운 보행 등으로 시장에 큰 인상을 남기며 글로벌 IT 전문매체 CNET의 ‘최고 로봇상’을 받았다.
현대차그룹이 보이고 있는 로봇 부문의 성과는 정 회장의 ‘선견지명’이 빛을 발하는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래 현대차그룹 사업의 20%는 로보틱스가 차지할 것이라고 예견했던 정 회장은 2021년 보스턴다이나믹스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사재 2400억 원을 쏟아 붇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정 회장은 4대 그룹 총수 가운데 연초 경제사절단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한 뒤 곧바로 CES가 열리는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몸을 옮겼다. 4대 그룹 총수 가운데 유일하게 CES 현장을 직접 찾아 활발한 경영 행보를 입증한 셈이다.
◆ SK 최태원과 LG 구광모, 배터리 부진 영향은 언제까지
반면 재계 2위인 SK그룹과 4위 LG그룹은 상대적으로 현재 경영성과나 미래 기업가치를 위한 성장성 측면에서 다소 동력이 약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SK그룹은 고대역폭메모리(HBM) 분야 선두주자인 SK하이닉스 성장에서는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연간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지난해 43조8312억 원으로 추정되고 올해는 90조 원에 가까울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추정치는 삼성전자보다도 5천억 원 이상 높은 수치다.
SK하이닉스를 등에 업은 최 회장은 SK그룹의 AI 전환 등을 강조하고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서 재계를 대표하는 등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다만 2023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진행한 ‘리밸런싱(자산 재구조화)’이 진행되는 만큼 공격적으로 경영을 구상할 운신의 폭이 크지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배터리 계열사 SK온을 두고 최 회장의 고민이 여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SK온은 배터리사업에서 지난해 수천억 원대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될 만큼 수익성 확보의 불확실성이 여전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SK이노베이션이 2022~2023년 재무적 투자자로부터 SK온의 기업공개(IPO)를 전제로 유치한 투자금을 상환하며 SK온은 상장 부담에서 벗어났지만 반대로 기업가치를 최대 100조 원까지 바라보고 확보하려 했던 자금 유입도 불투명해진 셈이다.
10일 올해 처음으로 열린 SK그룹의 토요 사장단 회의(전략글로벌위원회 회의)에서 언급된 것처럼 올해 SK그룹은 리밸런싱 마무리에 힘을 싣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LG그룹도 최근 주요 계열사들의 실적이 악화했다는 점이 확인되면서 구광모 회장의 강도 높은 ‘드라이브’가 필요하다는 시선이 나온다. 구 회장이 상대적으로 다른 4대 그룹 총수와 비교해 외부 노출 등에서 보수적 행보를 보여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LG전자는 지난해 4분기 연결기준 영업손실 1094억 원을 낸 것으로 잠정집계됐다. 이는 전사적으로 희망퇴직을 진행하며 3천억 원가량의 일회성 비용이 반영된 탓으로 분석된다.
연간 매출이 역대 최대치(89조 원)를 기록했지만 9년 만에 분기 기준 영업손실을 본 만큼 전장·공조사업을 중심으로 한 B2B(기업 사이 거래) 분야 성과가 더 빠르게 반영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석유화학 부문의 LG화학이 바닥 수준의 업황에 부딪혀 부진한 실적을 거두고 있는 가운데 배터리 사업의 LG에너지솔루션도 전기자동차 캐즘(일시적 수요 부진)으로 부침을 겪고 있는 모양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4분기 연결기준 영업손실 1220억 원을 올리기도 했다. 지난해 1조3천억 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거뒀지만 올해는 상반기 미국 판매 둔화가 불가피한 상황 등이 반영돼 연간 영업이익이 1조 원 아래로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8월 한국기업평가는 LG그룹 분석보고서에서 “LG그룹의 성장동력이 약화하고 있다”며 “디스플레이 사업과 배터리 사업이 불씨를 살려야 한다”고 진단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