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이재명 정부의 국무위원 임명에 동의한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를 제명하기로 결정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3시간이었다. 지난 28일 속전속결 제명 결정과 관련해, 국민의힘에 스민 당혹감을 얘기하는 정치권 인사들이 많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2025년 12월28일 국회에서 열린 현안 기자간담회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 뉴스1
29일 정치권 일각에서는 중도적 색채를 띈 이혜훈 후보자가 보수진영에서 이탈함으로써 국민의힘 내부에 강성 극우세력만 남게 돼 정치적 편향성이 심화될 우려가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국민의힘은 앞서 28일 오후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이혜훈 전 의원에 대한 제명과 당직자로서 행한 모든 당무 행위 일체를 취소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 전 의원이 당협위원장 신분으로 이재명 정부의 국무위원 임명에 동의하여 현 정권에 부역하는 행위를 자처함으로써 지방선거를 불과 6개월을 남기고 국민과 당원을 배신하는 사상 최악의 해당행위를 했다"고 규정했다.
이번 제명 결정은 같은 날 2시30분 무렵 이재명 정부의 공식 지명 발표 뒤 약 3시간 뒤인 오후 5시30분 경 발표됐다. 국민의힘은 지명 발표 뒤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서면’으로 개최해 제명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이 이처럼 강하고 신속하게 제명 결정을 내린 것을 두고 대표적 중도 색채의 정치인을 상대 정당에 빼앗겼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의힘도 정치적 외연의 확장에 있어 중도 정치인이 반드시 필요하다.
더구나 이혜훈 후보자가 국민의힘에 지명 내정 사실을 전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충격은 더 컸던 것으로 분석된다. 통상 장관 후보자는 청와대의 공식 발표 이전에는 주위에 함구하는 것이 관행이다. 그러다 보니 국민의힘으로선 이날 '아닌 밤중의 홍두깨'로 이 소식을 처음 접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별도로 이 후보자의 제명을 두고 법적 측면에서 절차적 정당성을 충족했는지 여부와 과연 해당행위에 해당하는지를 두고 물음표가 생기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이라는 정당 내 민주주의가 올바르게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과 직결된다.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이혜훈 전 국민의힘 의원이 29일 오전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첫 출근하며 소감을 밝히고 있다. ⓒ 뉴스1
국민의힘 기획조정국(기조국) 쪽은 이 후보자 제명과 관련해 국민의힘 당헌 제32조 3항 및 9항과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 규정 제3조 10항 및 11항을 근거로 제시했다.
국민의힘 당헌32조 3항 및 9항은 최고위원회의 기능을 정하고 있는 규정으로 △사무총장 등 최고위원회의의 협의를 요하는 당직자 임명에 대한 협의 △기타 주요 당무에 관한 심의‧의결을 담고 있다.
또한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 규정은 최고위원회의가 △기타 당무운영에 관한 주요사항의 처리 △기타 주요 당무에 관한 심의‧의결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혜훈 후보자에 대한 제명이 이를테면 기타 규정에 의해 처리된 셈이다.
하지만 제명은 최소 수준의 징계인데 국민의힘은 현재 윤리위원장이 공석인 상황이다. 이에 최고위원회가 직결로 결정했다. 국민의힘은 최고위원들에게 유선으로 찬반 여부를 물어 가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설령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가 당헌 당규의 절차를 적법하게 지켰다고 하더라도 집권여당의 내각에 입각한 것이 '해당 행위'로 볼 수 있는지는 논란의 대상으로 남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당원의 징계사유로는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를 하였을 때 △현행 법령 및 당헌·당규·윤리규칙을 위반하여 당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그 행위의 결과로 민심을 이탈케 하였을 때 △정당한 이유 없이 당명에 불복하고 당원으로서의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하거나 당의 위신을 훼손하였을 때 △당 소속 국회의원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음에도 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기일에 불출석하였을 때 등으로 규정돼 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허프포스트와 나눈 통화에서 “정당은 특수한 사단법인으로서 여전히 헌법과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 운영돼야 한다”며 “정치적 색채가 다른 집권 여당의 내각에 입각한 것만으로 해당행위가 된다는 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과거 노무현 정부에도 이른바 ‘대연정’을 주장한 사례가 있고, 해외에서도 정치적 성향이 다른 정부에 입각하는 사례가 있는데 이것이 해당행위라고 보기에는 국민의힘의 당규의 다른 징계규정과 비교해 과도한 결정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