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헌 SK텔레콤 대표이사 사장이 초대형 AI 데이터센터(DC) 구축에 나서며 재무적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선(先) 수요 후(後) 구축' 전략을 전면에 내세웠다. 자본 조달 방식을 먼저 확정한 뒤 데이터센터 구축에 나선 경쟁 사업자들의 행보와 대비되는 보수적 전략이다.
이를 두고 SK텔레콤이 감당 가능한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막대한 사업비를 감당하고 프로젝트의 현실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택했단 평가가 나온다. 반면 한쪽에서는 리스크 분산 구조 탓에 사업 규모에 비해 SK텔레콤이 가져갈 실제 수익은 제한적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정재헌 SK텔레콤 대표이사 사장이 초대형 AI 데이터센터(DC) 구축에 나서며 재무적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선(先) 수요 후(後) 구축' 전략을 전면에 내세웠다. 사진은 정 사장이 2025년 12월22일 ‘2025 최우수 협력사 시상식’에서 축사를 하는 모습. ⓒSK텔레콤
8월6일 통신 및 증권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이 15GW(기가와트)라는 전례 없는 규모의 AI 데이터센터 투자를 추진하면서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사업 전략이 모아지고 있다.
SK텔레콤은 8월5일 2026년 2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신설 법인 'SK하이퍼'의 역할을 설명하며 AI 데이터센터 투자 방향성이 '선 수요 후 구축'임을 명확히 했다.
박종석 SK텔레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콘퍼런스콜에서 "고객을 먼저 확보한 후 데이터센터를 짓는다는 것을 최우선 원칙으로 견지할 것"이라며 "데이터센터 구축에 필요한 재원 역시 고객 확보 이후에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고객 확보를 앞세운 것은 최근 데이터센터 시장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이경자 삼성증권 연구원은 올해 1월 보고서에서 "대형 데이터센터는 대체로 임차인이 확보돼야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 이뤄지므로 진행되는 프로젝트는 마스터리스(전면 임차)나 엔드유저(최종사용자)가 채워진 경우가 많다"고 짚었다.
글로벌 부동산 서비스 기업 CBRE코리아는 7월 보고서 '한국 데이터센터 투자'에서 "데이터센터 사업 주체들이 준공 전 단계에서부터 선제적으로 임차인(고객사)을 확보하는 행태로 전환하고 있다"며 "시장 참여자들이 더 이른 시점부터 임차 확보에 나서고 있다"고 짚었다.
다만 같은 시장 안에서도 방식은 갈린다. SK텔레콤은 얼마 전 네이버가 엔비디아와 데이터센터 관련 지분 계약을 체결하면서 '선 구축 후 수요 확보'의 방향성을 택한 것에 비하면 보수적인 편에 속한다.
네이버는 7월27일 엔비디아와 GW급 AI 팩토리 구축을 위한 전략적 투자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히면서 고객 확보 전에 자본 조달 방식을 먼저 확정했다. 당시 최수연 네이버 대표이사는 "고객사 유치도 속도감 있게 마무리 하겠다"며 고객사 확보가 투자자 확보 이후에 이뤄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와 달리 SK텔레콤은 수요(고객사)를 먼저 확보한 후 투자자를 구하겠다는 '선 수요 후 구축'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이 순서를 고집하는 배경에는 이 사업이 SK텔레콤 혼자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한참 벗어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정 사장은 AI 데이터센터 사업의 규모를 일찍부터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다. 정 사장은 올해 3월 MWC26에서 "데이터센터 사업은 1GW 구축에 100조 원 가까이 필요하다"며 "고객을 먼저 확보하고 같이 구축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정 사장의 계산법을 SK텔레콤 계획에 적용하면 향후 수년간 500조 원에서 1500조 원이 필요하다. SK텔레콤은 2029년부터 5GW AI 데이터센터를 단계적으로 열고, 2035년까지 15GW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추정 기관에 따라 편차는 크다. iM증권은 5GW 확보에 75조~350조 원이 들 것으로 봤는데, 건물과 전력설비만 갖추는 코로케이션 방식이냐 GPU까지 포함한 AI 팩토리 방식이냐에 따라 사업비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추정치를 적용하더라도 20조 원 수준인 SK텔레콤 시가총액의 최소 4배에서 많게는 75배에 이르는 자금이 필요해, 애초에 자체 조달은 불가능한 방안이라는 것이 시장의 공통된 의견이다.
결국 SK텔레콤은 SK하이퍼를 전문 AI 데이터센터 사업 개발 회사로 세우고 재무 리스크를 통제하는 방식을 택했다. SK하이퍼가 부지·전력·고객계약 등 초기 개발을 맡되, 실제 건설과 보유·운영은 프로젝트별 특수목적법인(SPC)이 담당하고 자금은 재무적투자자(FI) 지분투자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외부 자본으로 조달하는 구조다.
법인을 따로 세운 데는 방어선을 하나 더 두려는 계산도 읽힌다. 초대형 AI 데이터센터 투자 리스크가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가 추진해온 기존 사업으로 번지지 않게끔 SK하이퍼가 방패 역할을 수행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박 CFO는 콘퍼런스콜에서 "SK하이퍼는 SK브로드밴드가 추진 중인 기존 데이터센터 사업과 별개"라며 "SK하이퍼는 15GW AI 데이터센터 사업에만 집중하며 이미 별도의 인력과 조직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증권업계에서도 SK하이퍼 설립의 핵심 요인으로 리스크 분산을 지목한다. 신희철 iM증권 연구원은 "5GW 규모의 AI 데이터센터 확보는 약 75~350조 원의 막대한 자금이 필요해 사업 현실성이 낮았다"며 "반면 SK하이퍼를 통해 구상하는 사업 방식은 특수목적법인(SPC)과 외부자본을 활용함으로써 SK텔레콤의 재무부담은 최소화하고 대규모 AI 데이터센터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이라고 바라봤다.
다만 리스크를 넘긴 만큼 몫도 줄어들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데이터센터를 직접 보유하지 않는 구조에서 SK텔레콤이 가져가는 것은 초기 개발 수수료와 SPC 운영이익에 연동된 수수료 정도에 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신 연구원은 "데이터센터 규모에 비해 동사가 인식할 매출 규모는 작다"고 내다봤다. 이찬영 유진투자증권 연구원도 "SK텔레콤 데이터센터 청사진은 여전히 구체성이 부족하다"며 "부지별 고객사와 계약 규모, 프로젝트별 가동 용량과 일정, 투자비, SK하이퍼에 귀속되는 이익 규모까지 구체화돼야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