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업무보고에서 '환단고기'를 언급하면서 해묵은 역사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대통령실은 "연구와 검토를 지시한 것이 아니다"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뉴라이트 성향의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을 겨냥한 발언이라는 분석도 일각에서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이 동북아역사재단 업무보고 당시 언급한 유사 역사학 '환단고기' 논쟁이 뜨거운 가운데 14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대형서점에 '환단고기'를 다룬 서적이 놓여 있다. ⓒ 뉴스1
15일 정치권과 학계에서는 이 대통령의 업무보고 와중에 내놓은 '환빠' 언급을 두고 이미 역사학계에서는 '위서'라는 것이 정설인 상황에서 불필요하게 논란을 키웠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환단고기는 단군 이전에 고대 한민족이 사실상 유라시아 전역을 지배했다는 내용을 담은 책이다. 1911년 계연수씨가 저술하고 그의 제자 이유립씨가 수정해 1979년 출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환단고기는 시대상과 맞지 않는 용어와 불분명한 인용문헌 출처 등으로 인해 역사학계에선 이미 '위서(가짜)'라는 평가를 받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2013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환단고기 문구를 인용했다가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역사학계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환단고기를 언급한 것 자체가 위험하고 부적절하다는 시선을 내보인다. 대통령이 언급한 만큼 다시 논쟁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이 대통령은 12일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에게 "역사 교육관련해서, 무슨 '환빠' 논쟁있죠?"라고 물었다. 박 이사장이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자, 이 대통령은 "단군, 환단고기, 그 주장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을 비하해서 환빠라고 부르잖아요"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고대 역사부분에 대한 연구를 놓고 지금 다툼이 벌어지는 거 잖아요"라며 "동북아 역사재단은 고대 역사 연구를 안 합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박 이사장은 "대통령께서는 이른바 재야 사학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그분들보다는 전문 연구자들의 이론과 주장이 더 설득력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환빠' 발언을 두고 야권에서는 일제히 비판이 쏟아졌다.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은 14일 "환단고기를 관점의 차이라고 하는 것은 백설공주가 실존인물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며 "대통령이 뭐든지 믿는 건 자유지만 개인의 소신을 역사에 강요하는 건 위험한 발상이다"고 짚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도 "환단고기는 위작이다"며 "환단고기가 역사라면 반지의 제왕도 역사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통령실은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김남준 대통령실 대변인은 14일 브리핑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환단고기' 언급은 그 주장에 동의하거나 그에 대한 연구나 검토를 지시한 것이 아니다"며 "국가의 역사관을 수립하는 사람들이 책임있는 역할을 다해주면 좋겠다는 취지의 질문이었다"고 선을 그었다.
정치권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된 박지향 이사장을 압박하는 과정에서 무리수를 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박 이사장은 동북아역사재단 역대 이사장 가운데 최초로 서양사를 전공한 인물인 데다가 뉴라이트 성향으로 알려져 내정 때부터 논란이 일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