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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참으면 행복해질까 | 노오력의 경제학
ⓒgettyimagesbank

지난 여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마치 이방인처럼 주변을 살폈습니다. 해외에 처음 나가면 외국인들을 구경하듯, 저는 버스와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구경합니다. 한 공간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는 대도시를 제외하면 흔치 않습니다. 꽉 들어찬 차량에서는 낯선 이의 날숨을 직접 들이 마셔야 합니다. 도시인들은 이렇게 끈끈한 관계로구나 생각합니다. 그 순간, 기관사의 안내 방송이 나옵니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승객이 있으니, 다음 역 정차시, 응급 요원들의 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작은 술렁거림조차 없습니다. 도시인들의 얼굴 표정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지하철은 녹조로 덥힌 한강을 지나고 있습니다. 맑게 갠 하늘 아래에서 녹색은 선명하지만, 시선을 두는 이가 거의 없습니다.

노오력하는 사람들

출근길에 나선 사람들의 삶을 예상하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대략 절반은 정규직, 다른 절반은 비정규직입니다. 비정규직은 정규직 임금의 절반도 받지 못합니다. 명절이면 정규직은 스팸햄을 들고, 비정규직은 식용유를 들고 퇴근을 할 것입니다. 차량 안의 절대 다수는 이름을 알듯 말듯한 중소기업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다들 삼성, LG, 현대, SK를 다니는 지인들을 꽤 많이 알고 있지만, 이 차량에는 그런 대기업 사원이 한 명도 안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전체 노동자 중에 중소기업의 노동자 비중은 80%가 넘고, 재벌 100대 기업에 고용된 노동자 비중은 4%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중소기업의 노동자들은 종업원 300인 이상으로 정의되는 대기업에 다니는 지인들과 비교할 때, 60% 정도의 임금을 받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를 다니는 이들과 비교한다면, 약 35% 정도의 임금을 받고 있습니다.

앞에 서서 졸고 있는 이의 삶을 상상해 봅니다. 초등학생 때는 서울대와 비서울대 사이의 갈림길을 놓고 학원을 다니기 시작합니다. 중학생이 되자 명문대와 비명문대, 고등학생 되자 인서울과 지방대의 갈림길을 두고 공부를 합니다. 조금만 참고 열심히 노력하면, 대학생이 될 것이라는 희망으로 견뎌냅니다. 대학생이 되어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이라는 갈림길 앞에서, 학점 관리와 스팩 쌓기에 정진합니다. 졸업이 가까워지자, 더욱 현실적이고 두려운 선택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갈림길입니다. 조금만 참고 열심히 노력하면, 대기업에서 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견뎌냅니다.

왜 노오력할 수 밖에 없는가

성공한 이들이 청년들에게 노력을 하라고 주문합니다.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자를 낳을 수 밖에 없는 사회적 구조를 비판하지 않고, 노력의 중요성만을 강조합니다. 기성세대의 조언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하는 노오력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습니다. 경제학은 노력과 노오력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노력은 기대수익과 기대비용의 차이가 극대화되는 최적 수준입니다. 그러나 노오력은 그 이상의 수준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 비용이 수익보다 큰 상황에서도 노오력을 합니다. 사람들은 언제 노오력을 할까요.

게임이론을 가르칠 때, 학생들과 간단한 경매 실험을 해봅니다. $20 지폐를 경매로 학생들에게 팔아 봅니다. 최고의 입찰가를 제시한 사람이 지폐를 갖게 됩니다. 일반적인 경매 방식과 다른 두 개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첫째, 입찰가가 50센트씩 상승합니다. 둘째, 최고 입찰가를 제시한 사람만 아니라 차상위 입찰가를 제시한 사람도 입찰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갑이 $10을 제시하고 을이 여기서 포기하면, 갑은 $10을 지불하고 $20 지폐를 갖게 되고, 을은 자신이 직전에 제시했던 $9.5를 지불합니다.

그러나 을은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입찰가 $10.5를 제시합니다. 포기하면 $9.5을 잃지만, $11을 제시해 이기면 $9 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논리로 갑은 곧 $11를 제시합니다. 입찰 가격은 어느새 $19.5에 도달합니다. 갑은 $20을 제시합니다. 물론 이기면 이득이 0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19.5에 포기하면, 손실이 $19입니다. 이제 을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을은 $20.5를 제시합니다. 이기면 50센트의 손해를 보겠지만, $20에서 포기하면 $19.5의 손실을 감수해야 합니다. 결국 입찰가는 $50불에 도달합니다. $20을 얻기 위하여 경쟁을 펼치고 있고, 각자는 매순간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손해를 보는 게임을 펼치는 운명에 갇혀 있습니다. 이는 예일대 경제학과의 교수였던 마틴 슈빅이 고안한 함정게임입니다.

승자독식과 힐링 마케팅

함정게임에 갇힌 이들은 노오력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조금만 참으면 승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힘을 내어 노오력을 해보지만, 점점 노오오력, 노오오오력을 펼쳐야 하는 현실에 직면합니다. 일반적인 경쟁과 달리, 함정게임이 지닌 두 가지 특징 때문입니다.

첫째, 승자독식의 경쟁 구조입니다. 아주 작은 차이로 승자와 패자가 결정됩니다. 효율적이고 정당한 경쟁 메커니즘에서는 각 사람이 능력과 노력에 비례해서 보상을 받습니다. 승자독식의 구조에서는 종이 한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승자와 패자의 보상 크기가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둘째, 패자가 일종의 처벌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함정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노오력을 펼칠 수밖에 없는 것은 단기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함정게임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처음부터 게임에 참여하지 않는 것입니다. 발을 들여놓는 순간, 처벌의 크기는 노오력을 할수록 더 켜져 갑니다. 드라마 <송곳>에서 구고신이 "패배는 죄가 아니요! 우리는 벌을 받기 위해 사는 게 아니란 말이요."라고 말하는 이유가 이 때문일까요.

함정게임을 펼치는 학생들은 $20이 넘어서는 순간, 뭔가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갖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계속 입찰가를 높이는 이유 중 하나는 지켜보는 이들의 응원입니다. 마지막 두 사람이 남고, 다른 학생들은 환호를 보내며 승자가 되라고 희망을 불어넣습니다. 노오력이 필요한 무한경쟁 사회에서 힐링과 희망 마케팅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함정게임은 노오력을 강요당하고 헬조선이라 불리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잘 보여줍니다. 경제민주화를 통해 승자독식의 구조를 바꾸고 패자들에 대한 처벌을 줄여보자고 제안하지만, 허락하지 않습니다. 입찰가가 오르는 것을 제가 흐뭇하게 지켜보는 것처럼, 노오력이 늘어날수록 뿌듯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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