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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가 빛나는 순간', '더 글로리'. ⓒEBS, 넷플릭스
'하트가 빛나는 순간', '더 글로리'. ⓒEBS, 넷플릭스

세계적인 미디어학자 헨리 젱킨스가 ‘미디어·정보 리터러시(문해력)’와 관련해 2020년 <한겨레>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어른들은 아이들이 자라면서 만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리터러시(문해력)를 갖추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이가 어른보다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다는 이유로 관련 교육을 제공하지 않는 것은 어른의 책임을 회피하는 일이라는 지적이다.

교육공영방송인 <교육방송>(EBS)이 제작비 상승 등을 이유로 7년 동안 중단했던 청소년 드라마를 2년 전부터 부활시킨 이유도 ‘미디어 문해력 교육’이라는 목적을 우선했기 때문이다. “교육방송에서 제작하는 드라마는 교육적 메시지가 있어야 차별화된다고 생각했다. 또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드라마라면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일상적, 시대적 화두가 빠질 수 없다. 자연스럽게 미디어 리터러시를 주제로 선택했다.”

지난 6일 고양시 교육방송 사옥에서 만난 손예은 피디의 말이다. 그는 2020년 가을 사내 기획안 공모에 참여해 청소년 드라마 부활의 계기를 제공했다.

https://www.instagram.com/p/CmqtFJqL1NA/

손 피디는 자신이 낸 기획안을 바탕으로 2021년부터 <하트가 빛나는 순간>, <네가 빠진 세계>를 연달아 연출하며 ‘청소년 드라마 명가’ 교육방송의 명맥을 이었다. 그는 2016년 교육방송에 입사해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보니하니> 등을 거쳤다. 교육방송에는 다른 방송사와 달리 드라마 전담 조직이 없으며, 드라마 분야 피디도 따로 뽑지 않는다. 손 피디도 애초 ‘유아어린이부’ 소속으로 미디어 리터러시를 주제로 한 어린이 드라마 기획안을 제출했다. “기획회의를 하면서 청소년 드라마가 표현 범위가 더 넓고 시장성도 확보할 수 있겠다 싶어서” 시청 대상을 바꾼 것이다.

2021년 방영한 13부작 드라마 <하트가 빛나는 순간>은 초등학생 때 ‘먹방’ 유튜버로 인기를 끌었던 최빛나라(최지수)가 고등학생이 되어 웹예능 출연에 도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사람의 가치를 구독자와 ‘하트’(좋아요)의 숫자로 매겨버리는 시대에 누구와 어떻게 관계를 맺을까에 대한 고민을 담은 청춘 성장물. 지난해 말 종영한 <네가 빠진 세계>는 ‘악플’에 시달리던 아이돌 유제비(나나)가 자신이 좋아하던 로맨스 소설 속 세계로 들어가 ‘악녀’ 캐릭터에서 벗어나려 노력하는 이야기로, 총 20부작이다.

https://www.instagram.com/p/CmDiyFUrkQ8/

“두 드라마 모두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아무렇게나 하는 말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주요 주제로 삼았다. 특히 청소년 시기에는 현실이든 디지털이든 타인의 말에 큰 영향을 받는다. <하트가…>에서는 자신을 아끼는 친구들과 위기를 이겨내는 모습에 주안점을 뒀다면, <네가…>는 디지털 미디어를 긍정적으로, 책임 있게 활용하는 방안도 보여주고자 했다.”

드라마에서는 디지털 성범죄, ‘단톡방(온라인 메신저 단체 대화방) 왕따’, 거식증, ‘사이버렉카’(온라인 플랫폼에서 조회수 등을 높이고자 주로 영상으로 타인에 대한 모욕·명예훼손성 행위를 일삼는 이용자들을 일컬음) 등 무거운 소재도 다뤘다. 그래도 표현 수위는 ‘순한 맛’이다. 욕설, 폭행 등을 노골적으로 표현해 ‘19금’이 대부분인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오티티)의 학원 배경 드라마들과 구별된다. 그런 높은 수위의 표현이 현실을 잘 반영한 결과라는 평가도 있다.

손 피디는 수위 조절과 관련해 “높은 수위의 표현이 드라마 전개상 필요한 경우가 있고, 잔인한 걸 좋아하는 시청자도 있다”면서도 “제가 연출한 드라마들은 굳이 그런 표현들이 필요한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실이 이미 폭력적인 표현을 접하기 쉬운 상황이라, (드라마 안에서) 일부러 잔인하게 표현하지 않아도 시청자들이 같은 무게로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며 “기획단계부터 초등학생도 볼 수 있게 하자는 취지여서, 그걸 지키고자 했다. 순한 드라마도 하나쯤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두 드라마 모두 ‘7살 이상 시청가’ 등급이다.

(기사 내용과 무관한 자료사진) 학생이 주인공이지만 19금 어른용 드라마 '더 글로리'. ⓒ넷플릭스
(기사 내용과 무관한 자료사진) 학생이 주인공이지만 19금 어른용 드라마 '더 글로리'. ⓒ넷플릭스

손 피디는 또한 “청소년이 시청자로서 볼 수 있는 작품”을 청소년 드라마의 주요 정의로 꼽았다. 그는 “‘19금 학원물’은 성인들이 보는 것이고, 교육방송 드라마는 청소년들이 볼 수 있어야 한다. 온전히 십대 청소년들에게만 집중하고 싶어서 부모 등 어른을 일부러 등장시키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어른에겐 사소하다고 여겨지는 게, 청소년들에게는 인생이 걸린 문제가 되기도 한다”는 이유에서다. 청소년 관점을 생생하게 담고자,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 연구자이자 초등학교 교육 현장에서 일하는 박유신 교사를 대본 자문으로 모셨다. 출연진 다양성을 고려해 <하트가…>에서는 다문화 배우를 일부러 찾아 나서, 모델 배유진을 연기자로 데뷔시키기도 했다.

사내에 드라마 제작 경험을 가진 인력이 거의 없어, 제작 과정은 ‘맨땅에 헤딩하듯’ 도전의 연속이었다. 시청자들의 호응이 큰 동력이 됐다. <하트가…>는 1~6화를 유튜브에 전체 공개하며 매회 100만회를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네가…>는 넷플릭스와 동시 방영해, ‘키즈’ 분야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손 피디는 “딥페이크(인공지능 기술로 가짜 영상·음성을 만드는 행위) 소재를 다룬 편에 유튜브 댓글이 많이 달렸는데, ‘우리에게 꼭 필요한 영상’이란 내용을 발견하고 뿌듯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부서를 옮겨 ‘자이언트 펭티브이’(펭수)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넷플릭스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를 좋아해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청소년의 사랑과 우정을 다룬 성장 드라마에도 도전해보고 싶어요.”

한겨레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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