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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의 연대가 정김경숙의 정체성을 만들었다" 종갓집 며느리, 워킹맘이자 '구글러' 로이스 킴이 일하는 여성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 (인터뷰)

권태와 무력감에 지친 직장인과 워킹맘을 위한 인터뷰

23일 방영된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 방송 장면, 로이스 킴 ⓒtvN/로이스 킴 제공
23일 방영된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 방송 장면, 로이스 킴 ⓒtvN/로이스 킴 제공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슴에 품는 꿈이 있다. 통쾌하고도 위험한 두 글자, ‘퇴사’. 퇴사는 나의 꿈이기도 했다. 정글과 같은 회사에서 이리저리 치이고, 쏟아지는 일에 내 모든 것을 짜내다 보면 내가 물기 하나 없는 마른 수건처럼 느껴졌으니까.

회사의 매출이 오른다고 내가 성장할까? 내가 없다고 회사가 망할까? 아마 회사는 내가 없어도 누군가로 대체되어 잘 돌아가겠지!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외쳤던 패기 넘치는 신입의 열정은 까맣게 타버린 채, “제가요??”라고 답하며 영혼 없는 직장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번아웃이 세게 올 때면, ‘행복은 회사 밖에 있다’는 생각에 ‘도비는 자유에요(Dobby is free!)’를 말하는 퇴사의 순간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데 일이 즐거운 사람도 있다니. 30년이 넘게 직장생활을 해왔던 로이스 킴은 회사 이야기라면 질릴 법할 텐데도, 자기 일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무엇이 그를 일하게 만드는지 궁금했고, 그의 열정과 성장의 경험이 누구보다 부러웠다. 

로이스 킴은 현재 원어민들에게도 힘들다는 직무인 글로벌 커뮤니케이션팀에서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의류 회사에서 일을 시작해 모토로라코리아, 제약회사인 한국릴리의 마케팅팀과 홍보팀, 2007년 구글코리아에 커뮤니케이션 총괄 임원으로 12년간 근무하기도 했다. 경력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자신만의 스토리를 써 내려가고 있는 로이스 킴(54, 정김경숙)을 지난달 29일 서울 송파구 잠실역 인근에 있는 카페에서 만났다. 

 

영어 공부 마흔부터 본격 시작, 50살에 '구글 본사'로 이직

11월 29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역 인근 카페에서 로이스 킴을 만났다. ⓒ허프포스트코리아
11월 29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역 인근 카페에서 로이스 킴을 만났다. ⓒ허프포스트코리아

“저는 엄청 소심했어요. 머리도 남들보다 엄청나게 뛰어난 편도 아니고, 언어에 대한 센스도 그닥 없는 편이예요. 그리고 진짜 뭘 해도 오래 걸려요..” 그는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실력있고 열정 넘치는 인재들이 즐비한 구글에서 일하는데, 이 무슨 소리?

로이스 킴은 한국에 오기 한달 전에 있었던 실수담을 털어놨다. 베테랑 구글러(구글 직원)도 실수를 한다. 

“2박 3일 프레스 행사 마치고 송별 저녁 만찬(farewell dinner)이 있었는데, 저희 팀원들 모두 너무 피곤해하는 것 같아서, 저만 참석하리라 생각하고 팀원들에게 문자를 보냈어요. ‘저녁자리는 올 필요없어요. 집에 일찍 가세요. 피곤하겠어요(You're tired).’ 팀원들이 좋아하겠지 생각하고 혼자 뿌듯했어요. 그런데 제가 보낸 메시지를 확인해 보니까, ‘당신 해고야(You're fired)’라고 쓴 거예요. 오타가 난 거죠. 정말 뼈저린 실수죠.”  

마흔이 되던 해부터 로이스 킴은 영어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영어로 소통을 잘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현재도 하루에 3~4시간씩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자신이 평범하다고 말하는 로이스 킴. 그의 특별한 경쟁력은 ‘끈기’였다. 부족한 것은 배우고 능숙해질 수 있도록 습관을 만들고 버티는 것에는 누구보다 자신있었다.

구글코리아에서 임원으로 일했던 로이스 킴. 앞으로 직장생활을 10년 더 한다고 생각하면, 그냥 같은 일만 하면서 보내는 건 아닌 거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고. 지난 2019년, 50세의 나이로 그는 구글 본사가 있는 실리콘밸리행을 선택했다. 대한민국 평균 퇴직 나이 49.3세, 은퇴를 준비할 나이에 가족과 친구들을 두고 홀로 낯선 미국 땅에 발을 디뎠다.

로이스 킴은 구글 본사 커뮤니케션팀에서는 최초의 비영어권 출신 디렉터로 알려져 있다. 그는 현재 미국 내에 있는 전 세계 특파원들을 지원하고, 각국에 있는 커뮤니케이션팀들과 미국 본사에 있는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를 이어주는 중개자 역할을 하고 있다. 

“신입사원의 마음가짐으로 미국에 갔어요.” 구글코리아나 본사나 '디렉터'라는 같은 직급으로 있는 것이지만, 구글 본사에는 자신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고, 팀원도 없었다. 부서를 혼자 일궈나가야 하는 그야말로 맨땅의 헤딩과도 같은 일이었다. 

신입사원의 특권은 물어보고, 실수하고, 오버해도 된다는 것 아니겠는가? 로이스 킴은 90일 동안 100명의 사람을 만나며 자신이 하는 일을 알리고 업무를 익혀갔다. 조용하고 침체된 분위기의 사무실에서 가장 밝게 인사 하는 사람 중 한 명인 로이스 킴은 책상에서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는 동료를 데리고 점심식사를 하러 밖에 나가기도 했다. 혼자 일하는 게 아니라 함께 일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 롤모델을 찾기까지 "우리 겸손하지 말아요"

로이스 킴 ⓒ로이스 킴 제공
로이스 킴 ⓒ로이스 킴 제공

프로 일잘러에게도 실수하고 방황하던 사회 초년생의 기간이 있다. 

서른 살이 되던 해, 로이스 킴은 달라지고 싶었다. 사람과 만나고 대화하며 나만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내는 사람으로, 내가 되고 싶은 나로 살고 싶었다. 운동을 시작하자 자신감이 생겼다. 체력이 생기니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됐다. 이름도 김경숙에서 정김경숙으로 개명했다. 세상에 자신을 있게 만든 어머니에게 정김경숙이라는 이름을 넣은 새 명함을 드렸다. 

여성으로서 일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당시 같은 대학, 같은 학과를 졸업해도 대기업의 일반 사원공채는 남성으로 거의 한정되어 있었다. 어쩌다 운이 좋아 면접 자리까지 올라가면 어김없이 “(입사하게 되면) 커피 타는 것 괜찮죠?” 라는 질문이 나왔다.

임원과 부서장이 남성인 회사에서 여성 중견 관리인은 손가락에 꼽았다. 아시아 쪽은 특히 여성이 임원으로 올라가기가 어려워 보였다. “우리는 항상 겸손하고 나서지 말아야 한다고 자꾸 훈련받는 거예요.” 이 자리가 자신에게 너무 과분하다고 생각하며 지금 잘하고 있는 나는 진짜가 아니고, 언젠가는 들통날 거라고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는 여성 직장인들을 보기도 했다.

회식을 통해 그들만의 연대를 만들어 나가는 남성동료들의 네트워크에 들어가야 하는 건가? 혹은 승진을 못하면 내가 하는 일에 의미가 있을까 싶은 걱정도 생겼다. 걱정하고 끝이냐. 노노. 로이스 킴은 번아웃이 찾아올 때면, 회사에서 자신이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던가. 그의 눈 앞에 능력자가 나타났다. 바로 모토로라 마케팅팀을 이끄는 유일한 여성 중견 관리자 셀리 부장이었다. 그는 일견 조직에서는 아웃사이더처럼 보였고, 승진에서는 뒤쳐지는 것처럼 보였다. 자세히 보니 달랐다. 그는 새로운 트렌드와 기술에 대한 정보를 쌓고 영어 공부를 하며 늘 자기 관리에 철저한 사람이었다. 빽없이 오로지 실력으로 셀리 부장은 승승장구했다. 로이스 킴은 그를 롤 모델로 삼았다. 롤 모델을 찾는 일이 자신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성장과 발전을 거듭한 로이스 킴도 어느덧 누군가의 롤 모델이 됐다. 

 

사내 공부 모임 멤버들, 15년 후 보니 같이 성장해 있더라 

로이스 킴(정김경숙) ⓒ로이스 킴
로이스 킴(정김경숙) ⓒ로이스 킴

맘이 통하는 동료가 있다는 건, 고단한 회사생활을 버틸 수 있는 힘이 아닐까? 로이스 킴에게도 그런 회사 친구들이 있다.

로이스 킴은 한국릴리에 있을 때 여성 동료 4인방 모임을 만들어 영어 공부를 했다. 모임의 이름은 가칭 '핑클'. 당시 홍보팀, 마케팅팀, 재무팀, 인사팀 등 각기 다른 부서에서 비슷한 연령대와 육아하는 여성 차장들과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회사를 옮겨도, 인연은 끊어지지 않았다. 한 두 달에 한 번씩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찐우정으로 이어졌다. 각 분야의 전문가가 된 이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업무의 실질적인 조언을 서로에게 해주고 있다.

“이 친구들과 15년 이상 가다 보니까 같이 성장한 걸 보게 되니까 도움이 돼요. 회사에서 또래들끼리 한번 모임을 만들어서 같이 성장을 지켜봐 주면 그게 서로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이건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이 아니니까요. 내가 승진하려면 쟤를 밟고 올라가야 해! 전혀 그렇지 않아도 되거든요. 조금 더 여성끼리 더 연대할 수 있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일까? “제가 인큐베이팅을 잘한대요!”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순환보직을 시키는데, 로이스 킴이 있는 부서에 신입들을 보내는 일이 부쩍 많았다고. 일에 대한 동기부여를 하고 자신감을 키워주는 일에는 나름 자신이 있었다.

“내가 이 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방황했던 분이 저희 팀에 와서 재밌게 일했고, 팀이 끝나고 나서 승진을 했어요. ” 그는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로이스 킴은 팀원의 성장을 먼저 생각하는 매니저가 결국 본인도 성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국가도, 기업도, 남편도 못한 대리육아를 해준 건 결국 두 어머니였다

로이스 킴(정김경숙) ⓒ로이스 킴 제공
로이스 킴(정김경숙) ⓒ로이스 킴 제공

일과 육아를 병행했던 ‘워킹맘’. 출산 이후 여자로, 엄마로, 리더로 산다는 건 혼자서는 다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힘들어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자신을 끌어주고, 밀어주고, 손 잡아준 존재는 직장에서도 여성이었지만, 가정에서도 여성이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들어주는 일은 국가도, 기업도 해주지 못했다. 남편도 일하느라 바빴다. 그를 엄마이자 직장인으로 살 수 있게끔 희생하고 헌신한 건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였다. 결국 또 여성이었다. 로이스 킴이 일과 공부하는 시간에는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가 손자를 돌봤다. 

24살에 1년에 10번이 넘는 제사를 지내는 종갓집 종손과 결혼한 로이스 킴. 시어머니는 은퇴 전까지 제사는 물론 집안의 대소사를 도맡아 일했다. 어머니는 모든 제사와 차례를 본인의 대에서 끝내시겠다며 제사를 정리하시기 시작했다. 더 많은 여자들이 더 오래 일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늘 지지를 보내주셨다. 

“어머니와 시어머니, 이 두 여성의 헌신적인 지지와 도움이 없었다면, 구글러 정김경숙이라는 정체성은 존재할 수 없었을 거예요.” 로이스 킴의 마음에는 두 여성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교차하고 있었다. 자신의 성장을 지켜봐 주고, "운이 아니라 네가 해낸 것"이라며 말하는 두 여성의 헌신을 잊지 않고 있다.

로이스 킴은 자신이 원하는 만큼 아이와 함께 있어 줄 수 없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했다. 대신, 아들과 함께 있는 시간과 경험을 소중하게 여기며, 아이의 기억에 각인할 수 있도록 아이에게 집중했고, 1대 1로 함께 여행을 다니며 추억을 쌓았다. 이제는 취업을 준비하는 아들에게 행복하게 일하려고 하는 엄마의 모습은 조기교육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목표가 깨졌을 땐 어떻게? 목표 그 자체보단 방향성이다!

로이스 킴(정김경숙) ⓒ로이스 킴 제공
로이스 킴(정김경숙) ⓒ로이스 킴 제공

“목표보다는 방향성이예요.” 

목표가 깨졌을 때, 자기를 몰아 붙이지 말고 나는 일단 그 방향으로 가고 있어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로이스 킴은 업무를 잘하기 위해 늘 새로운 것을 배우기를 멈추지 않았다. 일을 더 잘하기 위해, 지금까지 대학원 5곳을 다녔다. 일하지 않는 시간에는 검도, 수영, 대금, 등산 등을 한다. 특히 로이스 킴은 일을 잘하기 위해선 체력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에게 일이란 어떠한 의미일까? 첫 번째로 ‘경제적 독립’이다. 로이스 킴은 “특히 결혼한 후에 여성의 독립적인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선 일이 굉장히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두 번째로 일이 즐거워야 한다. 하루의 절대적인 시간을 보내는 곳이 회사니, 일이 즐거워야 한다고. 그렇다면 그에게 일의 즐거움은 어디서 오는 걸까?

로이스 킴은 자기 능력을 일에 활용하고 결과적으로 나의 일이 나를 넘어 사회에 도움이 될 때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에서부터 온다고 답했다. 구글코리아 재직 당시, 국내 유일의 성 소수자 청소년 위기지원센터 ‘띵동’의 설립을 지원했고 청소년 멘토링 프로그램을 이끌며 사회적 활동을 이어왔다. 

로이스 킴은 일을 즐기는 사람이다. 대화를 하며 그가 워커홀릭(workaholic)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일과 개인의 삶을 분리하기 위해 휴가를 즐기고, 일하는 시간 외에는 되도록이면 디지털 기기를 멀리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건강한 삶을 최우선 순위로 놓고, 그 다음에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사실 바쁘면 가장 먼저 포기하게 되는 게 운동이지만, 그는 “1시간 운동한다고 일 안 끝나거든요?"라고 말했다. 

최근 미국에서 불고 있는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 ’에 대해서 물었다. 로이스 킴은 “일과 개인의 삶에 건강한 경계선을 만들자”는 의미로 바라보고 있었다. 일을 대충하자는 게 아니라, 일할 땐 하고, 놀 땐 노는 워라벨(Work-life balance)의 다른 버전이라고 말했다. 

로이스 킴은 꿈을 꾸고 있다. “5년 뒤에는 미국에 있는 스타트업과 같은 조금 작은 회사의 규모에서 한 회사의 커뮤니케이션을 총괄하는 CCO(Chief Communications Officer)를 한 번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나서는 이제 경험을 살려서 NGO에서 일하고 싶어요.” 

1년 반 동안 집필한 ‘계속 가봅시다 남는 게 체력인데’라는 책은 권태와 무력감에 사로잡힌 직장인들에게 전하는 이야기다. 느리지만 제자리를 계속 걷다보면, 어느 순간 자신이 한 단계 위로 점프할 날이 온다고. 자신의 열정을 따라가며 지루한 일상에서 버텨내다보면, 자신의 성장과 발전을 느끼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라고 말이다.

책의 마지막 장에 적힌 문구는 어쩌면 직장인들이 바라는 꿈이 아닐까?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일을 원하는 만큼 즐기면서 더 오래 했으면 좋겠습니다. 계속 가봅시다. 남는 게 체력이잖아요.”

양아라 기자  ara.yang@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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