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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고 싶으니 도와줘" 영화 '다 잘된 거야'는 안락사로 작별을 준비하는 가족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아버지가 안락사를 부탁한다면?

​출처: 영화 라붐, 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영화 '다 잘된 거야'의 한 장면 출처: 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
​출처: 영화 라붐, 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영화 '다 잘된 거야'의 한 장면 출처: 더쿱디스트리뷰션 제공

 

오는 7일 개봉하는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다 잘된 거야>는 뜨거운 논쟁 주제 중 하나인 ‘안락사’를 주제로 한 영화다. 노화와 사고 등으로 통제를 벗어난 육체와 죽음의 자기결정권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아무르>(2012·미하엘 하네케 감독)와 <미 비포 유>(2016·시아 섀록 감독)의 문제의식을 이어가면서도 이 작품은 시선을 좀 더 확장하는데, 다름 아닌 가족의 이야기다. 늙고 아픈 부모가 완고하게 안락사를 고집할 때 자식은 어떻게 이를 받아들여야 할까. 제목인 ‘다 잘된 거야’는 아버지를 떠나보낸 딸의 복잡한 심경이 담긴 넋두리다.

80대 중반의 앙드레(앙드레 뒤솔리에)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중년의 딸 에마뉘엘(소피 마르소)은 여동생과 함께 병원에 누워 있는 아버지를 돌보게 된다. 에마뉘엘이 어렸을 때 자신의 성 정체성 혼란에 빠져 있던 앙드레는 딸에게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갈등은 흐릿해지고 부녀간의 평범한 애틋함이 남아 있다. 잘나가는 사업가로 자신만만하던 아버지는 남의 도움 없이는 배변 처리도, 목욕도, 이동도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다. 그리고 딸에게 말한다. “끝내고 싶으니 도와줘.”

영화는 아버지가 쓰러진 9월15일부터 사설 구급차를 타고 안락사가 허용되는 스위스로 떠나는 4월26일까지를 일기로 기록하듯 보여준다. 처음 아버지의 부탁을 듣고 에마뉘엘은 황당해하며 의료진과 상담한다. “그런 환자분들이 많다”고 답하는 병원 의료진의 해법은 항우울제를 늘리는 것뿐이다. 괜찮아질 거라고, 나아질 거라고 다짐처럼 에마뉘엘은 이야기하지만 이전의 활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그도 아버지도 의료진도 잘 알고 있다.

영화 '다 잘된 거야'의 한 장면. 출처: 더쿱디스트리뷰션
영화 '다 잘된 거야'의 한 장면. 출처: 더쿱디스트리뷰션

영화의 본격적인 질문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매일 새로운 모멸감을 경험하는 아버지를 지켜보면서 딸은 아버지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안락사는 병원이나 요양원을 결정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아버지의 결심은 확고하지만, 딸의 마음은 수시로 흔들린다. 영화는 묻는다. 만약 사랑하는 부모를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 부모의 자살을 돕는 일이라면 당신은 어떤 결정을 하겠나. 영화는 간단치 않은 안락사 과정을 묵묵히 준비하면서 순간순간 무너지는 딸의 마음을 다큐멘터리처럼 잡아간다. 딸은 본인이 직접 결정한 죽음이라는 걸 증명하는 아버지의 동영상을 찍고, 막판에 법적 문제가 꼬이면서 스위스로 출발하는 구급차 앞에서 아버지와 마지막 인사를 한다. 특히 어떤 미학적 포장 없이 날것처럼 보여주는 이별 장면은 안락사 또는 품위 있는 죽음이라는 추상적 주제를 구체적인 현실의 이야기로 다가오게 한다.

영화는 불쑥불쑥 마음을 후벼 파면서도 곳곳에서 뜨거워진 마음을 식힐 지점들을 마련해놓았다. 이는 노년의 고통과 품위, 심술과 변덕까지 유연하게 연기하는 노배우 앙드레 뒤솔리에와 중년의 딸로 등장하는 소피 마르소의 빼어난 연기력 덕분이다. 특히 애증의 관계였던 아버지의 쇠락하는 육체와 정신을 받아들이며 중년의 심적 무게를 담담하게 표현하는 소피 마르소의 모습은 80년대 청춘 스타의 아이콘으로 그를 기억하는 관객들에게 세월의 무게를 새삼 절감케 한다. 감독은 “영화를 보는 각자는 죽음에 대한 감정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겠지만 나는 작별을 앞둔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2021년 칸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이다.

한겨레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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