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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팅 상대에게 ‘담밍아웃’ 할 수 있나요?
ⓒstockfotocz via Getty Images

전자담배로 갈아탄 지 두달째다. 의도치 않았던 일이다. 친구 제이(J)가 이번에 나온 ‘아이코스3 멀티’ 한정판을 구입했는데 아무래도 잘 빨리지 않고 흡연 시간이 너무 짧다고 내게 넘겨준 것이다. 그는 아이코스보다 저렴한 ‘차이코스’를 새로 구입했다고 했다. 아이코스에 비해 배터리 용량도 크고 히팅 온도도 조절할 수 있어 만족한다고 했다.

어쨌든 오랫동안 연초만 피워 왔고, 담배를 끊으면 끊었지 굳이 번잡스럽게 전자담배 같은 걸 피우고 싶지 않았던 나는 결국 담배마저 ‘전자기기’의 세계로 넘어오게 되었다. 처음에는 제이가 말하던 ‘히팅’, ‘연무량’, ‘연타’ 등이 다 뭔가 싶었지만 이제 익숙하다. 두달 만에, 연초를 피웠던 과거의 나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마치 내게 마지막 남은 원시시대 인류와의 끈을 끊어버리고 불현듯 현대로 건너온 기분이랄까. 이제 내 방 책상 위에는 스마트폰, 휴대용 보조 배터리, 랩톱 컴퓨터에 더해 전자담배가 나란히 충전선에 연결되어 있다.

선사시대의 흔적을 지우며

담배를 전자기기로 바꾸면서 새삼 깨닫는 것이 많다. 담배를 피우고 들어오면 내 몸에서 저렇게 냄새가 많이 났겠구나, 연초를 피운다는 건 다름 아니라 매일같이 어딘가에서 악마의 불을 피워대는 일이었구나, 불을 피우면 일단 불이 있고 타는 냄새가 있고 타고 남은 연료와 재가 발생하기 마련이지, 아 그런데 ‘불’, ‘재’, ‘꽁초’가 없는 생활은 정말이지 산뜻하구나. 가장 좋은 건 내 집에서 피울 수 있다는 점, 재나 불똥 떨어질 걱정 없이 침대 위에 누워 넷플릭스를 보며 피워댈 수 있다는 점, 재떨이를 만들지 않아도 되고 따라서 재떨이를 갈 필요도 없어졌다는 점이다. 가끔 이제는 필요 없어진, 집 안 곳곳에 뒹구는 수많은 라이터들을 보면 선사시대의 흔적처럼 느껴져 헛웃음이 난다.

무엇보다 전자담배는 내가 그동안 얼마나 눈치 보며 담배를 피워왔던가 하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전자담배로 바꾼 뒤엔 사무실이나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 있다가 나가서 담배를 피우고 들어와도 예전처럼 옆 사람 눈치가 보이지 않는다. 내 몸에서 예전만큼 담배 냄새가 나지 않을 것이므로 웬만해선 내가 담배를 피우고 온지조차 모를 거라는 (여전히 믿을 수 없는) 믿음이 생겼다. 그것은 왠지 모르게 늘 움츠러들어 있던 어깨를 조금쯤 펴게 해 주었다.

길에서 담배를 피워도 예전만큼 목을 죄어오는 부담이 없다. (비흡연자님들이 들으면 또 많이 싫어하시겠지만) 사실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편해졌다. 연초는 일단 불을 붙여 놓으면 흡입을 하든 하지 않든 지속적으로 연기가 피어오르지만 전자담배는 그렇지 않다. 흡입할 때 외에는 연기가 나지 않고, 흡입 후 내뱉는 연무량도 예전에 비하면 거의 미미한 수준이다. 유해한 담배 연기를 최대한 내 몸뚱어리 안에만 머물게 할 수 있다. 꽁초도 불씨나 재를 걱정할 필요 없이 깔끔하게 빼내어 다른 마른 쓰레기를 버리듯 쓰레기통에 버리면 된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덜 보게 된 데는 궐련형 전자담배의 외형도 한몫하는 듯하다. 연초를 피우는 사람을 생각하면 ‘싸가지 없게’, ‘꼬나문’ 자세가 자연스럽게 떠오르지만, 전자담배(특히 궐련형 전자담배)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일단 무게가 무거워서 두 손이 자유롭도록 ‘꼬나물’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으며 시종일관 필통이나 우유병을 쥐듯 예의 바르게 그것을 감싸 쥐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인지 내 눈에 전자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연초를 피우는 이들에 비해, 뭐랄까 좀 공손해 보인다. 그들은 담배를 피운다기보다 커다란 USB 같은 것을 손에 들고 남몰래 조용히 작동해보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그러다가 ‘징~’ 하고 1회 흡연 시간이 끝났다는 진동이 울리면 그들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담배 피우는 일을 멈추고 얌전히 뚜껑을 닫은 뒤 제 갈 길을 가는 것이다.

여자라 더 커지는 ‘해방감’

물론 2019년에 흡연자가 ‘해방감’ 같은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은 금기란 것을 안다. 한때는 나도 ‘흡연이 파시즘보다 건강하다’(Smoking is healthier than Fascism) 같은 구호를 짐짓 마음속에 새기고 다녔다. 10년쯤 전엔 일본에서 어떤 지식인이 “금연 운동은 나치즘이다”라고 배짱 좋게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 옛날 일이다.

이제는 흡연권을 주장하며 ‘건강 파시즘’을 운운하거나, 인류 역사와 함께해온 특정 기호품에 대한 성인들의 자발적 선택권 운운하는 건 시대에 뒤떨어진 니코틴 중독자가 징징대는 소리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금연 운동은 이미 우리나라를 넘어 전지구화한 현상이고, 이제 전세계적으로 흡연자들은 다수 비흡연자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소수의 준범죄자 집단일 뿐이다.

그러나 사실 여성인 나는 담배에 대해 생각하면 아무래도 좀 비뚤어진 마음을 갖게 된다. ‘담배 피우는 여자’를 따로 언급하는 것이 이미 낡은 일로 느껴질 만큼 지금은 많은 여성들이 담배를 피우지만, 어린 시절 체화된 많은 금기들은 생각과 달리 여전히 내 몸에 남아 나를 억압한다.

대학 때 동아리방 창문 너머로 몰래 담배를 피우러 온 남고생이 라이터를 좀 빌려달라면서 내게 “무슨 여자가 담배를 펴요?”라고 물었던 일, 길에서 쯧쯧 혀를 차거나 아래위로 훑어보던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 담배를 피운다고 하면 호불호를 떠나 여전히 특별한 일처럼 여기던 직장 상사들. 이제는 옛날이야기 같지만 실은 아직도 한국의 많은 여성들이 자신이 담배 피우는 것을 부모에게, 시부모에게, 아이의 같은 반 엄마에게, 심지어는 애인에게, 소개팅한 사람에게 공개할 것인가 말 것인가(‘담밍아웃’)를 고민한다. 송은이·김숙의 팟캐스트 <비밀보장>에는 여성이 담배 피우는 사연과 관련한 상담을 도맡아 하는 ‘담배녀’가 있는데, 그 무수한 사연과 그에 대한 담배녀의 고리타분한 처방을 듣고 있으면 여전히 30년쯤 전에 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러니까 내가 앞서 말한 ‘해방감’ 속에는 아마 여성으로서의 해방감이 일정 비율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여성인 자신에게서 향기가 아니라 담배 냄새가 난다는 사실, 여성인 자신이 담배를 ‘꼬나물고’ 연기를 피워댄다는 사실이 어떤 식으로든 평가되고 손가락질 받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지난 세월 담배를 피우는 그 수많은 시간 동안 나도 모르게 줄곧 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많은 이들이 그렇겠지만 나도 부모님 앞에서는 담배를 피워본 적이 없다. 담배를 피운다고 그들에게 굳이 말하지도 않았다. 우습게도 삼십대 후반이 된 지금까지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다. 가끔 부모님 댁에 가서 담배가 간절하게 피우고 싶을 때가 있는데, 전자담배로 바꾼 뒤로는 잠시 옥상에 나가 조용히 담배를 피우고 돌아오곤 한다. 전자담배에는 그런 의외의 장점이 있다.

글 · 다이나믹 닌자

* 한겨레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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