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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에디터라는 직업에 대해 한마디로 설명하라면 이렇게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패션잡지에서 일하면서도 패션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집단'. 물론 개중에는 웬만한 패션기자 못지않은 지식과 취향을 과시하는 예외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나는 새로운 시즌의 경향에 관한 수다 따위는 제2외국어와 엇비슷하게 이해하는 수준이다. 그렇게 겉도는 전학생 같은 기분으로 몇 마디를 얻어듣다 보면 종종 어리둥절해지곤 한다. 풍월로 랩을 하는 3년차 서당개를 본받아, 샌들에 양말을 신으면 안 된다는 기초 상식쯤은 확실히 숙지했다고 생각했더니만 이제는 또 샌들에 양말을 신는 게 최신 유행이라고 한다. 도대체 뭘 어쩌라는 건가 싶다.

물론 함께 일하는 패션에디터들이야 디자이너들의 새롭고 과감한 아이디어를 자연스럽게 수용한다. 대다수 사람들의 눈에는 대담해 보일 법한 의상이나 액세서리도 큰 망설임 없이 시도하는 편이다. 그런데 패션이 너무 익숙해진 사람들 나름의 고충도 있는 모양이다. 특히 여자 기자들은 다음과 같은 자조적인 한탄을 할 때가 있다. "맨날 이렇게 입고 다니니까 연애가 안 풀리지." '이렇게'의 구체적인 내용은 당연히 시즌에 따라 바뀐다. 한때는 파워숄더 재킷이었고, 또 언젠가는 스터드 장식의 구두였다.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등장인물과 견주자면 하늘하늘한 천 조각을 휘감은 브리더보다는 퓨리오사나 부발리니 전사에 가까운 모습인 것이다. 평소 차림대로 소개팅 장소에 도착하면 상대방 남자의 얼굴이 워보이처럼 하얗게 질린다고들 한다.

아, 그렇다고 이 지면에서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백발백중 스타일링' 같은 걸 맨스플레인(남자가 잘난 척하며 여자에게 설명하는 것) 할 생각은 없다. 그렇지 않아도 숙이고 눈치 보고 맞춰가며 살 일이 많은 세상에 옷 정도는 각자 입고 싶은 걸 입어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파워숄더 재킷 정도에 겁을 먹고 도망가는 남자라면 놓쳤다고 그리 아쉬워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다만 패션 무지렁이 남성 한 명이 특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여성의 옷차림은 어떤 것인지, 사례 수집 차원에서 들어보고 싶다면 개인적인 견해를 이야기할 수는 있겠다. 일단 떠오르는 건 에이드리언 라인이 연출한 영화 속의 장면들이다. 조지 밀러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로 젊은 감독들에게 액션에 대해 한 수 가르쳐준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언제고 이분이 다시 복귀해서 섹시함의 본때를 보여주길 기다리고 있다.

내겐 너무 섹시한 펜슬스커트

여주인공 엘리자베스(킴 베이싱어)가 존(미키 루크)을 위해 조 코커의 '유 캔 리브 유어 햇 온'(You Can Leave Your Hat On)에 맞춰 스트립댄스를 추는 유명한 장면.

1986년작인 <나인 하프 위크>는 올해 초 개봉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와 마찬가지로 선남선녀의 위험한 일탈을 다룬 로맨스다. 여주인공 엘리자베스(킴 베이싱어)가 존(미키 루크)을 위해 조 코커의 '유 캔 리브 유어 햇 온'(You Can Leave Your Hat On)에 맞춰 스트립댄스를 추는 유명한 장면(사진)은 펜슬스커트가 얼마나 섹시한 아이템인지를 증명한다. 일단 재킷부터 벗어던진 여자는 어스름한 조명을 받으며 벽에 비스듬히 기댄다. 그리고 그 순간, 스커트의 길고 날씬한 실루엣이 선명하게 강조된다. 에이드리언 라인은 우아하고 클래식한 의상을 야하게 연출하는 능력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언페이스풀>의 초반부, 돌풍이 다이앤 레인의 단아한 트렌치코트를 뒤집어 올리는 바람에 쭉 뻗은 다리가 드러나던 장면에서도 다시 한번 확인된 내용이다. 일상적이고 무난하고 다소 엄격해 보이는 아이템에 기습적인 에로티시즘을 곁들이는데 그 방식이 느끼하거나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러워서 더 자극적이다. 오래전 <나인 하프 위크>를 보고 난 뒤로 펜슬스커트는 내게 강력한 페티시가 됐다. 몇 차례의 새로운 시즌이 거듭되고 디자이너들이 온통 찢어지고 여기저기 구멍 뚫린 옷들을 내놓는다고 해도 유행에 둔한 내 취향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이게 다 에이드리언 라인 때문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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