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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은 보수의 품격을 내팽개쳤다
황교안은 보수의 품격을 내팽개쳤다
ⓒhuffpost

황교안 전 총리는 정치인 이전에 법조인이다. 공안검사였고, 법무부 장관까지 지냈다. 그런 그가 이 나라의 사법체계를 뒤흔들고 있다. 그는 자유한국당 대표 경선 과정에서 최순실 국정농단의 증거를 담은 태블릿PC의 조작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자신이 몸담았던 검찰을 비롯해 국과수, 법원이 모두 “태블릿PC가 조작되지 않았다”고 결론내렸다는 사실에 눈감았다. 같은 주장을 했던 변희재가 1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사실도 무시했다. 황교안은 법률가의 양심에 어긋나는 폭탄 발언을 해놓고 단 한 조각의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황교안은 2016년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면서 총리에서 대통령권한대행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태블릿PC 조작 가능성이 있었다면 당연히 그 전에 문제를 제기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침묵을 선택했다.

황교안은 헌재가 박근혜를 탄핵하자 “대한민국은 법치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며 “우리 모두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당사자다. 그는 2017년 5월 9일까지 대통령권한대행으로 나라를 대표했다. 그러고도 이제 와서 박근혜 탄핵의 스모킹건이 된 태블릿PC의 조작 가능성을 거론하는 건 “모든 과거를 원인무효로 하자”는 무책임한 언사다.

그는 탄핵 불복이라는 금기선도 넘었다. 조작설을 제기하기 이틀 전 “객관적 진실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는데 정치적 책임을 물어 탄핵한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했다. 아무리 다급해도 이렇게 한 입으로 두 말을 해도 되는가.

태극기 부대의 성화, 박근혜가 자신의 면회를 거절했다는 유영하의 폭로가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그가 친박 대표 주자인지 알고 줄을 섰던 사람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뭔가 분위기 반전이 필요했다. 마침 ‘5·18 망언’의 주역인 극우 김진태가 경선 토론에서 의견을 묻자 탄핵불복, 태블릿PC 조작이라는 극약처방을 차례로 덥석 쥐었다.

황교안은 태극기부대를 끌어안으면 당권도, 대권도 탄탄대로라는 계산을 했겠지만 단견(短見)이다. 태극기부대의 환심을 사고, 친박 세력의 동요를 막으면 당권은 잡을 수 있지만 대권은 완전히 다르다. 여론조사 결과 태극기부대와 단절해야 한다는 의견은 포용해야 한다는 응답의 두 배가 넘는다. 자유한국당이 그토록 통합하기를 원하는 바른미래당의 지지자들은 대부분 단절을 원하고 있다. 태극기부대의 비위를 맞출수록 국민의 뜻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다.

문제는 대권은 태극기부대의 함성이 아니라 국민의 지혜로운 판단에 따라 결정된다는 점이다. 다수 국민은 보수가 과거로 퇴행하지 않고, 미래로 달려가기를 원하고 있다. 황교안의 태블릿PC 조작 가능성 제기는 국민의 기대를 외면한 것이다.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두어선 안 될 악수(惡手)였다.

이런 몰역사적, 극단주의 행태는 보수정당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독소다. 온건 보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가세로 경선 흥행몰이에 성공하면서 민주당과의 격차를 좁혔던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의 ‘5·18 북한군 개입설’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황교안의 탄핵 불복과 태블릿PC 조작 가능성 제기는 결정타를 날렸다. 자유한국당은 태극기부대의 환호를 얻었지만 국민의 신뢰는 잃었다.

지금이 어떤 시기인가. 국민들은 집권세력의 실정(失政)에 넌더리를 내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함께 잘사는 세상을 만든다”면서 소득주도 성장을 밀어붙였지만 결과는 참담하다. 일자리를 잃은 저소득층과 생업을 접고 눈물과 한숨으로 하루 하루를 보내는 자영업자들이 무서운 속도로 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 가난해지고 있다. 무능한 진보다.

이런 마당에 민주당은 “대통령 열 분은 더 당선시켜야 한다”며 ‘50년 집권론’을 꺼내들었다. 지친 국민들은 어이없어 하고 있다. 야당으로서는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그런데 대안이 돼야 할 의석수 113석의 제1 야당의 경선 행태는 어떤가. 민생파탄의 해결책을 내놓기보다는 권력다툼에 눈이 멀어 누가 민심에서 더 멀어지나 경쟁하고 있다. 불쌍한 국민들의 억장이 무너지고 있다.

진보세력이 피흘려 민주화를 성취했다면, 보수는 땀흘려 산업화의 신화를 만들었다. 보수의 아이콘인 줄 알았던 황교안의 태블릿PC 조작설 제기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신파극이다. 그는 법치를 무시했고, 가짜뉴스에 올라탄 민심 역주행으로 보수가 지켜야 할 품격을 내팽겨쳤다. 더 늦기 전에 발언을 거둬들이고 사과해야 한다. 그게 보수와 공동체 전체를 살리는 길이다.

* 중앙일보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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