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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의 불끄기
ⓒTzido via Getty Images
증오의 불끄기
ⓒhuffpost

지난 주말 한겨레에 중요한 인터뷰가 실렸다. 그 기사에서 국가인권위원장은 ‘소수의 어떤 견고한 집단’이 혐오를 전체로 확장하고 있으며, 인간을 벌레집단으로 몰고 가는 식의 차별적 혐오를 그대로 두면 큰 사회적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인권의 역사를 아는 사람은 맘충, 틀딱충, 한남충, 급식충, 지방충, 난민충과 같은 극혐 표현을 접하면 불길한 기시감에 사로잡히곤 한다. 히틀러는 유대인을 ‘해충’, 스탈린은 독립자영농 쿨라크를 ‘계급의 적’, 일본은 연합국 영미를 ‘귀축’(鬼畜), 크메르루주는 탄압 대상을 ‘불순분자’, 르완다의 후투족은 투치족을 ‘바퀴벌레’로 각각 지칭하지 않았던가. 이 정도라면 혐오를 넘어 파괴적인 증오다.

어떤 사람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호명하는 순간, 해로운 ‘그것’을 제거하는 일은 반드시 수행해야 할 과업이 된다. 그렇게 한 결과가 어떠했는지 우리는 잘 안다. 타자를 인지적으로 비인간화하기 시작하면 감정적 적개심으로 번지기 쉽고, 그런 적개심이 사악한 행동으로 표출되는 건 시간문제다.

이런 증오가 어디서 오는가, 왜 이렇게 극악한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우리는 모든 것이 다른 모든 것과 연결된 지구화 시대에 살고 있다. 전세계적 현상으로서 증오를 통찰할 수 있어야 한다. 유엔이 정한 국제관용의 날인 11월16일, 유럽안보협력기구의 ‘민주제도와 인권사무국’은 2017년 39개국의 증오범죄 현황을 발표했다.

공식적으로 집계된 증오범죄와 증오사건만 6000건 가까이나 되었다. 증오범죄는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특정한 편향동기를 가진 범죄행위다. 이 조사에서 인종차별-외국인 혐오, 성적 지향과 젠더 정체성 혐오, 여혐과 남혐, 반유대인, 반무슬림, 장애인 혐오, 로마-신티 집시 혐오, 종교 혐오 등이 주요한 편향동기로 꼽혔다. 한국에서도 이런 동기들을 관찰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증오범죄가 심각해지면서 전문적 연구도 늘었다. 5년 전 결성된 국제증오연구네트워크(INHS)는 “증오에는 국경이 없다”는 명제를 내걸고 ‘증오연구’라는 세부 학문분야를 주도하면서 ‘증오연구저널’이라는 학술지까지 발간하고 있다. 홍성수 교수의 <말이 칼이 될 때>도 이런 경향을 반영한 저서다.

증오범죄와 증오사건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것의 맥락조건과 구성요소를 함께 알아봐야 한다. 이것들이 서로 이어지면서 증오가 폭발한다.

우선 정치적 맥락의 조건. 권위주의 성향의 지도자 출현, 난민의 대량유입, 극단적 포퓰리즘, 불안정한 정부 구성, 가짜뉴스와 유사뉴스, 왜곡뉴스를 양산하는 새로운 정치 커뮤니케이션 방식, 민주세력의 지리멸렬 등을 꼽을 수 있다. 한국에선 세월호 사건, 촛불집회와 대통령 탄핵, 한반도의 극적인 정세변화가 주요한 정치적 맥락이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경제적 맥락의 조건. 특히 세계적으로 악화된 불평등 구조가 중요하다. 사회가 불평등할수록 사람들의 허탈감, 시기, 열등감, 불만, 우울, 타자와 자신에 대한 공격 성향이 늘어난다. 끓어오르는 분노의 압력은 사회의 약한 틈새인 소수-약자집단을 희생양 삼아 터져 나오기 쉽다. 미국의 연방수사국과 민간 연구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불평등이 심한 주일수록 증오범죄-증오사건이 증가하는 상관관계를 보인다고 한다.

한국의 불평등도 심각하다. 근로소득과 자산소득을 합친 통합소득의 지니계수가 0.5를 넘어 국제기준으로도 매우 높은 불평등 수준이라는 조사가 얼마 전에 보도되었다. 지난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최하위 1분위 가구와 최상위 5분위 가구 사이의 소득격차가 조사 이래 최악인 5.52배로 나왔을 정도다.

마지막으로, 집단 무의식의 맥락조건도 있다. 요즘 증오연구에서는 융의 정신분석 이론을 활용하곤 한다. 이슬람이 7~17세기 사이 동유럽과 남유럽에 침입했던 역사적 사례가 오늘날 반난민 정서의 원형일 가능성이 있다. ‘명백한 운명’이라는 미국의 역사적 환상은 트럼프의 선거구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로 부활했다. 남북한 화해에 대한 반작용으로 레드 콤플렉스의 집단 무의식이 수면 위로 드러날 때가 많다.

이런 맥락조건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증오가 나타나는 건 아니다. 추가적인 구성요소들이 맞물릴 때 본격적으로 증오가 증오범죄 또는 증오사건의 형태로 발현된다. 이것을 ‘증오의 3요소’라 한다. 첫째 요소는 증오를 부추기는 지도자다. 그는 카리스마를 갖추고 권력의 사유화를 추구한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선 어떤 짓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 신봉하는 가치는 보통 사람들과 전혀 다르다.

예를 들어, 그가 무고한 사람에 대한 폭력을 규탄한다면 빈곤층이나 약자계층에 대한 폭력을 규탄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과 같이 매일매일 순교자처럼 헌신하는 사람에 대한 세상의 ‘몰이해’와 ‘비방’과 ‘음해’를 규탄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지도자가 사용하는 표현과 수사는 거짓이나 위선이 아니다. 그런 사람은 애당초 근본에서부터 뒤틀린 자기만의 세계관에서 나온 확신을 도덕적 가치로 내세우는 것이다.

둘째 요소는 증오의 지지자들이다. 이들 중 적극적 동조자는 증오선동 지도자의 가치관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능동적으로 행동에 나선다. 소극적 순응자는 현실 욕구불만, 미성숙한 자아, 부정적 자기평가와 낮은 자존감을 특징으로 하면서 증오선동에 은근히 동의하고 박수를 친다.

안제이 워바체프스키는 어느 사회든 폭력, 고통, 잔인성을 긍정하는 이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소수의 어떤 견고한 집단’은 규모가 작지만 활동범위가 넓고, 확신의 강도가 상상할 수 없이 단단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하고 악영향을 끼친다.

증오를 선동하는 지도자와 지지자들 사이엔 공통점이 많다. 이들은 죄의식과 자기성찰이 부족하고 소유욕과 지배욕이 강하다. 사고와 감정이 경직되어 있고, 인지적·정신적 결핍 때문에 타인에 대한 공감이나 연대를 못 한다. 남을 끝없이 의심하는 편집성 인격장애, 자신의 옳음을 맹신하는 자기애적 인격장애, 타인을 목적 달성의 수단으로 간주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도 있다. 증오를 선동하는 지도자는 반대파에겐 불순세력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추종자들은 애국시민이라고 떠받들면서 사회 분열을 심화한다.

셋째 요소는 증오를 야기하는 환경이다. 정치, 사회 상황이 불안정하고, 경제적 어려움을 실제 또는 가상적으로 우려하는 사회 분위기가 큰 몫을 한다. 높은 실업률과 감당할 수 없는 주거상황, 집단 정체성을 강조하는 문화, 강력한 지도자를 희구하는 열망, 외집단을 배제하는 내집단 중심담론, 조금이라도 상황이 불확실해지면 질서 회복을 위해 무슨 조처든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태도도 증오를 불러오기 쉬운 환경을 만든다. 이럴 때면 악화된 환경이 증오의 ‘수요’를 만들어내고, 그것에 호응하는 지도자-지지자들이 증오를 ‘공급’하는 순환구도가 형성된다.

증오의 구성요소는 화재가 발생하는 ‘연소의 3요소’와 비슷하다. 불이 붙으려면 불꽃과 연료와 산소가 있어야 한다. 증오를 선동하는 지도자는 불꽃이고, 증오를 지지하는 자들은 연료이며, 증오를 야기하는 환경은 산소에 비유할 수 있다.

불을 끄려면 ‘연소의 3요소’ 중 일부 혹은 전부를 통제해야 하듯, 증오를 근절하려면 체계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증오의 ‘불꽃’을 피우는 지도자를 제압하기 위해선 합리적 선거제도, 정당 발전, 분열적·선동적 정치인의 퇴출이 핵심이다.

증오의 ‘연료’가 되는 지지자들을 봉쇄하기 위해선 학교와 직장 민주주의, 갑질문화 근절, 인권교육 활성화, 가짜뉴스 퇴치 캠페인, 이성적 소통 훈련이 필요하다. 차별금지법도 도움이 된다. 증오를 확산하는 ‘산소’를 차단하려면 빈부격차를 줄이는 포용적 사회·경제정책이 시행되어야 한다.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지만 촛불혁명을 이뤄 낸 시민들에겐 불가능한 과제가 아니다. 세계인권선언 70주년을 맞아 증오의 3요소를 격퇴할 아이디어를 함께 찾아보자.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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