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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신경숙 허난설헌, 한겨레

한 대중소설 작가의 표절이 다시 거론되면서 문학계 안팎으로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표절혐의를 받고 있는 신경숙씨의 옹색한 대응과 출판사 측의 어이없는 해명으로 독자들은 작가와 해당 출판사인 <창비>에 깊은 배신감마저 느끼고 있는 듯하다. 작가의 막무가내식 부인은 예상한 것이었고, 출판사는 한 작가를 지키려다가 수많은 독자들을 잃은 셈이니, 뼈아픈 자충수를 두고 만 격이다.

그런데 신경숙씨의 표절 의혹은, 이제는 널리 알려졌듯이 이응준씨가 처음 제기한 것이 아니다. 이 문제를 두고 이미 끝난 일을 왜 다시 꺼내야 했는가?란 의문이 일어났고, 이응준씨는 "표절에는 공소시효가 없다."는 말로 자신의 입장을 정리했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왜냐하면 일컬어 '문단'이라는 것은 사회지 실체가 있는 단체나 기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작가회의나 시인협회와 같은 단체가 있지만 그것을 문단이라고 할 수는 없다. 따라서 문단은 단체나 정부와 같은 기구가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작가를 처벌 할 수도 없고 그런 조직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표절은 의혹을 받은 작가가 인정하지 않는 한 끝없이 제기되고, 그렇기 때문에 더 집요하게 그가 죽은 다음에도 이어진다. 그러니까 문단에서 표절에 대한 응징은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행해지는 부관참시와 같다.

그 한 예로 조선시대의 시인 허난설헌의 표절 의혹이 그것을 증거한다. 허난설헌의 표절의혹은 동갑내기인 이수광이 「지봉유설(芝峰類說)」에서 난설헌의 시는 두 세 편을 제외하고 모두 위작이라고 주장했고, 심지어는 허균과 이재영이 지은 시도 있다고 적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신흠(申欽) 역시 「청창연담(晴窓軟談)」에서 『유선사(遊仙詞)』같은 작품은 태반이 옛 사람의 전편(全篇)임을 밝혔고, 이어서 김시양(金時讓)이 그의 저서 「부계기문(涪溪紀聞)」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떤 사람은 '거기에는 남의 작품을 표절한 것이 많다.'고 하였으나 나는 본래부터 그 말을 믿지 않았는데, 내가 종성으로 귀양오게 되어 《명시고취(明詩鼓吹)》를 구해 보니, 허씨의 시집 속에 있는, 아름다운 거문고 소리 눈에 떨치니 봄구름 따사롭고(瑤琴振雪春雲暖) 패옥이 바람에 울리는데 밤 달이 차가워라(環珮鳴風夜月寒)라고 한 율시 여덟 구절이 『고취(鼓吹)』에 실려 있는데, 바로 영락(永樂) 연간의 시인 오세충(吳世忠)의 작품이다. 나는 이에 비로소 어떤 사람이 한 말을 믿게 되었다. 아, 중국 사람의 작품을 절취하여 중국 사람의 눈을 속이고자 하였으니, 이것은 남의 물건을 훔쳐다가 도로 그 사람에게 파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중국 사람의 작품을 절취해 중국 사람의 눈을 속인다는 말은 허난설헌의 시집이 중국에서도 간행되었고, 거기서도 베스트셀러가 되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중국에서도 표절의혹이 제기되었다. 중국에서 가장 먼저 표절문제를 제기한 이는 전겸익이었고, 이어서 청나라 때 주의존(朱彛尊)도 난설헌 작품의 위작 흔적을 지적했다. 그리고 17세기가 되자 김만중이 나선다. 서포만필(西捕漫筆)에 나오는 대목이다.

난설헌 허씨의 시는 손곡(李達)과 그 오빠 하곡으로부터 나왔는데, 그의 공부는 옥봉(玉峯) 같은 분들에게는 미치지 못하나 총명하고 민첩함은 그들을 넘어선다. 우리 나라의 규수 중에 오직 이 한 사람뿐이다. 다만 아까운 점은 그 아우 균이 원나라와 명나라 사람의 좋은 글귀와 아름다운 시 가운데 보기 드문 것을 뽑아서 난설헌의 문집 가운데다 침입하여 명성과 위세를 크게 한 점이다. 이것으로 우리 나라 사람을 속이는 것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다시 중국에 들여보내었니 마치 도적이 남의 소나 말을 도적질하여 그 마을에다가 전매하는 것 같아서, 어리석기가 그지 없다. 또 불행하게도 전겸익을 만나서, 간사한 것을 적발 당하고 밑바닥이 온통 들어나게 되어 사람으로 하여금 크게 부끄럽게 만드니 아까운 일이다. 천고에 이름을 날린 사람이 본래 많지 않다. 허씨와 같은 재주는 저절로 일대의 혜녀(慧女)가 되기에 충분한데도 이런 짓을 하여 스스로를 더럽혔다. 사람으로 하여금 매편마다 의심나게 하고 매귀마다 흠집을 찾게 만드니 탄식할 일이다.

서포의 안타까움이 지금 우리의 안타까움을 보는 것 같다. 난설헌의 표절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다시 18세기로 넘어가서 홍만종(洪萬宗)이 시화총림(詩話叢林)에서, 그리고 19세기에 한치윤(韓致奫)이 「해동역사(海東繹史)」에서 세세하게 허난설헌의 표절을 밝히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세기에 이러한 허난설헌의 표절 시비를 허미자씨가 논문으로 발표하고 있으니 지금까지 장장 500년 동안 표절 의혹을 제기해 온 것이 된다. 이것이 바로 형량이 없는 문인 사회의 심판이다.

표절에 대한 이런 가혹한 처사는 당연히 자기 글에 대한 엄정함에서 나온다. 거꾸로 표절에 관대한 사람은 자기 글에 대한 엄정함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말이 된다. 그런 사회는 글에 대한 명확한 의미를 잃게 되고, 말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게 된다. 글과 말이 어지러워지면 정치가 문란해지고 사회가 타락한다.

언제부터인가 한국문단은 표절에 대해서 신경계가 고장 난 것처럼 대해 왔다. 표절 논란이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는 작품에 버젓이 문학상을 수상하고 있는 게 지금 우리의 문단이다. 옆집 아이가 울면 하던 일도 멈추고 나가서 왜 우는지 살펴보는 게 사람의 정리다. 표절 당했다고 거리에서 피를 토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그 논란의 대상인 작품을 위해 시상식을 하고 있다니, 이 정도면 차라리 엽기에 가까울 정도다.

자기 글의 엄정함을 지키기보다 출판사나 신문사의 입장을 지키기 위해서 시인, 소설가, 평론가들이 동원되고, 그것을 자신의 권위쯤으로 자랑스러워 하는 문인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자기 시집이 많이 팔리는 것을 부끄러워하던 시절이 멀지 않은 과거에 분명 있었다. 자기 시가 혹시 엄밀하지 못했나 하는 근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런 염치는 구태의연한 것이 되고 만 것 같다. 소설과 대중소설의 구분도 없고, 많이 팔리는 작가가 위대한 작가가 된다. 그 허명에 휩싸여 자신의 실수를 제대로 인정하지 못한다는 것은 불행이다. 명백히 드러난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바로 자신의 명성이 헛된 것이었다는 반증이다.

허난설헌은 죽을 때 자기의 시들을 다 불태워 달라고 유언을 남겼고, 실제로 그렇게 해서 남아 있는 시가 없었다. 허난설헌의 시를 살려낸 것은 그의 동생 허균이다. 그의 비상한 기억력으로 허난설헌의 시는 되살아났고, 중국에 까지 문명을 떨친 그녀의 시는 역사의 도마 위에서 두고두고 난도질 당했다. 허균의 명민한 머리로 그것이 표절한 것임을 몰랐을까? 아니면 우리의 상식을 뛰어 넘는 희대의 천재 허균의 장난이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고, 표절에 대한 신경숙씨의 태도 역시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쩌면 늘 그랬듯이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질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가 또 표절의혹을 제기할 것이다. 그게 몇 백 년 동안 계속 될지도, 그 또한 알 수 없는 일이다.

글 | 함성호

건축가이자 시인인 함성호는 1963년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강원대 건축과를 졸업했다. 1990년 계간 『문학과사회』 여름호에 「비와 바람 속에서」 외 3편을 발표하면서 시단에 나왔다. 시집 『56억 7천만 년의 고독』 『聖 타즈마할』 『너무 아름다운 병』과 산문집 『허무의 기록』 등이 있다. 2001년 제 2회 현대시 작품상을 수상했다.

1991년 건축 전문지 『공간』에 건축 평론이 당선되어 건축 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21세기 전망' 동인, 웹진 PENCIL, 계간 『문학 판』 편집위원이기도 하다. 시인은 건축설계 사무소 EON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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