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결혼한 지 딱 3년 뒤였던 2008년 6월, 나는 이혼하기로 결심했다. 내 아내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된 게 아니었다. 사실 나는 아내를 사랑했던 적이 없었다. 그녀, 그리고 그녀 주위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사는 삶을 더 이상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 아내는 하시드 유대인이었고, 그녀와 결혼할 때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난 변했다. 나는 긴 수염과 구레나룻(파예스)를 기른, 모든 면에서 하시드로 보이는 22세 남성이었지만 무신론자였다. 정통 하시드 유대인에 둘러싸인 무신론자였다. 그들의 굳은 신앙, 그들의 음식, 그들의 독선과 그들의 미니밴에 둘러싸여 있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증오했고, 그래서 그곳을 떠나 불확실함과 옳고 그름에 대한 생각의 스펙트럼이 넓은 세상으로 들어갔다.
나는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유대교 탈무드 공부 말고는 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다. 하시드 세상 밖의 친구는 탈출을 시도하는 정통 유대인들을 도와주는 단체인 Footsteps에서 만난 몇 명이 전부였다. 나는 비위를 맞추는 것 말고는 아무 기술도 없었다. 데이트를 해본 적도 없었다. 비틀즈가 뭔지도 몰랐다. 그리고 나는 스타워즈에 나오는 '포스가 함께 하기를'이란 대사가 곧 '신이 함께 하기를'을 뜻한다고 생각했다.
"내 인생 대부분, 나는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은 유대인을 증오하고 죽이고 싶어한다고 믿었다."
하시드 세상을 떠난 나는 다양한 단계의 나락을 거치며 7년을 보냈다. 몇 달 동안 부시윅의 텐트에서 잠을 잤다. 신용카드 한도가 바닥날 때까지 렌트한 폭스바겐 제타에서 잤고 친구 집에서 신세를 졌다. 뉴욕의 거친 거리에서 배를 곯았다. 마지막 남은 돈으로 지하철 표를 사서 누나(11명의 남매 중 하나다)의 집에 먹다 남은 안식일 음식을 얻으러 갔을 때 누나는 내가 청바지를 입고 있다는 이유로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데이트를 했을 때는 나는 여성들과 공통점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그들의 문화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고 그들은 내 문화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나는 유대인이 아닌 여성들은 전부 창녀라고 생각했고, 그들은 하시드 유대인들은 전부 지주와 다이아몬드 딜러라고 생각했다.
하시드 유대교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을 보여주는 질문들에 답을 하겠다. 하시디즘은 아이들을 편협하고 무지하게 하려고 폭넓은 교육을 시키지 않는가? 그렇다. 하시드 유대인들이 바깥 세상에 끼지 않게 하려고 바깥 세상을 비난하는가? 물론이다. 이에 관련된 공포나 최후의 심판 등의 요소가 있는가? 당연하지. 감히 하시디즘을 떠나는 자는 파문 당하는가? 그렇고 말고.
나는 아직까지도 5학년 이후의 교육은 받지 못했다. 사실 내가 일반적인 학교에 다녀본 적이 없다보니 나는 5학년 교육이 뭔지도 모른다. 그냥 적당해 보이는 학년을 고른 것뿐이다. 나는 대수학이 뭔지 모른다. 구글 검색을 해볼 수 있다는 건 알지만 그 정도로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하시드 세상을 떠난 나는 다양한 단계의 나락을 거치며 7년을 보냈다."
내 인생 대부분 나는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은 우리를 증오하고 죽이고 싶어한다고 믿었다. 나는 모든 비유대인들은 살인자, 강간범, 타락한 자들, 더러운 2급 시민이라고 믿었다. 물론 그들/우리는 그렇지 않지만, 세속적인 삶이 덜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내겐 그런 교육을 받게 했다. 나는 하시디즘을 떠나면 내게 이 세상에서, 그리고 '다음 세상'에서 끔찍한 일이 일어날 거란 말을 들었다. 내가 범죄자나 마약 중독자가 될 거란 말을 들었다. 내 가족들 중 상당수는 지금까지도 나와 말을 섞지 않는다.
나는 하시디즘에서 빠져나오면서, 그리고 주류 문화로 편입되면서 두 번의 과도기를 거쳐야 했다. 나는 커뮤니티와 온기가 빠져나간 빈 자리를 채울 대체물이 필요했다. 내 가족, 친구, 윤리의 기준을 대신할 것이 필요했다. 모두를 두고 떠나기란 힘들었지만, 그 자리를 채울 것을 찾는 건 더 힘들었다.
고맙게도 배우로서 내 업계의 커뮤니티는 아주 친절하고 (경쟁적이긴 하지만) 새로운 사람들을 잘 받아준다. 나는 내 생물학적 가족을 배우들과 Footsteps 회원들로 대체했다. 데이트도 할 수 있었고, 실연도 당해보았고, 몇 명을 거절하기도 했고, 그 모든 것 덕택에 성장할 수 있었다.
내가 늘 받는 질문이 있다. "지금은 행복해요?" 대답은 분명하다. "네!" 내겐 나를 지금 모습, 과거의 모습, 내가 되려고 하는 미래의 모습 그대로 사랑해주는 친구들이 있다.
"내 가족, 친구, 윤리의 기준을 대신할 것이 필요했다."
커리어 면에서는 나는 가장 힘든 길을 택한 것 같다. 높은 광대뼈와 재규어 같은 체격을 지닌 다재다능한 사람들이 가득한 분야에서 일하기로 했으니 말이다. 나는 키가 168cm고, 체격도 별로고 이디시 억양이 강하다. 그렇지만 내게 일거리들이 들어왔다. 내 최근 영화인 '펠릭스 앤 메이라'는 토론토 국제 영화제에서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을 꺾고 '캐나다 피처 영화상'을 탔으며, 나는 토론토 영화제에서 최고 배우상을 탔다. 다음에는 아마존 프라임의 '트랜스페런트'에서 계속 등장하는 역을 맡을 예정이다.
하지만 하시드 커뮤니티에서 슬쩍 빠져나와 그 영화를 본 사람들의 반응에 비하면 내가 이룬 이런 일들은 시시해보인다. 그들은 무척이나 벗어나고 싶어했지만 만약 그랬다간 감옥이나 재활원에 가게 될 거란 말을 들었고, 그들은 그 말을 믿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나 같은 사람들의 성공담으로 맞설 수 있다.
하시드 커뮤니티는 불과 5년 전과도 다르다. 인터넷이 있어 모두 자기 마음이 원하는 모든 선악과의 모든 맛을 다 볼 수 있다. 그 중에는 나의 이야기도 있다. 제국은 얼마 가지 않아 무너질 것이다.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분명 21세기에 적응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을 것이다.
제국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제국은 역습할 것이다. 아래의 댓글들이 그 증거다.
*본 기사는 허핑턴포스트 US의 'I Escaped Hasidic Judaism and Went From Living on the Streets to Being a Hollywood Actor'을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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