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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게 분칠을 하고 소녀들은 왕자가 되었다. 왕자가 선택해주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왕자가 된 그녀들의 이름은 '여성국악동호회'다. 여성으로만 이뤄진 단원들이 남장을 하고, 남성 배역까지 소화하는 '여성국악동호회'는 오늘날 여성국극단의 시초다. 그녀들은 무대에 올라 창과 무용으로 구성된 창극을 공연했다. 1948년 명동 시공관의 무대에 <옥중화>를 올린 것이 첫 시작이다. 여성국극은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지만 60년대에 들어서자 급격히 쇠퇴했다. 이런 시대의 흐름 속에서 대중의 사랑을 받고 또 대중의 외면을 받은 이가 여성국극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임춘앵'이다.

명동에는 '왕자가 된 소녀들'이 있었다

<춘앵전> - 전진석&한승희

전진석, 한승희 작가의 만화 <춘앵전>은 기억 속에서 사라졌으나 1950년대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여인이자 예술인이었던 '임춘앵'의 일대기를 다룬다. 작품은 명동의 시공관에 빽빽이 몰려든 관객의 모습을 비추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어 무대에 등장한 이는 면류관을 쓴 잘생긴 배우. 공연이 끝나고 무대 뒤에서 담배 아리랑을 멋들어지게 피우는 배우의 화장기 없는 얼굴은 남자가 아닌 여인의 모습이 분명하다. 그녀가 바로 임춘앵이라는 것을 암시하며 작품은 그녀가 전라남도 광주에서 소리와 춤을 배우며 예기를 꿈꿨던 때로 돌아간다. 이후 <춘앵전>은 광복 직전과 직후 그리고 6.25 전쟁이 일어나기까지, 커다란 바람이 몇 차례나 불었던 한국 근현대사 속의 임춘앵을 보여준다. 혼란의 시간은 그녀가 예술인으로서 거듭나는 시간과 함께 맞물려 거센 파도처럼 휘몰아친다.

임춘앵과 여성국극단이 뛰며 놀며 공연했던 명동의 시공관은 지금의 명동예술극장이다. 시공관은 광복 직후부터 1970년대까지 공연예술의 핵심이었던 곳이다. 일제강점기인 1934년 일본인 건축가 이시바시 로스케에 의해 지어진 이곳은 광복을 맞이하기 전까지 '명치좌'란 이름의 영화관으로 사용됐었다. 광복 이후 연극, 무용, 오페라 등 다양한 공연예술이 오르면서 한국 공연예술의 꽃도 함께 피었다. 시공관의 전성기를 함께 한 것은 단연 임춘앵이 필두가 된 여성국극이었다. 첫 공연 <옥중화>부터 대중들에게 가장 큰 사랑을 받은 작품 <청실홍실>, <햇님달님>까지 이들의 공연이 있는 날이면 명동의 시공관 앞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하지만 6.25 전쟁 발발로 여성국극단은 거처를 옮기며 공연을 이어나가야 했고 시공관 역시 57년이 되어서야 제 기능을 찾을 수 있었다.

명동에는 '왕자가 된 소녀들'이 있었다

1956년 2월 17일 경향신문에 실린 여성국극 공연 <백년초> 광고

1960년대에 들어서 '여성들만의 사이비 예술'이란 비판을 받으며 설 자리를 잃게 된 여성국극은 너무나 빠르게 대중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1968년 결국 은퇴한 임춘앵은 후진양성에 힘쓰며 많은 인재들을 키워냈지만 여성국극의 부활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아야했다.

2013년 4월 여성국극에 대한 다큐멘터리 <왕자가 된 소녀들>이 개봉했다. 임춘앵의 조카이자 수제자인 김진진, 김혜리는 임춘앵에 대한 추억을 늘어놓으며 이렇게 말한다. "(임춘앵은) 최고의 선생님이지. 우리는 판소리도 안 배웠고 학교 다니다가 무대로 들어와서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최고의 선생님에게 보고 듣고 배운 거였어."

글_ 남민영 에이코믹스 에디터

* 이 글은 에이코믹스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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