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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도 빽도 없는 난 최경환 인턴을 위한 들러리였다
ⓒ뉴스1

2013년 7월31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진흥공단(중진공) 본사 12층, 검은 정장을 말끔히 차려입은 젊은 남녀가 복도를 가득 채웠다. 다들 긴장한 모습이었다. 한달 반 가까이 진행된 중진공 신입 공채 마지막 과정인 2차 면접이 이날 열렸다.

24명을 뽑는 행정직 시험에 4496명이 응시했다. 서류-필기-1차면접을 거치며 4425명이 탈락했고 71명이 남았다. 이제 한 관문만 더 통과하면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평균 연봉 7700만원의 금융공기업 중진공의 직원이 될 수 있다.

10명이 한 조가 돼 면접을 봤다. 마지막 조에 속한 조승환(가명·30)씨도 다른 9명의 지원자와 함께 면접장에 들어갔다. 박철규 당시 중진공 이사장 등 6명의 면접관이 미리 자리하고 있었다. 각자 1분씩 자기소개를 하고, 이후 면접관의 자유질문 순서로 이어졌다.

“수고했습니다. 나가보세요.”

면접관들은 몇번 질문을 하지 않고 이내 면접을 끝냈다. 조씨는 단 하나의 질문도 받지 못했다. 면접자 수가 열명이나 돼, 꽤 오래 걸릴 거라 예측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조씨처럼 질문을 받지 못한 지원자가 다수였다.

돈도 빽도 없는 난 최경환 인턴을 위한 들러리였다

‘내정자가 있나?’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면접 때 질문을 하지 않거나 좌우명 같은 뻔한 질문을 하면 내정자가 있는 것이라는 얘기가 떠올랐다. 조씨는 그렇지 않을 거라 불안을 다독였다. 중진공 면접을 위해 어머니가 사준 새 여름 양복이 이날따라 무겁게 느껴졌다.

조씨에게 중진공은 각별했다. 서울 한 사립대 경제학과 07학번인 그는 군 제대 뒤 2013년 졸업을 늦추고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금융 공기업을 목표로 했다. 중진공에 앞서 수출입은행, 주택금융공사, 예금보험공사에 지원했지만 예선 탈락했다. 중진공은 최종 면접까지 간 첫 회사였다.

여름방학 두달여간 서류전형-필기시험-실무면접-신체검사-임원면접 등을 치르며 ‘중소기업의 든든한 동반자’를 자처하는 중진공에 매력을 느꼈다. 사기업보다 월급은 적지만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는 점이 끌렸다. 면접을 대비해 예상 질문과 답변을 90개 만들고 그 가운데 10여개는 영어 답변까지 준비했다. 이를 통째 외웠다. 취업한 대학 선배에게 부탁해 두차례 모의 면접도 봤다. 그 결과인지, 1차 실무면접에서 면접관들에게 “잘한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나’였다. 8월1일 발표된 행정직 최종 합격자 24명 명단에 조씨 이름은 없었다. 속이 쓰렸다. 중진공 직원이 되기 위해 들인 노력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이미 합격자를 정해놓은 것처럼 돌아갔던 최종 면접이 마음에 걸렸지만, 어찌할 수 없었다.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서둘러 다른 곳을 알아봐야 했다.

돈도 빽도 없는 난 최경환 인턴을 위한 들러리였다

조씨는 그해 상반기 공기업을 중심으로 11곳에 지원했고 하반기에는 공·사기업 26곳에 지원했다. 취업을 마냥 늦출 수 없어 금융 분야만 고집하지 않았다. 결국 조씨는 그해 11월 서른일곱번의 도전 끝에 지방의 한 에너지 회사에 취직했다. 주변 친구들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지원으로 얻은 결과였다. 금융공기업은 ‘나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조씨의 찜찜했던 기억이 되살아난 것은 2년여 뒤였다. 2015년 10월8일 서울 여의도 국회 국정감사에서 중진공 채용 비리가 폭로됐다.

“박철규 이사장이 최경환 의원을 만나고 와 (합격시켜선 안 되는 이를) ‘그냥 합격시키라’고 했다.”

중진공 부이사장이었던 김범규(60)씨의 폭로였다. 최경환 당시 새누리당 의원(현 자유한국당)이 본인 비서로 일한 인턴 직원 황아무개(35)씨를 채용하도록 2013년 중진공 박철규 이사장에게 압력을 넣었고, 중진공 직원들은 성적을 조작해 그를 합격시켰다. ‘내정자가 있을 수 있다’는 조씨의 직감이 현실로 다가왔다.

당시 이 소식을 들은 조씨는 마음이 복잡했다. 중진공 채용 시험에 부정이 있었다면 과거 자신이 봤던 시험일 수도, 본인이 억울한 탈락자일 수도 있었다. ‘실력 부족은 아니었구나’ 싶어 마음 한편이 편해졌지만, 억울한 마음이 컸다. 공익을 위해 설립된 공기업에서 이런 반칙이 판친다는 사실에 매우 화가 났다.

조씨는 직접 피해자였다. '한겨레' 취재 결과, 조씨는 행정직 24명을 뽑는 최종 면접에서 26등을 했다. 중간에 한명이 입사하지 않아 25등까지 합격했다. 합격자 중엔 황씨(16등)도 있었다. 만약 황씨가 부정 채용되지 않았다면 조씨는 현재 중진공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을 것이다.

조씨는 이런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다. 2015~16년 감사원과 검찰이 조사했지만 아무도 조씨에게 이런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중진공은 조씨에게 사과하거나 피해 보상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조씨는 “나뿐 아니라 함께 시험 봤던 71명, 더 나아가 중진공 시험 지원자 모두가 억울한 피해자다”라고 말했다. 2013년 6~8월 중진공은 행정직 24명 외에도 스펙초월 전형 5명, 기술직 7명 등 모두 36명의 신입사원을 뽑았고, 전국에서 무려 8670명이 지원했다. 조씨와 같은 이들이고, 결국 조씨처럼 최경환 의원실 직원을 위해 들러리 선 이들이다.

반칙은 더 있었다. 2013년 공채 때 외부 청탁이 있던 지원자가 황씨 외에 4명 더 있다. 이들은 검찰 조사에서 제대로 수사되지 않아 성적 조작 사실이 드러나진 않았지만, 청탁 정황은 확연했다.

'한겨레'가 확보한 중진공 내부 서류 등을 보면, 2013년 합격자 중 안○○와 최○○ 이름 옆에 현 자유한국당 의원의 이름이 적혔고, 이○○ 이름 옆에도 현 자유한국당 의원의 이름이 적혔다. 정○○ 이름에는 19대 의원이었던 전 민주당 의원의 이름이 붙었다.

모두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이다. 조씨 외에 27, 28, 29, 30등도 피해자일 가능성이 크다. 황씨는 논란이 일자 사표를 냈지만, 또다른 중진공 청탁 합격자들은 아무 일 없었던 듯 회사에 다니고 있다.

과거에도 그랬다. 2012년 신입 공채 때도 성적 조작이 있었다는 사실이 검찰 수사 결과 확인됐다. 당시 부정 합격한 세명의 사원은 지금도 중진공에서 근무 중이다. 이들 때문에 발생한 억울한 탈락자도 조씨처럼 다른 부정 합격자에 의해 탈락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본인의 실력 부족을 탓했을 것이다.

조씨는 “취업준비생들은 열명 뽑으면 서너명은 사전에 내정자가 있다고 생각하고 지원한다. 나머지 대여섯 자리를 갖고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끼리 싸운다. 사회에 나서기 전부터 이런 더러운 꼴을 겪고 시작한다는 것이 씁쓸하다”고 말했다.

돈도 빽도 없는 난 최경환 인턴을 위한 들러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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