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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재판'이라 회자되어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1심 판결이 났다. 결과는 징역 5년. 승마 관련 72억 및 영재스포츠센터 16억에 관한 뇌물공여, 횡령, 재산국외도피,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국회증언 감정법 위반에 대해 유죄가 선고된 반면, 미르·케이스포츠 재단 관련 제3자 뇌물공여 및 이에 따른 횡령, 승마지원금으로 약속했던 213억원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되었다. 1심 재판부는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부도덕한 밀착이 사건의 본질"이라고 하여 여전히 이 사회에 만연한 정경유착에 경종을 울렸다.

이재용 판결, 어떻게 볼 것인가

이번 선고결과는 우리에게 몇가지 시사점을 준다. 첫째,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조직적 관리형 뇌물, 기업형 뇌물에 대한 대비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현행 뇌물죄의 범죄행위 양태는, A를 해주면 100억을 주고 B를 해주면 200억을 주겠다는 방식, 즉 청탁과 댓가관계가 1:1 대응이 되어야 적용될 수 있다. 반면 기업이 상시적으로 로비체계를 짜놓고 지속적으로 관리해오다가 필요할 때 명시적인 청탁 없이 이심전심으로 기업이 원하는 현안을 해결해주게끔 하는 방식에는 적용되기 어렵다. 최근의 뇌물수수는 대부분 이런 식이어서 청탁과 댓가 관계의 존재여부, 그 선후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러한 기업의 금전적 로비활동에 대해 기업뇌물 관련법을 마련해 기업의 뇌물수수를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계속 있어왔으나 지금까지 부정청탁금지법, 공직자윤리법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규제할 뿐이었다.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던 법망의 틈을 촘촘히 다져놓지 않았던 것이 이번 재판에서 해석의 다툼으로 번져 상당 부분 무죄로 이어진 것이다.

둘째, 뇌물공여가 수동적이었다는 재판부의 판단에 대한 평가이다. 보수적이라 일컬어지는 사법부마저 270여페이지의 판결문을 통해 대한민국의 적폐를 폭로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징역 5년이라는 형량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재판부는 승계 작업이 이재용의 삼성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 확보를 위한 것이며, 박 전 대통령이 이를 인식하고 있었다고 인정하면서도, 사실상 승계 작업이 완료된 상황이어서 청탁할 이유가 없다는 삼성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와 관련한 포괄적 혹은 개별 현안에 대해 박 전 대통령에게 적극적, 명시적으로 청탁하고 뇌물을 공여한 게 아닌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재용은 수조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마련해야 할 뿐만 아니라, 복잡하게 얽힌 지배구조 내에서 자신의 지분율 하락을 방지해야 하고, 탈법과 편법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고 있는 삼성그룹만의 불안정한 지배구조 문제도 안정시켜야 한다. 따라서 지배구조 개편과 경영권 승계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병행될 수밖에 없다.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보다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가 가능하고, 동시에 지배력 행사가 용이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지배구조 개편을 통한 기업의 이익이라는 명분 뒤에 숨어 있는 이재용의 이익을 간과하고, 수동적 뇌물공여로 보아 감경사유로 삼았다.

셋째, '실패한 뇌물'이라는 감경사유도 마찬가지다. 가령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이 잠정적으로 보류된 것은 삼성의 계획이 무리한 것이어서 제아무리 대통령이라도 법과 제도를 무시하면서 강행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오히려 자본권력을 감시하는 기관인 공정위와 금감위에서 특정 기업에 특혜를 주는 것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내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또한 곧바로 청탁의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청탁 자체가 부인될 수도 없다. 삼성물산 처분 주식수에 관한 공정위의 움직임을 보더라도 삼성이 바랐던 500만주로 결정되기까지 몇차례의 내부적 반론이 있었다.

덧붙여 '미완의 뇌물'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 역시 재고의 여지가 있다. 재판부는 코어스포츠 용역계약서에 표시된 230억원이 잠정적인 예산을 추정한 것에 불과하여 위 금액 전부를 지급하겠다는 확정적인 합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하였다. 그러나 뇌물죄는 직무에 관해 뇌물을 요구하거나 약속하는 것만으로 성립된다. 더구나 그동안 삼성은 코어스포츠의 청구대로 모두를 용역대금으로 지급해온 사실이 있다. 그렇다면 약속한 금액 전부에 대해 뇌물죄를 인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뇌물 규모에 비해 형량이 적다, 항소하면 형량이 더 줄어들 것 아니냐, 결국 삼성 봐주기 판결이다,라는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다.

정경유착의 적폐를 해소해야 할 때

애초에 이건희는 삼성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주식을 매입함에 있어 자신의 돈을 들이는 대신 계열사의 자금, 특히 삼성생명 보험에 가입한 계약자들의 보험료를 이용하는 그릇된 방식을 취했다. 보험가입자의 보험료로 삼성전자의 주식을 사들인 것은 기업인이 자금을 융통하기 위한 방법이 아니다. 보험가입자들은 이건희에게 사업자금을 빌려준 적도 없고, 이건희 역시 그들에게 동의를 구한 적도 없다. 역설적이지만 만일 2007년 조준웅 특검이 없었다면 고작 3%의 삼성전자 주식을 가진 이건희가 삼성생명 주식을 차명으로 관리하면서 삼성생명을 통해 삼성전자를 지배해온 사실은 지금까지도 세상에 밝혀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라도 이재용은 선대에서부터 잘못 꿰어진 단추를 풀고 처음부터 바로 꿰어야 한다. 죗값을 달게 받고 그룹의 과오를 바로잡아야 한다. 정경유착이라는 구태를 쇄신하지 않는 이상 삼성은 더이상 자랑스러운 국가대표 그룹일 수 없다.

* 이 글은 창비주간논평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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