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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독과점이 영화산업의 수직계열화 때문일까
ⓒ뉴스1

한 달 전쯤 어떤 분이 나한테 찾아 와서 영화산업의 수직계열화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나는 영화산업은 아주 잘 알지 못하지만 수직계열화에 대해서는 좀 말할 수 있는 입장이다. 요점으로 바로 들어가자면 CJ가 제작, 배급, 상영을 다 하고 있어 영화판에 문제가 많으니 정부가 나서 강제로라도 분리해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에 대해 어찌 생각하느냐는 것이다 (롯데도 배급과 상영을 같이 하지만 점유율이 낮다).

데자뷔 느낌이 들었던 것은 2012년과 2014년에도 비슷한 질문을 받았기 때문이다. 2012년에는 박근혜 당선자의 캠프에 있던 지인이, 2014년에는 경제계의 원로 한 분이 물었다. 물론 내가 잘나서는 아니고 그 분들 입장에서 만만하게 물어 볼 (모르면 공부라도 해서 알려 줄) 사람이 필요해서다. 정권이 바뀌어도 주장은 계속되고 오히려 도종환 의원이 주무장관이 되면서 더 힘을 받고 있다 한다.

오히려 수직계열화 덕에 그나마 다양한 영화를 보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아무튼 내 답은 늘 같았다. 강제적 계열 분리 같은 수단을 함부로 써서도 안 되지만, 설령 그렇게 해도 그분들이 원하는 결과, 즉 영화판의 독과점과 갑질이 해소되고 더 다양한 영화가 제작, 상영되는 행복한 세상은 아마 오지 않을 것이다.

오해는 하지 마시길. 나도 극장 가면 군함도만 잔뜩 걸려 있고, 한두 주만 방심하다 보면 보고 싶은 영화 다 놓치는 그런 상황이 마음에 안 든다. 하지만, 그것과 CJ의 수직계열화와는 별 관계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수직계열화 덕에 그나마 다양한 영화를 보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영화는 하나 하나가 유일하면서도 복제가 불가능한 상품이다. 수요 예측이 매우 어렵고, 상영이 웬만큼 보장되어야만 관객이 들 뿐 아니라, 대부분의 비용을 판매가(상영이) 시작되기도 전에 다 매몰시켜야 한다. 영화산업의 수직계열화된 구조는 이러한 엄청난 불확실성에 대처하려는 측면이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CJ E&M이 영화를 만들어 배급하기 때문에 CJ CGV의 상영관들을 차지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반대로 CJ CGV에 많이 걸 자신이 있기 때문에 CJ E&M이 안심하고 영화에 투자를 할 수 있는 것이다.

CGV의 전국 스크린 수는 996개인데, 군함도는 추가로 1,031개나 더 확보한 셈이다.

실제로 CJ E&M은 가장 많은 한국영화를 배급하는 회사이면서, 실패도 많이 하는 편이다. 영진위(2017)에 따르면 2016년에 CJ E&M은 한국영화 16편을 배급했고, 쇼박스는 9편을 배급했지만 둘의 관객 점유율은 27.5%와 25.1%로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CJ는 면피용이든 어쨌든 CGV아트하우스라는 독립예술영화 전용 배급조직과 상영관도 만들어 열심히 운영하고 있다('노무현입니다'의 배급사다).

그래도 군함도가 전국의 2,575개 상영관 중에서 2,027개씩이나 차지한 것은 수상하지 않은가? 좀 과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2016년 최고 흥행영화인 '부산행'의 스크린 수도 1,788이고, 배급사는 독립회사인 NEW였다 (2위는 쇼박스의 '검사외전'으로 1,812개). 작년 흥행 10위 안에 CJ E&M의 영화는 '인천상륙작전' 하나 뿐이고 스크린 수는 1,049개였다. CGV의 전국 스크린 수는 996개인데(전체의 38.7%), 군함도는 추가로 1,031개나 더 확보한 셈이다. 그런데도 과연 CGV와 CJ E&M 가 계열사인 것이 스크린 독과점의 원인이라 할 수 있을까? 참고로 2016년 CJ E&M 의 배급시장 점유율은 17.4%이고, 점유율 5%가 넘는 회사는 8개나 되었다. 배급시장은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꽤 '경쟁적'이다.

미국 영화계는 그때부터 약 25년간 심한 내리막길을 겪었다.

사실 수직적 분리의 아이디어는 과거 미국에서 빌려 온 것이다. 20세기 전반기는 헐리우드의 황금시대였다. 파라마운트, MGM, 워너브라더스, 20세기 폭스, RKO 등 메이저 5개사는 제작, 배급은 물론 전용 상영관까지 운영하고 있었다. 이들의 독과점 폐해가 크다고 본 미국 법무부는 수십년 간의 노력 끝에 1948년 대법원으로부터 Paramount Decrees라 불리는 판결을 얻어낸다. 그 내용은 제작/배급사들의 이른바 '갑질계약'을 금지하는 동시에 가지고 있던 극장체인들을 모두 팔도록 하는 것이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공교롭게도 미국 영화계는 그때부터 1972년 '대부'가 출시될 때까지 약 25년간 심한 내리막길을 겪었다. 1940년의 미국 연간 영화제작은 500편이 넘었지만 1959년에는 200편까지 줄어들었다. 관람객은 판결 이후 10년 동안 3분의 1토막이 되었다.

물론 1950년대는 TV가 본격적으로 보급된 때이므로 모든 것을 수직적 분리의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하지만, Crandall and Winston(2003)에 따르면 판결 이후 20년 동안 극장 입장료는 소비자 물가보다 66%나 더 상승했다. 그러니 TV로 인한 수요하락 탓으로만 돌리기는 더욱 어렵다. Gil(2010)에 따르면 1948년 이후 몇 가지 제작관행의 변화가 일어났지만 이는 수직적 분리보다는 블록부킹이라고 불리는 계약방식의 금지 때문이었다. 판결 이후 독립영화나 외국영화의 상영비중이 늘었다는 평가도 있지만, 반대로 제작사 간의 특색이나 차별성이 없어지고 승자독식이 더 만연해졌다는 평가도 있다.

한국 시장에 와이드 릴리즈 전략이 특히 잘 먹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그럼 스크린 독과점 현상은 왜 일어나는가? 수직계열화와는 상관 없고, 한국 시장에 와이드 릴리즈(wide release) 전략이 특히 잘 먹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와이드 릴리즈란 사전에 광고와 홍보를 많이 한 후 개봉부터 최대한 많은 상영관을 확보하는 전략이다. 돈이 많이 들지만 모멘텀을 타면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 반면 플랫폼 릴리즈(platform release) 전략은 일단 소수의 상영관에 걸었다가 반응이 좋으면 점차 상영관을 늘리는 방식으로 입소문 마케팅이 큰 역할을 한다.

도박성 느낌이 있는 와이드 릴리즈보다는 플랫폼 릴리즈가 합리적일 것 같지만 변수가 있다. 영화는 시간이 지나면 시든 과일처럼 화제성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공할 만한 영화라면 플랫폼 릴리즈 전략을 따르다가 너무 아끼면 X된다는 교훈만 얻게 될 수도 있다. 실제로 Chen et al.(2013)의 분석에 따르면 1999~2003년 미국에서 플랫폼 릴리즈 전략을 따른 영화 중의 반 이상은 만약 와이드 릴리즈 전략을 택했다면 돈을 더 많이 벌을 수도 있었다. 한국에 유독 스크린 독과점이 심하다면 한국 관객의 성향 때문은 아닌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 영화진흥위원회 (2017) 2016년 한국영화산업 결산

- Chen, X., Chen, Y., and C. Weinberg (2013) "Learning about movies: the impact of movie release types on the nationwide box office," Journal of Cultural Economics, 37, pp.359-386.

- Crandall, R. and C. Winston (2003) "Does antitrust policy improve consumer welfare? assessing the evidence," 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 17(4), pp.3-26.

- Gil, R. (2010) "An empirical investigation of the Paramount antitrust case," Applied Economics, 42(2) pp.171-183.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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