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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의 내비게이터는 '목적지를 다시 입력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글쎄, 교동시장이 맞다니까. 결국 운전을 하던 친구가 스마트폰을 꺼내고서야 해결이 났다.

"교동시장이 아니고 서시장이란다."

여수의 서쪽에 있다고 해서 서시장인가보다. 공식적인 이름이 그렇다. 교동시장이라는 멋들어진 이름을 내버리고 왜 동서남북을 이름에 붙일까.

"그래도 봉천12동보다는 낫잖아."

봉천동이 12동까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군인 출신 행정가나 딱 좋아할 법한 이 한심한 명명법이 여전히 대한민국에 존재한다. 동대구, 서대전, 북구에 남구, 동구와 중앙동...... 차라리 좌표를 지명으로 하면 어떨까. 어이 친구, W132 N243에서 오늘 저녁에 만나자구.

교동시장, 아니 서시장으로 친구가 차를 몬 건 역시나 우리의 인생처럼 우연이었다. 노량진 새벽시장에서 병어를 봤고, 병어 하니까 그 눈 작고 내장 적은, 생김새가 딱 남방 쪽인 이 희한한 고기의 전문가인 소설가 한창훈이 생각났고, 그러니 연등천에서 한잔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교동시장도 서시장도 아닌, 연등천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것도 순전히 포장마차를 찾기 위해 여수에 간다는 건 좀 미친 짓 같아 보였지만, 친구는 가속기를 신나게 밟아댔다. 내가 한창훈의 병어 스토리를 맛깔나게 들려줬던 까닭이다.

한창훈은 거문도 사람이며, 여수에서 오래 생활했다. 그러므로 여수는 그의 손바닥 안이다. 그는 한 신문에 오랫동안 「신판 자산어보」를 연재했었는데, 말하자면 건조한 어류 편람이 아니라 여수와 거문도 일대의 바닷속 안줏거리 편력기였다. 그 글은 도저히 맨정신으로는 읽을 수 없을 만큼 술맛 당기게 했다. 여수 연등천 포장마차는 그의 글에서 병어와 함께 등장한다.

몇해 전, 해돋이를 보자는 후배들 사이에 끼여 여수에 간 적이 있었다. 지금은 불타버린 향일암에서 해돋이를 보는 게 목적이었는데 어찌나 바닷바람이 차고 매섭던지 해맞이고 뭐고 따끈한 어묵국물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여수를 다시 찾은 건 시원한 가을의 초입이었다. 연등천은 여수의 생활하수를 쓸어모아 바다로 뱉어내는 종말 하천이다. 그 겨울에는 물이 말라 건천 같은 모양이었는데, 올가을은 잦은 비에 제법 수량이 있었다. 그래 봐야 발목이나 겨우 적실 높이였지만, 그래도 '천'이라는 이름이 남우세스럽지는 않을 양이었다.

연등천 45번집 김 여사 기절 전말기

여수 포장마차촌

연등천에는 오래전부터 포장마차가 성업했다. 일과를 마친 여수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쓴 소주와 제철 해물 안주를 먹는 명물거리가 됐다. 지금은 그 위세가 사그라들어 수량 잃은 연등천마냥 처량해졌다. 특이하게도 이 포장마차들은 1부터 시작하는 일련번호를 가지고 있다. 정든집, 한잔집, 호남집 따위의 호칭 대신 쭉 숫자로만 명명되었다. 하나둘 폐업하는 집이 늘면서 숫자도 늙은 할매처럼 이가 숭숭 빠져버렸다. 5 다음에 11, 그다음에 16, 18, 22...... 우리가 가는 집은 45번집이었다. 스무살에 시집와서 30년을 지켜온 '아짐'이 여전히 이 집에서 안주를 만든다. 그이의 부엌은 마법 같다. 포장마차이니 변변한 설비도 없고, 냉장시설도 빈약하다. 그러나 오직 30년을 지켜온 그이의 솜씨와 물을 물어보면 실례인 싱싱한 해물이 마법의 재료다.

이 집에는 먹는 법이 있다. 입 다물고 주는 대로 먹는 게 고수고, 먹고 싶은 걸 줄줄이 외는 건 중수다. 제일 하수는 '이거 물 좋아요?' 하고 되묻는 이다. 그러면 아짐은 딱 한마디 하신다.

"물 안 좋으믄 저 개천(연등천)에다 확 버려야쓰것네."

고수건 하수건 공통점도 있다. 누구도 안주의 값을 묻거나 요리법을 챙기지 않는다. 알아서 먹을 만하게, 가장 어울리는 요리법으로 회 치고 지지고 볶는 까닭이다. 일식으로 치면 절세의 '오마까세(お任せ, 주방장이 재료와 요리법을 선택해서 자유롭게 구성하는 것)'가 여기 와서 울고 간다. 아짐의 요리 배열은 미슐랭 스타 셰프 뺨도 쳐버린다. 차갑고 부드러우며 살이 단 재료부터 시작해 슬슬 입맛을 돋우다가 점차 진하고 구수한 쪽으로, 자극적이고 혓바닥이 훌렁 벗겨질 것 같은 쩌르르한 맛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미식이 폭식이라면, 틀린 말이 아니다. 아랫도리가 휘청거리게 취해서 일어날 때가 되면 도대체 그 많은 요리를 어떻게 다 먹었는지 이해가 안될 지경이다.

"요즘은 삼치가 살이 오르제."

삼치와 병어부터 세례가 시작된다. 여수 사람들은 시끄럽지 않다. 외지인들이 와도 못 본 척 점잖게 잎새주, 그러니까 과거의 보해소주를 넘긴다. 그런 온화하고 푸근한 분위기가 포장마차의 격을 높여준다. 포장마차에도 격이 있다는 말, 연등천 아니면 써보기 힘들 것이다.

삼치는 '고시'라고 부르는 어린 것은 맛이 없다. 서너자는 되어야 살에 맛이 들어 있다. 과연, 간장과 고춧가루로 버무린 장에 찍은 삼치회가 잇새에 쑥쑥 박힌다. 씹으니 단물이 연등천 물살처럼 흐른다. 가을이 되면 삼치회가 먹고 싶어 여수 사람들은 몸살이 날 것이다. 아니면 여수 사람 아니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저 구석자리의 두 사내도 여수 삼치가 그리워 외지서 고향에 찾아든 사람들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상상한다. 오랜 경력의 아짐은 자유롭게 주무르지만, 해물요리는 특별히 까다롭다. 저 바다 밑, 미지의 푸른 파도 아래, 심해에서 건져낸 재료들이란 까다롭게 마련이다. 서식하는 물 높이에 따라 살의 탄력이 다르고, 불과 칼로 다룰 때 또 달라진다. 누군가 바다는 거대한 한그릇의 수프라고 했다. 그 용광로에서 뭍으로 올라온 살점들이 다 내력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시집와서 비 가릴 데 없는 포장마차에서 서른해를 보낸 아짐이야말로 그 살점을 만질 자격이 있어 보인다.

병어는 큼지막한 놈을 툭툭 자르는데, 어리지 않아도 뼈가 억세지 않다.

"여수 병어는 뼈도 달아. 큰 놈도 잘 씹히제. 병어는 마늘된장에 찍어부러."

해물마다 장이 다 따로 있다. 간드러진 와사비간장 빼곤 다 있다. 이게 진짜 마리아주(mariage, 음료와 음식이 잘 어울리는 조합)다. '까시스 향이 나는 어린 까베르네 쏘비뇽 품종에는 진한 송아지 골수 양념 쏘스의 소 허릿살 그릴구이가 마리아주로 잘 어울리고......' 이렇게 떠들었던 내가 웃겨서 혼자 쿡쿡 웃었다.

잎새주 병을 한창훈식 표현으로 '연달아 비틀었다'. 양식한 광어나 우럭 같은 미끈한 어종은 여기 없다. 활어도 없다. 오직 주인과 손님이 믿음으로 주고받아 먹는 물 좋은 선어가 있을 뿐이다. 얼음장 위에 가지런히 누운 어물들이 끝도 없이 주인 아짐의 손에 의해 작살이 났다. 어린애 키만 한 삼치가 이내 거대한 옷핀처럼 대가리만 덩그러니 남았다. 서해안산과는 종이 다른 것 같은 주꾸미를 삶아 내왔으며, 먹통 갑오징어를 통째로 삶아서 접시에 냈다. 동행한 영화평론가 정 형의 아내 김 여사는 옆자리의 현지 아낙들과 한창 수다가 재미지다. 얼큰한 아낙이 우리 자리에 덥석 앉더니 먹통 갑오징어를 손으로 집어 일행들에게 권한다. 먹물이 뚝뚝 흐른다. 고소하기가 참깨보다 낫다.

"아짐, 듣기로 연등천에 남녀가 같이 빠지면 사랑하게 된다던데 사실이오?"

우리 일행이 물었고, 아짐은 웃었다.

"지금은 안 빠져, 난간이 세워졌응게. 여자가 빠지고 남자가 구해주면 그 술에 사랑 안하고 배기겄소?"

아짐은 알듯 말듯 웃었다. 그럴 것이다. 포장마차는 연등천에 바짝 붙어서 있고, 한잔 취한 술에 빠지지 않을 재간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철제 난간이 튼튼하게 설치되어 있으니 연등천 동반 낙하 사건 같은 것도 이젠 전설이 되어버리는 걸까. 병어 맛은 여전하고, 삼치도 때가 되면 올라오지만, 시속은 그렇게 바뀌고 마는 것일까.

김 여사는 억센 아낙들과 술잔을 주고받다가 술이 넘쳤다. 그리고 등받이 없는 포장마차용 좁다란 나무 탁자에 누웠다. 초겨울 비가 들이쳤다. 포장마차는 대충 비닐을 치고 장사했다. 부엌 아닌 부엌에서 안주 만드는 아짐에겐 비가 반가울 리 없을 것이지만, 이런 운치가 또 어디 있나.

아짐이 여수 특산의 장어구이를 올렸다. 매운 양념을 발라 껍질은 파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잘도 구웠다. 불 냄새 풀풀 날리며 맛있는 장어구이가 입에 들어가면 잎새주가 다시 연달아 쓰러졌다.

연등천 45번집 김 여사는 기절하고, 포장에 비가 들이쳤다.

"아짐, 이제 뭘 주실라우?"

허벅지라도 베어 구워주실라우. 연등천에서 비 냄새인지 하구의 밀물에 들어온 갯내인지 비릿한 물 냄새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 이 글은 필자의 저서 <뜨거운 한 입>(창비, 2014) 내용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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