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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기자, '국민' 또는 무지의 삼각형
ⓒErik Tham via Getty Images

날씨도 쾌청하고, 새 대통령의 행보도 산뜻해 기분 좋은 오월이었지만, 진보언론과 문재인 지지자들의 갈등으로 SNS는 한동안 벌집 쑤셔놓은 것 같았다. 이제 먼지가 가라앉은 듯하지만, 재연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래서 이 문제를 다뤄보려 한다. 가라앉은 먼지를 들쑤시지 않기 위해 구조적으로 접근해보자.

논의의 실마리로 한 정치인이 했다는 말을 인용하고 싶다. "정치인이 다 아는 걸 기자만 모르고, '국민'이 다 아는 걸 정치인만 모른다." 멋지지만 냉소적이고, 냉소적이지만 교훈적인 경구이다. 하지만 완벽하진 않다. 논란이 된 갈등을 다루려면, 마찬가지로 냉소적이지만 교훈적인 말로 빈 고리를 채워 넣어 무지의 삼각형을 완성해야 한다. "기자가 다 아는 걸 국민만 모른다."

삼각형의 세변을 하나씩 보자. 왜 정치인이 다 아는 걸 기자는 모르는가? 정치인은 기자에게 주요 취재원이다. 후자는 전자를 비판하는 것을 업으로 삼지만, 정보의 차원에서 전자에 의존한다. 그리고 정치인은 정보라는 미끼에 프레임이라는 바늘을 숨긴다. 낙종의 공포와 특종의 희열 사이에 놓인 기자는 미끼만을 떼먹을 수 있다는 환상 속에서 그것을 문다. 그리고 환상을 쫓은 행동은 대개 환상을 입증하고야 만다.

그러나 국민이 다 아는 걸 정치인은 모른다. 정치인이 만나는 사람은 지지자 아니면 "손대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은" 잠재적 지지자들이다. 정치인도 머리로는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국민을 생각해본다. 그러나 "사랑해요"를 외치는 지지자들의 열기에 그런 생각은 멀찌감치 달아난다. 그 결과 그는 국민들이 보기엔 가망 없는 선거에 불나방처럼 뛰어든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왜 저럴까 싶지만, 그는 '제 맘속의 국민'만 믿고 가는 것이다.

그런데 선거 결과로 정치인 뒤통수를 내려치는 그 국민이 기자들은 다 아는 걸 모른다. 늘 보도될 만한 것을 선별해야 하고, 엠바고와 데스킹과 편집을 겪으며 사는 기자는 사실이 보도(report) 된다기보다 구성(construct)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런 점을 파고들어 여론을 조작하려는 사악한 기자든, 정보의 편향된 구성과 싸우려는 성실한 기자든, 선별되고 가공된 뉴스와 여론 조작 사이가 매우 좁고 가파르다는 것, 그리고 편향을 줄일 수는 있어도 아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국민은 뉴스 없이 정치현실에 접근할 수 없다. 기자가 뉴스의 사제라면, 국민은 뉴스의 신자인 셈이다. 신자는 사제에 대해 의심쩍은 생각이 들 때도 있겠지만, 예배에 참석해서는 설교나 강론을 진지하게 듣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면 문재인 지지자와 진보언론 사이에는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기자가 아는 걸 마침내 국민도 알게 되었고, 무지의 순환에 급브레이크가 걸린 것일까? 그렇지 않다. 국민들이 이전보다 언론매체의 작동이나 프레임 형성에 밝아진 것은 맞다. 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가능해진 것인가? 국민이 직접 정치현장을 취재하고 '팩트체크'해서는 아니다. 언론사 수도 늘고 유사 언론 매체도 늘고, 인터넷과 SNS도 언론매체의 기능적 등가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 결과 정보와 해석 프레임 선택지가 많아진 '덕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국민이 뉴스 생산자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신뢰했던 어떤 뉴스 생산자의 은밀한 편향에 대한 깨달음은 다른 새로운 종류의 뉴스 생산자를 통해서 얻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신뢰하는 언론매체나 기자가 바뀌는 것은 개종과 비슷한 과정이지(물론 개종에 비할 수 없는 쉬운 일이다) 불신앙에 이르는 길은 아니다. 게다가 언론매체의 다원성은 비교에 기초한 판단의 가능성을 높이는 동시에(아니 그보다 더) 선택적인 정보 수용과 그로 인한 확증편향의 기회와 가능성도 높인다. 그러니 무지의 삼각형이 깨지기는커녕 전보다 더 큰 굉음을 내며 작동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정보가 정보를 대치하고 뉴스가 뉴스를 밀어내고 프레임이 프레임을 교체하는 세계에서 필요한 것은 정보의 순환에 '구성적인 무지'에 대한 자각, 또는 관찰이 불가피하게 수반하는 맹점에 대한 자각이다. 이런 감각이 유지한다면, 우리는 경대수 의원이 친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을 국민에게 고백해야 했던 일을 비롯한 이런저런 불필요한 상처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며, 앞으로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좀더 좋은 국민이 되고, 좀더 좋은 지지자도 될 것이다. 기자도 정치인도 그런 국민, 지지자를 더 두려워할 것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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