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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월 전 녹색당 전 청년운영위원장의 성폭력 사건이 있었다. "당신이 남고 내가 떠나는, 당신은 활개 치고 내가 피하는 이 세상이 너무 싫다." 녹색당을 떠난 피해자가 남긴 글이다. 나는 얼마 전에야 이번 사건을 알게 되었다.

최근 데이트폭력에 대해 대화하던 중,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피해여성의 고통에는 공감하지만, 그녀의 증언에 동조할 수 없어. 가해자는 내 친구인데, 그 친구의 말을 들어보면 또 달라. 은밀한 관계에서의 일을 내가 판단할 수 없어." 그의 말인 즉슨, "객관적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공정한 판단을 할 수 없다"는 거다. 아니, 폭력이 발생했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므로 태도를 유보하겠다는 건가? 여자가 '맞을 짓', '강간 당할 짓'을 했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의 논리를 듣고, 얼마 전 녹색당 청년위 가해자의 지인들이 피해자에게 가한 폭력이 떠올랐다.

가해자의 측근인 녹색당 당원 중 한 명은 그녀에게 무고죄, 명예훼손죄로 고소할 거라며 협박을 했다. 트위터에 '피해자 갑질'이라며 피해자를 공개적으로 모욕한 당원도 있다. 어떤 대책위 사람들은 그녀를 "자살협박을 한 정신이상자"로 몰아가려고도 했다. 폭력을 당했고, 그것을 증언했을 뿐인데 그녀는 (녹색당의 명예를 실추했다는 이유로) 사건 초기에 도리어 사과문도 작성했다. 수치도, 오해도, 의심도, 모욕도, 설득하고 해명해야 하는 것도 모두 그녀의 몫이 되었다. 나는 안다. 그녀는 나라는 걸. 우리 모두는 그녀가 될 수 있다는 걸.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 남의 "사랑싸움"에 간섭 말라는 통념처럼, 아내폭력, 아내강간, 데이트폭력, 데이트강간은 '사랑하는 연인의' 사적인 사건으로 취급되기 쉽다. 여성과 관련된 폭력 이슈는 사적인 서사로 읽히기 때문이다. 데이트폭력은, 다른 폭력과 마찬가지로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폭력을 행사한 폭력 `사건`이지, 여자친구가 맞을 만한 짓을 해서 남자친구가 어쩔 수 없이 때리게 된 `사연`이 아니다.

그녀는 폭력을 당했다. 사귀던 사람에게서. 맞은 사람이 있는데,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를 저울질한다. 우리는 폭력의 증언이 있음에도, 폭력에 대한 경각심보다 개개인의 사적인 문제로 취급하며 "객관적 상황"과 "공정한 판단"의 잣대를 내민다. 피해자의 증언을 의심하고 오해하기도 쉽다.

나는 6개월 전, 낙태수술 후 부모님 뒤로 숨어버린 남자친구에 대한 법적 처벌은 불가능할까 고민했다. 물론 불가능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런 폭력을 줄이는데 보탬이 되도록, 그리고 숨 쉬기 위해 '증언'하는 것뿐이었다. 잠수를 타던 그와 그의 부모님은 그제서야 연락이 왔다. 페미니스트인 그의 어머니는 부랴부랴 나를 찾아와 "두 청년이 큰 일을 해야 하니까" 서둘러 수습을 요구했다. 그 역시 페미니스트고, 사회정의를 연구하고 실천하는 사람이다. 그의 친한 친구들이 봐도, 착하고 올바른 청년인 그가 가해자일 거라고 상상하기 힘들다.

피해자가 폭로라는 최종의 수단을 쓰는 이유는, 가해자가 자신의 가해사실을 인정도, 반성도 안 하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목소리가 들릴 곳도 받아줄 곳도 없다. 가해자를 특정하지 않으면 그들은 끄떡없다. 그래서 피해자는 모든 비난과 모욕과 수치심을 감내하고서 어렵게 증언을 한다.

내가 그들을 굳이 폭로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을 특정하는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도 있지만, 협박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의 이름을 특정하면, 아니 낙태수술 관련 글을 쓰기만 해도 자신들이 특정될 거라며, 매스컴에 내 `부도덕함`을 폭로해버리겠다고 협박했다. (참 감사하게도 폭로해주지 않았다)

모든 사회가 용납하고 공감하는 그 알리바이. 여자가 정신이 이상해서. 성적으로 문란해서. 라는 이유로 수많은 데이트폭력, 부부폭력 가해자들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가해자는 그의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폭력을 납득시키는 데 성공한다.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한 그의 논리는 이랬다. "내가 너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부모님의 권력 뒤로 숨어서 대학원에 붙어야 하기 때문도 아니고, 너를 간호하기 귀찮아서도 아니야. 너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고, 게다가 너는 문란한 여자였기 때문이야." 라는 것이다.

그들은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편견의 작동을 정확히 알았고, 그걸 이용했다. 그의 염원대로 나는 그의 이름을 폭로하지 못했다. 아니, 폭로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아직까지는. 그러나 상상해본다. 만일 내가 그의 이름을 말했다면, 그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했다면, 공론화를 했다면 어땠을까. 녹색당 성폭력 피해자는 그 상상 이상의 일을 당했다. 믿었던 당원들에게까지 똑같은 레퍼토리로 협박당하고, 모욕받았다.

데이트폭력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증언한다는 건,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온갖 비난과 모욕을 감내하는 일이기도 하다. "피해자 갑질"이라는 말은 존재할 수 없다. 피해자는 또 다른 가해자들의 협박으로 시달릴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오해받을 것임을 알면서도 힘들게 증언한 것이다. 가해자가 처벌을 받는다고 해도, 피해자에게 불리하고 힘겨운 일이다.

내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표현의 자유에 대해 생각한다. 표현의 자유. 증언할 자유. 고통을 말할 자유. 입막음되지 않을 자유. 비명이라도 지를 자유. 도와달라고 소리칠 자유에 대해. 폭력에 대한 고통, 배신감, 고립감, 소외 속에서 앓다가 폭로라도 할 자유에 대해.

우리는 여전히 가해자들의 세상, 가해자들의 언어로 된 법제도, 그들의 권력이 작동되는 문화의 공기에서 "객관적 상황과 공정한 판단"을 위해 태도를 유보한 채 팔짱을 끼고 있다. 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있는데도, 피해자가 자신의 입으로 증언을 했음에도. 그들은 그녀의 고통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아는가? 알려고 노력은 해보았는가? 당신은 팔짱을 끼고 앉아 있지 않은가?

가해자 없는 폭력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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