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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에 부는 '해적'의 바람 | 해적당 지지율 '1위'

Icelandic Pirate Party/Píratar

대서양의 아름다운 섬나라, 아이슬란드에선 최근 '해적'이 전국민적인 관심사로 떠올랐습니다. 민간 선박을 공격하고 약탈하는 해적이 나타났느냐구요? 아닙니다. 바로 지난해부터 계속해서 지지율 고공행진을 이어온 '해적당' 때문입니다. 2016년 6월 현재 해적당은 지지율 1위로 집권정당인 독립당과 진보당을 따돌리고 10월에 치러질 총선에서 집권당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해적당, 누구냐 넌?

해적당이라는 이름의 정당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2006년 스웨덴으로, 소프트웨어 개발자 등 엔지니어들이 중심이 되어 '정보의 자유로운 공유'를 목표로 저작권에 관련된 각종 규제 철폐를 추진하는 운동 단체에 가까웠습니다.

그 해 치러진 총선에서 스웨덴 해적당은 3만여 표(전체 유효표의 0.6%)를 득표해 원내진출에 실패했지만, 3년 뒤인 2009년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서 지지율이 크게 오른 7% 득표로 소속 의원 1명을 유럽 의회에 진출시켰습니다. 당시 이름도 기상천외한 '해적당'의 유럽 의회 진출로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습니다.

이후 유럽을 포함한 전세계 여러 나라에 해적당이 창당되었고, 특히 독일에서 해적당은 눈에 띄는 성장을 했습니다. 2011년 우리나라 서울시의회와 비슷한 베를린 주의회 선거에서 8.9%를 득표한 독일 해적당은 전체 141석 중 10%가 넘는 15석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듬해 치러진 다른 자치주 선거에서도 7-9% 사이의 고른 득표율로 속속 의회에 진출했습니다.

'해적'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이러한 지지세가 오래가지는 않았습니다. 이후 치러진 세계 곳곳의 선거에서 해적당은 2%에 못 미치는 지지율을 보이며 대부분 원내진출에 실패하거나 간신히 의석을 유지하는 수준으로 줄어듭니다. 2016년 현재 소규모 지자체가 아닌 국회에 의석을 갖고 있는 해적당은 전세계에서 아이슬란드(국회 3명)가 유일합니다.

아이슬란드에 부는 '해적'의 바람 | 해적당 지지율 '1위'

아이슬란드 해적당 지지율 추이 (맨 위 보라색)/Wikimedia

이처럼 세계적으로 해적당이 쇠퇴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아이슬란드 해적당은 최근 들어 치솟은 지지율로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 지지율은 여론조사상의 오류라거나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신기루가 아닙니다. 지난 2015년 가을부터 해적당의 지지율은 계속해서 상승해 1년 가까이 30%가 넘는 지지율을 유지해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시인이자 세 아이의 싱글맘입니다"

아이슬란드 해적당을 대표하는 인물 비르기타 욘스도티르(Birgitta Jónsdóttir)는 올해 49세로 스스로를 시인이자 세 아이의 엄마라고 소개합니다. 정치경력 5년차의 재선 국회의원으로 아이슬란드에서 널리 알려진 인물인 비르기타는 해적당의 지지율 상승과 더불어 자연스레 아이슬란드를 이끌 차기 총리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아이슬란드에 부는 '해적'의 바람 | 해적당 지지율 '1위'

Birgitta Jónsdóttir/Píratar

자신이 정치인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그녀가 정치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2008년 아이슬란드 경제 위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경제위기로 수많은 아이슬란드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책임자들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엄청난 성장을 하는 것처럼 보였던 아이슬란드 경제가 사실은 투기자본에 의한 신기루였다는 것이 드러났고, 위기를 알고서도 모른 체한 금융관료들과 정치인들을 향한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죠.

아이슬란드에 부는 '해적'의 바람 | 해적당 지지율 '1위'

Kitchenware Revolution/Pall Himmarsson

'후라이팬 혁명(Pan-and-pot Revolution)'이라고 불린 이 시위로 재임중이던 게이르 하르데(Geir Haarde)' 총리가 사퇴하고 조기 총선이 치러지게 됩니다. 당시 비르기타 역시 프라이팬을 들고 거리로 나섰던 수많은 시민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 대다수가 좌우 정치가 더 이상 쓸모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것이 모두 낡은 이데올로기라는 것도요. 기본적인 권리와 민주주의 혁신이라는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문제를 해결할 정치가 정말 중요해진 거죠."

-비르기타 욘스도티르(Birgitta Jónsdóttir), "WE, THE PEOPLE, ARE THE SYSTEM", Pirate Times, 2015. 6. 25.

비르기타는 시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시민 운동(Citizens' Movement)'이라는 정당을 만들었습니다. 신흥 정당 '시민운동'은 경제 위기로 기성 정치권에 실망한 시민들의 지지 속에서 약 7%를 득표 4석을 얻어 아이슬란드 국회에 진출하게 됩니다. '시민운동'은 반기득권 정당(Anti-establishment Party)으로서 반부패와 정치개혁을 의제로 내세웠습니다.

"한계를 인식하지 않을 때 그 한계를 부술 가능성도 생긴다"

비르기타는 '정치를 하는 것'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습니다.

아이슬란드에 부는 '해적'의 바람 | 해적당 지지율 '1위'

Birgitta Jónsdóttir/Piratska Strana

"저는 정치인으로서의 활동을 해커의 관점에서 접근합니다. 불가능은 염두에 두지 않아요. 한계를 인식하는 순간 그것에 얽매이게 되고, 따라서 한계를 인식하지 않을 때 그걸 부술 가능성도 생기는 거죠."

-비르기타 욘스도티르(Birgitta Jónsdóttir), "Hacking Politics: An In-Depth Look At Iceland's Pirate Party", Grapevine, 2015. 11. 19.

비르기타가 말하는 '해커'란 컴퓨터 시스템을 공격하는 이들이 아닌, 기존의 관습이나 규칙을 새로운 접근을 통해 변화시키는 혁신가를 말합니다. 이러한 관점을 좀 더 명확히 하고자, 그녀는 첫 번째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가던 2012년 연말에 동료들과 함께 '해적당'을 새롭게 창당합니다. 변화된 정치와 새로운 아이슬란드를 원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새로운 정당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해적당은 2013년 4월 치러진 아이슬란드 총선에서 의회 진출에 필요한 최소 득표율인 5%를 넘겨 3석을 확보합니다. 큰 성공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일을 추진해보기엔 충분한 의석이었습니다.

아이슬란드 해적당은 비르기타가 이야기한 '갑작스런 변화'에 빠르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온라인 의사결정 플랫폼을 구축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투표권을 위임할 수 있는 '리퀴드 피드백' 시스템을 기반으로 만든 이 웹사이트에서는 후보 선출, 정책 결정, 토론 등이 이루어집니다.

아이슬란드에 부는 '해적'의 바람 | 해적당 지지율 '1위'

해적당 의사결정 플랫폼 화면

해적의 선물, 우리는 보물섬에서 무엇을 발견했나?

그리고 2014년 7월, 이렇게 잘 준비된 해적당에게 전혀 예기치 못한 '기회'가 찾아옵니다. 집권 중이던 진보당-독립당 정권이 2008년 경제 위기를 초래한 책임으로 사퇴한 하르데 전 총리를 미국 대사로 지명하자, 놀랍게도 해적당에 대한 지지가 수직상승하기 시작합니다. 기성 정당의 구태에 실망한 시민들이 비르기타의 해적당에 신뢰를 보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정말로 믿을 놈 없다'는 시민들의 실망감에는 자본과 결탁한 권력에 대한 커다란 불신이 담겨 있었고, 돈과 권력 자체에 매달리지 않을 새로운 정치세력으로서 아이슬란드 시민들은 해적당에게 한층 견고한 지지를 보낸 것이지요.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해적당에 애정을 갖는 이유는 명백합니다. 국가를 위기에 빠뜨린 하르데 전 총리가 기성 정치권에 의해 '부활'하는 것을 목격한 시민들은 권력을 유지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기존 정당이 아니라, 자신들이 일상적으로 정치에 참여해 정치권력을견제할 수 있는 새로운 세력을 찾아나섰습니다. 그리고 부패와 구태를 끊어낼 차별적인 정치를 지향하는 해적당은 시민들이 찾아낸 '보물'이었습니다.

아이슬란드 해적당의 약진은 시민들이 과거로의 회귀를 거부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기성 정치세력이 권력을 독점하는 것에서 벗어난 정치를 원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고, 이에 응답하는 새로운 정치세력은 반드시 게임을 변화시킬 기회를 얻게 된다는 것을 아이슬란드 해적당은 보여줍니다. 국회로 들어간 해적이 아이슬란드 시민들에게 어떤 새로운 '보물'을 선사할지 주목됩니다.

* 이 글은 정치 스타트업 와글의 주간 뉴스레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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