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자 보호를 위해 마련된 '해약환급금준비금(해준금)'이 보험사 경영 자율성을 옥죄고 있다.
해준금은 보험사가 계약자에게 해약환급금을 지급하지 못할 위험을 막기 위한 제도로 계약자 보호를 위해 필요하지만 현행 체제에서는 배당 여력을 줄이고 있는 데다가 신사업 진출이나 M&A 같은 경영활동도 제약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경영활동의 밑천이 되는 이익잉여금은 주로 보험계약에서 나는 이익이 쌓인 것인데 신계약이 늘수록 준비금도 함께 늘어나는 구조여서 영업을 적극적으로 할수록 해준금 부담도 커진다.
따라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가장 쉬운 방법은 적립률을 실효성 있는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고 근본적으로는 돈을 묶어두는 방식에서 벗어나 해약이 몰려도 버틸 자본과 현금을 갖췄는지 점검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다.
국내 보험사의 이익잉여금 성장률보다 해약환급금준비금 증가율이 더 커지면서 해약환급금준비금 부담이 커졌다. ⓒ 그래픽 허프포스트코리아
국내 보험사의 올해 상반기 이익잉여금은 125조6973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1% 늘었다.
같은 기간 해준금은 64조6892억 원으로 46.6% 증가하면서 이익잉여금에서 해준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37.9%에서 51.5%로 확대됐다.
보험사가 쌓아둔 이익의 절반 이상을 배당 등에 사용하지 못하고 묶어둬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해준금은 계약자 보호를 위해 필요한 제도다.
금리가 오르면 부채가 해약환급금보다 작아질 수 있고 이 부족분이 배당으로 빠져나가면 대량 해약 때 계약자에게 돌려줄 돈이 모자랄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막으려고 부족분의 80~100%를 이익잉여금 안에 법정준비금으로 묶어 두고 있다.
다만 필요한 제도라는 것과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묶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문제는 해준금 때문에 배당가능이익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해준금과 같은 법정준비금은 배당 재원에서 제외돼 해준금이 쌓일수록 배당 여력이 줄어든다.
상장 보험사 10곳 가운데 2025 회계연도 결산배당을 한 곳은 삼성생명·삼성화재·DB손보 3곳뿐이다. 모두 이익잉여금에서 해준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6%, 29%, 41%로 상대적으로 낮아 배당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이들도 해준금 부담이 커지고 있다.
이병건 DB증권 연구원은 5월 보고서를 통해 "현재 배당을 실시하고 있는 회사들도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2~3년 후부터는 해준금 적립 부담이 배당에 상당한 제약요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배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해준금 증가로 이익잉여금 활용도가 낮아져 신사업 진출이나 M&A 같은 경영활동에도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번 돈 가운데 회사가 쓸 수 있는 범위가 줄어 주주환원과 건전성 관리, 투자 사이에서 선택의 폭이 좁아지기 때문이다.
근본적 문제는 이익잉여금을 키우려고 영업을 적극적으로 할수록 해준금 부담이 더 커지는 구조라는 점이다.
신계약이 늘면 계약 초기에는 앞으로 받을 보험료가 줄 보험금보다 많아 보험부채가 음수가 된다. 해약환급금과 부채의 차이만큼 준비금이 함께 늘어난다.
미래 이익인 보험계약마진(CSM)을 쌓는 장기 보장성보험 전략도 같은 길로 이어진다.
보장성보험은 보험금을 줄 가능성이 작아 부채가 낮게 나온다. 그만큼 해약환급금과의 차이가 커져 준비금 부담도 커진다.
제도 개선의 필요성은 일찍부터 제기돼 이미 두 차례 완화했지만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현행 규정은 K-ICS 비율이 160% 이상이면 해준금 적립률이 100%에서 80%로 완화돼 이 기준을 적용받는 회사가 대부분이지만 해준금 부담은 더 커진 것이다.
해준금은 2030년 말에는 87조5천억 원, 이익잉여금 내 비중도 64.5%로 불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와 부담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해준금 외에 계약자 보호 장치가 없는 것도 아니다. 지급여력(K-ICS) 비율의 요구자본에는 해지 위험이 반영돼 있고 금융당국은 비율이 낮은 보험사를 중심으로 자본의 질과 위험관리를 점검한다. 2027년에는 기본자본비율까지 도입된다.
따라서 해준금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당장은 적립 비율을 실효성 있는 수준으로 낮출 필요가 있다. 이미 두 차례 완화했지만 효과가 제한적이었던 만큼 적립률이나 적용 요건을 더 큰 폭으로 손봐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지급여력이 충분한데도 부족금의 80%를 이익잉여금에 묶어두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돈을 묶는 대신 해약이 몰려도 버틸 자본과 현금을 갖췄는지 더 엄격하게 점검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 방안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