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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에서는 임산부에게 필수적인 영양소로 적정량의 철분 보충을 강조한다. 필자는 이를 보며 '구미호 전설'을 떠올리곤 한다. 학술적인 진지한 주장은 아니지만, 구미호 이야기는 의학적인 비유로도 일리가 있다고 해석할 수 있지 않나 하고 말이다.

[Dr. 허지만의 진료실 이야기] 임신 중 영양제를 먹는 게 좋을까? : 배고픈 시대의 구미호부터 웰빙 시대의 영양제까지
임신 중 필요한 영양소를 두고 의사와 상담하는 임산부. 과거에는 철분 부족을 구미호 전설과 연결해 볼 만한 상상도 가능했지만, 오늘날에는 다양한 영양제 가운데 무엇을 선택할지가 새로운 고민이 됐다. AI 이미지.

어째서 구미호 생태계(?)에는 수컷도 없고 항상 암컷만 나와 인간 남성을 노리는가? 구미호는 두려운 존재인데도 남자들은 일단 유혹에 넘어가고 본다. 물론 구미호의 유혹을 철벽처럼 거절하면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겠지만, 구미호가 '젊고 매력적인 여성' 그 자체를 상징하는 게 아닌가 싶다. 너무 어리지도, 늙지도 않다는 건 다시 말해 '가임기'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구미호가 사실 가임기 여성이라면 다른 맛있는 고기를 제쳐놓고 하필 간을 섭취하는 이상한 행위도 의미심장하다. 의학적으로 간은 우리 몸에서 철분이 가장 많이 저장되는 장기이기 때문이다. 즉, 피의 핵심인 철분을 얻기에 가장 적절한 재료이다. 

생리나 임신으로 심한 빈혈을 겪는 여성은 늘 있었다. 철분이라는 성분의 이름은 몰랐던 옛날도 "간을 먹으면 창백한 사람이 혈색이 돌아오고 기운을 차린다"라는 경험적 지식은 있었다. 간이 인간이 가진 생명력의 정수라서 구미호가 노리는 거라고 하는데, 옛날엔 정말 그렇게 생각할 만했을 것 같다.

한편, 산모가 음식도 아닌 이상한 것을 강렬하게 먹고 싶어 하는 현상이 전 세계 다양한 문화권에서 공통으로 보고된다. 이를 이식증(pica)이라고 한다. 가장 흔한 형태는 익히지 않은 전분을 먹는 것으로 전분식증(amylophagia)이라는 별도의 명칭이 있다. 영양소 흡수가 안 되고 장이 막힐 수 있어 문제인데, 심한 경우엔 흙을 먹기도 (geophagia) 한다. 그나마 양호한 건 얼음을 계속 먹는 것(pagophagia)이다. 따라서 아마 서걱거리는 식감에 강박이 생기는 것 같다고 여겨진다.

이식증은 철분 부족과 연관이 있다고 한다. 철분 결핍이 교정되면 이상 증상이 다소 호전되기 때문이다. 철분 결핍이 이식증의 원인일 수도 있고, 정상적인 영양소를 섭취 못하니 이차적으로 철분 결핍이 온 걸 수도 있다. 산과학 교과서에선 산모 중 4%에서 발생한다고 하는데, 오늘날 한국은 산모가 극심한 영양 결핍에 빠질 환경은 아니어서 그런지 흔하게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풍족하지 않은 옛날엔 갑자기 이상한 걸 먹겠다고 갈구하는 산모가 지금보단 많았을 것이다. 이해가 안 되는 이질적인 모습은 꽤 공포스러웠을 것이고 '간을 먹는' 구미호의 원형이 되기 충분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열악한 환경에서 임신과 출산했던 여성의 고충이 느껴진다.

다행히 지금은 철분은 알약으로 먹으면 보충할 수 있기 때문에 간까지 먹어야 하는 끔찍한 일은 없다. 몰라서 혹은 없어서 필수 영양소조차 섭취하지 못했던 시절은 적어도 한국에선 벌써 옛날 일이 되어버린 듯하다. 

그렇게 발전하는 데 불과 수십 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게 때론 놀랍다. 인간사로 따지면 삼대(三代) 정도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먹는 것이 생존의 문제로 남아 있던 시절에 태어났던 할머니, 무엇을 먹어야 좋을지 풍족한 선택을 놓고 고민하는 손녀가 공존하고 있다. 못 먹어서 생기던 옛날의 공포가 '구미호’를 만들었다면, 오늘날 우리를 괴롭히는 건 역설적으로 '너무 많은 선택지'이다.

정말 요즘은 정보도 제품도 오히려 너무 많아서 문제인 듯하다. 필자가 갓 산부인과 전문의가 되었을 땐 교과서대로 임신 중 필수인 영양소 두 가지만 챙기곤 했다. 하나는 DNA 합성에 필요하고 신경관 결손증을 예방하는 엽산을 임신 1달 전부터 임신 13주까지 복용할 것. 이후 임신 16주부터 철분을 보충할 것이다. 이 둘은 워낙 중요해서 보건소에서 산모에게 무료로 제공한다. 따라서 사실상 필수적인 건 따로 구매할 필요가 없긴 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사회 분위기가 '웰빙 시대'로 서서히 바뀌더니 지금은 뭔가 상당히 달라졌음을 느낀다. 도대체 어디서 들은 건지 산모가 먼저 이런저런 영양제를 이미 먹고 있고 괜찮은지를 의사에게 물어본다. 엽산과 철분제조차도 원료를 따지고 보건소에서 공짜로 주는 건 질이 어쩌고 하면서 별도 구매하기도 한다. 눈높이가 높아진 까다로운 소비자를 응대하기 위해 필자도 계속 공부하고 있다.

우선 원론적인 말을 하자면 교과서에선 웬만한 영양소는 평범한 식사를 통해 대부분 섭취할 수 있다고 한다. 환경적인 요인으로 섭취할 수 없거나(내륙지방에서 요오드 결핍), 채식주의자 등 극단적인 경우엔 보충을 권장한다. 영양제를 따로 챙겨 먹다 보면 자칫 과량 섭취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는 경고도 잊지 않는다.

그래도 요즘은 산모에게 함께 챙겨주면 좋은 권장 영양제로 비타민 D, 칼슘, 오메가3, 유산균 등이 주로 언급되는 추세이다. 비타민 D와 칼슘은 태아의 골격 형성에 쓰이기도 하지만, 산모의 골밀도 유지에도 필요해서 중요하다. 오메가3는 태아의 뇌와 망막 발달을 돕는다고 해서 챙겨 먹는데, 요즘은 이것도 식물성 원료가 중금속 섭취 위험이 적다며 원료를 따진다. 유산균은 산모의 장 건강을 개선하고 변비 예방을 위해 권장한다. 특히 철분제를 복용하면 변비가 잘 생기기 때문에 유산균을 같이 복용하는 게 도움이 된다.

그럼, 무엇을 얼마나 먹어야 하는가가 고민이다. 시중엔 너무 많은 영양제 제품이 있어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물론 교과서엔 영양소마다 권장 섭취량이 수치로 적혀 있지만, 그렇다고 성분 표를 보고 함량을 하나하나 계산해서 섭취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그냥 먹자니 뭔가 찜찜하고. 그래서 산모는 약통을 가지고 의사에게 온다.

덕분에 산모와 같이 여러 종류의 영양제를 살펴보며 나름 정리한 필자의 생각은 이렇다. ''임산부 전용'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제품이라면 최소 기본은 지키지 않을까요?'라고. 특정 제품 홍보가 아니라, 산모를 대상으로 영양제를 판매하는 기업이 만약에 있을 각종 문제 상황에서 자신을 변호하는 가장 기본적인 보호막은 결국 교과서적인 근거이다. 따라서 임산부 전용 제품을 먹으면 굳이 따져보지 않아도 교과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성분과 함량을 복용하게 될 것이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산모가 너무 완벽해지려고 스트레스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태아는 산모의 애정으로 무럭무럭 자랄 거라고 응원한다. 태아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 좋은 걸 먹으려는 산모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으니까.

글쓴이 허지만 산부인과 전문의는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안산병원에서 산모입원 전담 임상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미래아이산부인과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임신부터 출산까지 따라가며 시기마다 여성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고자 한다. 아울러 의사로서 환자를 진료하면서 느낀 생각과 도덕적 딜레마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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