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좌파당(Die Linke)이 최근 베를린 주선거에서 25.7%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해 사민당(SPD, 12.1%)을 두 배 이상 앞섰다.
엘리프 에랄프 베를린 좌파당 부대표가 최초의 좌파당 출신 베를린 시장이 될 가능성이 열렸다. 유럽 좌파진영의 '큰형님'으로 불려온 독일 사민당은 창당 이래 최악의 성적표를 받으며 좌파 진영 내 주도권을 빼앗길 위험에 처했다.
엘리프 에랄프 베를린 좌파당 부대표. ⓒ 로이터=연합뉴스
23일 로이터를 비롯한 외신보도를 종합하면 독일 좌파당이 베를린의 치솟는 임대료 문제를 정면으로 파고들어 사민당을 제치고 베를린 1위 정당에 오르면서 독일 정치지형의 변곡점이 다가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럽 좌파진영의 '원조', 사민당은 왜 무너졌나
사민당은 1863년 전신인 독일노동자총연맹(ADAV)이 창립된 것을 기원으로 하는 160년 넘는 역사의 정당이다. 19~20세기 유럽 좌파이념의 원형을 세운 정당을 평가된다.
사민당은 나치 치하에서 반나치 지하 저항운동을 펼였고, 냉전 시기 때 빌리 브란트 독일연방공화국(서독) 총리는 동유럽 및 소련과 화해 공존한다는 '동방정책'으로 세계 평화에 기였다. 그는 그 공로로 1971년 노벨평화상까지 받았다. 브란트 총리의 후임이었던 헬무트 슈미트 서독 총리(1974~1982년 재임)는 유럽통화제도 창설을 주도하며 오늘날 유로존의 토대를 놓았다.
21세기 들어서는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가 노동시장 개혁 '어젠다 2010'으로 독일 경제의 체질을 바꿔놓기도 했다.
이런 유서 깊은 사민당이 이번 베를린 주선거에서 받은 득표율 12.1%는 창당 이래 최저 성적이다.
사민당은 최근에는 프리드리히 메르츠(중도보수 성향의 기독민주당 소속) 독일 총리 연정의 소수파트너로 참여하며 주택급여 축소, 63세 조기은퇴 폐지 등에 잇따라 동의해왔다. 이런 행보가 지지층 이탈을 가속화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결과적으로 독일 노동자층은 극우정당 AfD로, 중산층은 기독민주당 및 녹색당으로 갈라져 흩어졌다는 진단이 나온다.
독일 여론조사업체 포르사(Forsa)에 따르면 블루칼라와 실업 유권자 중 사민당을 지지하는 비율은 9%에 그쳤다. 또 다른 여론조사업체 인프라테스트 디맵 조사에서는 노동자의 38%가 AfD를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때 유럽 좌파의 대명사였던 사민당이 주요 지지 기반인 노동자 계급의 외면을 받고 있는 셈이다.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 ⓒ 성균관대학교 출판부=연합뉴스
좌파당의 부상, 사민당과 다른 3가지
사민당이 흔들리는 사이 좌파당은 인물(에랄프), 정책(국유화), 전략(벤치마킹)이라는 세 갈래에서 승부수를 띄워 지지층을 넓힌 것으로 파악된다.
눈에 띄는 대목은 좌파당 지도부의 엘리프 에랄프 베를린 좌파당 부대표의 약진이다. 에랄프 부대표는 1981년 튀르키예 군사 쿠데타를 피해 독일로 망명한 사회주의 활동가 부모 밑에서 자랐다. 태어난 곳도 뮌헨이다.
그는 함부르크에서 법학을 공부한 뒤 좌파당 원내 법률고문으로 활동하다 2017년 좌파당에 정식으로 입당했다. 에랄프 부대표가 베를린 시장이 되면 독일 통일 이후 첫 좌파당 출신 베를린 시장이자 튀르키예계 최초 시장이라는 기록이 세워진다.
에랄프 베를린 좌파당 부대표는 최근 베를린 선거에 승리한 뒤 연설에서 "임대 위기는 베를린 최대의 사회문제"라며 "부동산 대기업 소유 아파트 약 22만 채를 국유화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는 2021년 주민투표에서 58%가 찬성했던 안건을 실제로 밀어붙이겠다는 것이었다.
좌파당과 에랄프 부대표가 이 공약을 유권자에게 전달한 방식 역시 기존 좌파정당과 방식이 달랐다.
좌파당 관계자들은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 캠프의 참모들을 만나 선거 전략을 배웠다. 그 결과 에랄프 부대표는 소셜미디어에서 전체 경쟁후보 가운데 최다인 63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독일 정치컨설턴트 마르틴 푹스는 알자지라에 "에랄프 부대표는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의 선거운동 전략을 흡수해 고품질 정치 콘텐츠로 베를린 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