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그룹의 글로벌 성장 전략이 개별 사업의 외연을 넓히는 데서 사업 간 시너지를 만드는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 식품·콘텐츠·뷰티 등 각 사업에서 쌓아온 글로벌 경쟁력과 브랜드 자산을 이제 ‘K라이프스타일’이라는 하나의 축으로 묶어 소비자 경험을 확장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공개된 성장 전략과 투자 방향,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현장 행보가 맞물리면서 기존 사업 확장을 통해 확보한 자산을 어떻게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전환할지 그 구상도 구체화하고 있다.
CJ그룹이 만들려는 성장 공식은 명확하다. K팝과 콘텐츠로 관심을 만들고, K푸드와 K뷰티로 소비를 확장한 뒤, 이 경험이 반복되는 일상으로 자리 잡도록 하는 것이다. 개별 사업의 성장을 넘어 사업 간 연결을 통해 새로운 소비를 만들어내겠다는 의미다. 이 회장이 3개월 만에 미국을 다시 찾은 것도 이 같은 구상에 힘을 싣는 행보로 보인다. CJ그룹은 이미 사업 기반을 확보한 미국에서 이 전략을 가장 먼저 시험하고 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KCON LA 2026 현장을 찾아 K팝·K푸드·K뷰티 등 그룹의 글로벌 사업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CJ그룹
◆이재현 회장 3개월 만에 다시 미국, CJ그룹의 ‘다음 단계’ 직접 점검
18일 CJ그룹에 따르면 이 회장은 지난 14일부터 16일까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개별 계열사의 사업장이 아닌 K팝·K푸드·K뷰티가 소비자와 만나는 현장을 찾았다. 케이콘(KCON)에서는 K팝 공연과 함께 K푸드·K뷰티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둘러봤다.
올리브영 페스타에서는 국내 중소·인디 뷰티 브랜드와 미국 소비자의 접점을 살폈다. 특히 국내 중소·인디 브랜드의 글로벌 진출을 지원하는 ‘K콜렉션(K-Collection)’도 직접 찾았다. 개별 사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는 데서 나아가 CJ의 사업과 플랫폼을 연결하고, 이를 하나의 소비 경험으로 확장하려는 전략이 현장에서도 드러난 셈이다.
미국 현지 법인에서는 각 사업의 경쟁력을 넘어 사업 간 연결 가능성을 점검했다. 미국에서 출시한 비비고 김치 누들을 직접 시식한 뒤 “킥이 필요하다”고 평가했고, 글로벌 K팝 콘텐츠 플랫폼 엠넷플러스 부스에서는 미국 K팝 팬들의 이용 확대를 주문했다. 식품의 현지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콘텐츠를 통해 소비자 접점을 넓히는 등 개별 사업의 성과를 서로 연결해 글로벌 소비 경험으로 확장하려는 구상과 맞닿아 있다.
◆‘K팬덤’을 ‘K소비’로, CJ그룹 성장 공식의 진화
CJ그룹이 K라이프스타일을 새로운 성장축으로 내세우는 데는 K컬처를 둘러싼 소비 방식의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K팝과 드라마를 통해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소비자가 한국 음식을 먹고 화장품을 구매하는 등 콘텐츠 경험이 다른 소비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CJ그룹은 이를 단순한 한류 열풍이 아니라 ‘K팬덤의 소비화’로 보고 있다.
실제 CJ그룹이 지난해 12월 실시한 글로벌 K컬처 영향력 조사에서도 이런 흐름이 확인됐다. 미국 소비자 1000명 가운데 30%는 K푸드·K뷰티·K팝·K콘텐츠 등 K카테고리 전반을 구매하거나 소비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2개 이상의 K카테고리를 경험한 응답자는 75%에 달했다.
K외식과 K콘텐츠, K팝의 실제 구매·소비 경험도 전년보다 각각 12~13%포인트 늘었다. K팝이나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하나의 콘텐츠 소비에 머물지 않고 식품과 뷰티 등 다른 카테고리의 소비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CJ그룹은 이러한 소비 변화에 맞춰 북미 사업의 성장 방식도 한 단계 진화시킨다는 전략이다. 지금까지 브랜드별 현지화와 생산·유통 기반 확대에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식품·콘텐츠·뷰티를 연결해 하나의 소비 경험을 만들고, 이를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소비로 확장하는 ‘2단계’ 성장 전략을 추진한다. 기존 사업을 더 크게 만드는 데서 나아가 사업 간 연결을 통해 새로운 소비를 만들어내겠다는 의미다.
김진식 CJ 아메리카 대표의 설명도 이와 맞닿아 있다. K콘텐츠에서 시작된 관심을 K푸드와 K뷰티의 반복적인 소비로 연결하고, 다시 오프라인 문화 경험으로 확장하는 구조다. 각각의 사업을 따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경험을 매개로 사업 간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북미 매출 8조 만든 CJ그룹, 이제 ‘연결’로 12조 노린다
CJ그룹이 이 전략의 첫 무대로 미국을 택한 것은 이미 현지에 식품·콘텐츠·뷰티 사업의 기반과 소비자 접점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각 사업이 독자적으로 성장해온 만큼 이를 하나로 연결할 여지도 크다. K팝과 K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K푸드와 K뷰티 소비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사업 간 시너지를 만들기에 유리한 조건이다.
CJ의 지난해 북미 매출은 8조 원을 넘어섰고, 올해 상반기 기준 누적 투자액은 9조7천억 원에 달한다. 2017년 약 8천억 원이던 북미 매출이 8년 만에 10배 이상 늘었다. 미국에서 개별 사업의 기반을 새로 만드는 단계를 넘어, 이미 확보한 사업 자산을 어떻게 묶어 추가 성장을 만들지가 다음 과제가 된 셈이다.
2028년 북미 매출 12조 원 목표는 이러한 전략의 방향을 숫자로 보여준다. 비비고의 식품 경쟁력, 올리브영의 K뷰티 플랫폼, CJ ENM의 콘텐츠와 케이콘 등 각 사업이 이미 확보한 소비자와 접점을 서로 연결해 추가 성장 여력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식품 사업에서는 비비고가 출발점이다. CJ제일제당은 북미에서 만두를 중심으로 입지를 넓힌 데 이어 햇반·치킨·김스낵·김치·K소스 등으로 제품군을 확대하고 있다. 이제는 제품을 더 많이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K팝 등 콘텐츠와 결합해 비비고를 경험하는 접점 자체를 넓히는 단계다. 이번 케이콘 LA에서 K팝 팬들을 대상으로 체험 부스를 운영하고 1만 명이 넘는 방문객을 끌어모은 것도 이런 변화의 한 사례다.
뷰티와 콘텐츠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올리브영은 K뷰티 브랜드와 미국 소비자를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영역을 넓히고, 케이콘은 K팝 팬덤을 K푸드·K뷰티 소비로 확장하는 접점이 되고 있다. 각 사업이 따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업에서 만들어진 관심과 소비를 다른 사업으로 넘겨주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