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각국 정부와 에너지 기업들이 해저유전 탐사를 주목하고 있다. 원유를 바다에서 시추하더라도 이익을 낼 수 있을 정도로 국제유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해저유전 탐사에 쓰이는 '공기총(air gun)' 기술이 바닷속에 사는 고래의 생존을 위협하는 수준의 소음을 일으키고 있어 논란이 커지고 있다.
해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고래. ⓒ 픽사베이
글로벌 환경단체와 국제 학술계에서는 해저유전 탐사에 따른 소음이 고래의 소통과 먹이 탐색, 번식활동을 방해하고, 심할 경우 청력손실과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2일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외신보도를 종합하면 해저 유전탐사에 쓰이는 공기총 기술 폭음이 측정 결과 620마일(약 1천km) 이상까지 퍼져 해양생태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파악된다.
공기총 해저탐사, 원자폭탄급 폭음을 일으킨다
공기총 기술에 기반한 해저유전 탐사는 조사선이 압축공기를 물속에서 순간적으로 터뜨려 해저지형을 파악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 때 발생하는 폭음은 수중 기준으로 최대 260데시벨에 이르는데, 이는 사람이 견딜 수 있는 소음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이런 해저유전 탐사에 따른 소음의 해양생태계 파괴에 대한 우려는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 소음이 실제로 얼마나 위험한지를 두고, 해양 포유동물 생체음향학과 행동생태학을 연구하는 더글러스 노와첵 미국 듀크대학교 교수는 2018년 말 미국 연방의회 천연자원위원회 증언에서 폭탄과 유사하다고 비유했다.
노와첵 교수는 "해저유전 탐사 때 발생하는 소음은 바로 옆에서 수류탄이 폭발할 때 발생하는 소리와 맞먹는다"며 "사람의 고막을 쉽게 찢어버릴 수 있는 수준이다"고 말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호주 공영방송 ABC도 2023년 말 환경단체들의 발언을 인용해 이 소음의 강도를 '원자폭탄급'으로 비유하면서 피그미대왕고래와 같은 생명체가 완전히 청력을 상실할 수 있다고 전했다.
대왕고래의 아종(번식은 가능하지만 모양과 특성이 다른 종)인 피그미대왕고래는 전 세계 동식물의 멸종위기 등급을 평가해 발표하는 국제기구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작성하는 목록에서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돼 있다.
피그미대왕고래는 전 세계적으로 개체수가 2천~5천 마리 수준에 불과해 소음으로 인한 피해가 지속될 경우 종 존속 자체에 직접적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피그미대왕고래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멸종위기종인 라이스고래에게도 해저유전 탐사소음은 큰 피해를 준다. 라이스고래는 세계자연보전연맹의 멸종위기목록에서 '위급' 등급으로 분류되는데, 이는 '멸종위기'보다 한 단계 더 심각한 상태를 뜻한다.
라이스고래는 현재 해저유전 개발이 활발한 멕시코만에 서식하는데, 개체수는 50마리 정도에 불과해 지구상에서 가장 희귀한 대형고래로 꼽힌다.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라이스고래의 울음소리는 47마일(약 75km)까지 감지되지만 해저탐사 소음이 심한 구역에서는 그 거리가 12마일(약 19km)로 3분의 1 이하로 줄어드는 것으로 파악된다.
다시 말해 고래들이 서로를 찾고 짝짓기 상대를 구하는데 필요한 소통범위가 소음으로 인해 급격히 좁아진다는 뜻이다.
바다 아래를 헤엄치는 피그미대왕고래. AI 이미지.
해저유전 탐사소음, 먹이사슬 붕괴로 이어지는 피해
해저유전 탐사소음의 피해는 고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소음은 고래보다 훨씬 작은 생물, 특히 고래의 먹이가 되는 플랑크톤이나 크릴새우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주의 커틴대학교와 태즈메이니아대학교 공동연구진이 국제학술지 '네이처 생태와 진화'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해저유전 탐사소음에 노출된 동물성 플랑크톤의 사망률은 최대 2~3배까지 증가했고, 대형고래의 주요 먹이인 크릴새우는 전량 폐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양생태계의 피해규모를 구체적으로 가늠해볼 수 있는 자료도 있다.
미국 연방 해양에너지관리국(BOEM)이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대서양 연안에서 해저유전 탐사 소음이 지속될 경우 최대 13만8천 마리에 달하는 해양포유동물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추정결과도 나와 있다. 여기에는 전세계적으로 개체수가 400여 마리에 불과하고 번식 가능한 암컷이 100마리 남짓한 북대서양긴수염고래도 포함된다.
전문가들은 고유가 국면에서 인간과 해양생태계의 공존하기 위해서는 해저유전 탐사에 소음저감기술 도입이나 계절별 조사제한과 같은 규제 논의가 국제적으로 더욱 활발해져야 한다고 제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