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호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 총괄사장이 미국과 이란 갈등 재점화에 따른 국제유가 강세로 정유사업 실적 개선이라는 우호적 환경을 맞았다. 다만 과거 미래 성장동력으로 주목받았던 배터리사업의 정상화라는 과제는 복귀 1년이 넘어선 현재에도 안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SK이노베이션이 고유가에 따른 역대급 실적을 거둘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만큼 장 총괄사장은 정유사업이 벌어다 준 시간을 바탕으로 SK온의 정상화에 전력을 다할 것으로 예상된다.
장용호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 총괄사장. ⓒSK이노베이션
7월15일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는 8월물 서부텍사스산 원유(WTI)가 직전거래일보다 1.53%(1.20달러) 오른 배럴당 79.34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영국 런던선물거래소의 9월물 브렌트유는 같은 기간 1.43%(1.43달러) 높아진 배럴당 84.73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14일에는 WTI와 브렌트유가 각각 6%대와 7%대 급등했는데 국제유가가 이틀 연속 상승세를 나타내며 미국과 이란의 종전 양해각서 체결 직전인 6월16일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한 것이다.
14일부터 유가가 오르기 시작한 것은 양해각서가 무용지물이 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휴전 종료를 선언하면서 대이란 해상 봉쇄를 재개한다고 발표했던 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과 이란이 ‘강대강’ 대치를 재개하면서 향후 유가 역시 다시 고공비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5일 미군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앞두고 이란을 상대로 추가 공습을 단행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주까지 이란이 종전 관련 합의에 나서지 않는다면 다음 주부터는 발전소와 교량을 공격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미국-이란 전쟁이라는 중동의 불안정한 정세가 다시 고개를 들면서 SK이노베이션의 실적 개선세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진 것으로 파악된다.
SK이노베이션에 복귀한 지 1년이 지난 장용호 총괄사장의 어깨도 한층 가벼워지는 셈이다. 장 총괄사장은 1989년 SK이노베이션의 전신인 유공에 입사해 19년 동안 근무하다 SK, SK머티리얼즈, SK실트론 등을 거쳐 2025년 6월 SK이노베이션으로 복귀했다. 2026년 3월에는 대표이사에 올라 회사 경영에 관한 책임이 더 커졌다.
현재 SK이노베이션 실적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정유(석유)사업이다. 2025년 기준 SK이노베이션 전체 매출과 영업이익에서 정유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59%, 78%다.
앞서 1분기 SK이노베이션은 정유사업에서만 영업이익 1조9303억 원을 거두기도 했다. 1개 분기 만에 2025년 연간 이익을 크게 뛰어넘은 것인데 이는 미국과 이란 전쟁의 영향이 지배적이다.
1분기에는 전쟁으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까지 급등했는데 원유 도입과 석유제품 판매 사이 시차에서 발생하는 래깅효과(시차효과)와 재고 관련 이익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을 포함한 국내 정유사는 산유국과 지리적 거리, 원유 운송·저장·정제 기간 등을 고려해 재고를 보유하고 있는데 유가 상승기에는 과거 낮은 가격에 도입한 원유가 시차를 두고 원가에 반영돼 정제마진과 영업이익 개선효과가 발생한다.
당초 하반기 종전 국면에 접어들면 유가 하락으로 역래깅효과와 재고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높은 유가에 따른 이익 호조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것이다. 이미 2분기에도 SK이노베이션은 전체 1조 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거뒀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는 정유사업에서 벌어들인 8천억 원 안팎의 이익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진명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7월15일 정유·화학산업 분석보고서에서 “정유 부문은 재봉쇄 이전부터 제품 공급부족이 심화한 상황”이라며 “미국의 이란 해상봉쇄 재개에 따라 정제마진 강세 및 정유사의 하반기 이익 증가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내다봤다.
2026년 장 총괄사장은 SK이노베이션의 역대 최대 영업이익(2022년 3조9173억 원)을 뛰어넘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등 우호적인 경영 환경을 맞이하게 됐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의 2026년 연결기준 영업이익 전망치는 5조2817억 원에 이른다.
특히 장 총괄사장에는 기존 SK이노베이션만의 차별화 지점으로 여겨졌던 배터리가 여전히 실적 부진에 허덕이고 있는 가운데 전사의 역량을 모으고 있는 ‘SK온 구하기’에 조금의 여유가 생겼다는 의미가 크게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5년여 전으로 시계를 돌려 2021년 10월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사업을 물적분할해 SK온을 세웠을 즈음을 보면 SK이노베이션에게 배터리 사업은 특별한 장점으로 여겨졌다.
정유4사(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HD현대오일뱅크)의 미래 성장동력 가운데 유일하게 진정한 ‘성장산업’으로 분류된 배터리사업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정유사들이 정유업과 유사한 화학사업이나 성장성이 그리 크지 않은 전기차 충전사업 등에서 신사업 활로를 찾을 때 SK이노베이션은 미래가 창창해 보였던 배터리사업을 들고 차별화한 성장 궤적을 그릴 것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정유나 화학이 유가라는 변수에 영향을 크게 받는 사업이기 때문에 배터리는 미래 성장성뿐 아니라 실적 변동성을 줄여줄 강력한 무기로 꼽혀왔다.
다만 전기차 시장의 성장이 더뎌지면서 현재는 SK이노베이션을 넘어 SK그룹의 가장 큰 고민거리로 남아 있는 모양새다. SK온은 모회사 SK이노베이션에서 물적분할한 뒤 5년여 동안 아직 연간 영업흑자를 나타내지 못했고 분기 기준으로도 2024년 3분기, 1개 분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영업손실을 봤다.
장 총괄사장은 취임 첫 일성으로 사업 리밸런싱(재조정)을 강조했는데 그 중심에는 SK온을 뒀던 것으로 풀이된다.
장 총괄사장은 2025년 6월19일 SK이노베이션 전체 구성원을 대상으로 연 첫 타운홀 미팅에서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을 최우선 과제로 꼽고 “현재 사업 수익성과 재무구조 악화, 기업가치 하락 등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사업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은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과제로 실행 가능한 방안을 만들어 빠르게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장 총괄사장의 취임 일성 뒤 40여 일이 지난 7월30일 SK이노베이션은 SK온에 윤활유 자회사 SK엔무브를 흡수합병하는 개편안을 내놨고 11월1일 합병법인(SK온)이 출범했다. SK온은 자본 1조7천억 원, 상각전영업이익(EBITDA) 8천억 원의 재무구조 개선 효과를 통해 사업 성장의 추가 기반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 사이 장 총괄사장이 기타비상무이사로 경영 주요 결정에 참여하고 있는 SK온도 SK머티리얼즈, SK실트론 대표를 거치며 그룹 내 손꼽히는 ‘제조 전문가’로 평가받는 이용욱 사장을 수장으로 세웠고 미국에서 포드와 세웠던 배터리 합작법인(블루오벌SK)의 체제를 종결하면서 5조4천억 원 규모의 차입금 부담을 줄이는 등 기업 경쟁력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SK온은 사업 측면에서는 AI 시대를 맞이해 전력 인프라의 핵심으로 떠오른 에너지저장장치(ESS) 배터리 시장으로 빠르게 무게추를 옮기고 있다. 다만 영업이익 흑자전환 등 실질적 성과를 거두기 까지는 여전히 시간이 필요하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김문호 한국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7월3일 ‘정유산업 2026년 정기평가 결과 및 하반기 전망’ 보고서에서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부문은 대규모 투자에도 영업적자가 이어지며 연결기준 실적 및 현금흐름, 재무안정성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ESS 배터리 수주가 진행되고 있지만 실적 가시화에는 다소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전기차 배터리도 정상화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