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직원들의 '성과급 배분'이 요즘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다. 영업이익 300조 원을 가정할 경우, DS 메모리 부문 직원 최대 6억 원, 비메모리 부문 2억1천만 원, DX(가전·모바일) 부문 600만 원 등등….
식품업계는 완전히 다른 세계다. 갈등의 출발점 자체가 다르다. 성과급 규모나 추가 보상 이전에, 수당과 장시간 노동에 의존하지 않아도 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기본급 체계를 먼저 보장해달라는 요구가 노사 갈등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문경주 화섬식품노조 부위원장이 지난 26일 오후 2시 용산 오리온 본사 후문 도로에서 진행된 오리온 노조 사상 첫 총파업 출정식에서 대회사를 발표하고 있다. ⓒ화섬식품노조
◆ “수당 의존 줄이고 기본급 높여라”, 오리온 노조 요구 배경
27일 화섬식품노조 오리온지회에 따르면 오리온그룹 영업직 임금 구조는 기본급과 수당 비중이 6대4 수준에 머물러 있다. 특히 노조는 반품수당처럼 대부분의 직원이 사실상 매달 고정적으로 받는 항목까지 기본급이 아닌 수당 형태로 지급되고 있어 기본급 비중이 낮은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러한 구조에서는 임금의 상당 부분이 수당에 의존하게 되면서, 회사가 기준을 변경하거나 제도를 조정할 경우 임금 수준이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구조라는 점도 문제로 제기했다.
실제로 업계 취재 내용을 종합하면 오리온 영업직의 기본급은 300만 원 전후 수준으로 형성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해태 등 일부 동종업계 영업직이 500만 원 안팎의 기본급 수준을 가져가는 것과 비교하면 낮은 편이다.
다만 수당과 성과급이 더해지면서 총 임금 기준으로는 업계 평균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노조는 임금 총액의 수준과는 별개로, 기본급 비중이 낮고 수당 의존도가 높은 임금 체계 자체가 노동 안정성을 약화시키는 핵심 요인이라고 보고 있다.
함대식 화섬식품노조 오리온지회 사무장 “현재 반품수당이 반품을 몇 퍼센트 이하로 하면 30만~50만 원을 지급하는 구조지만, 실제로는 대부분의 직무에서 사실상 50만 원이 고정적으로 지급되고 있다"며 "이 부분이 수당으로 남아 있으면 회사 판단이나 기준 변화에 따라 언제든 줄어들 수 있기 때문에 기본급 전환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70% 기본급 합의 미이행 지적
노조는 이러한 임금 구조 문제가 장기간 유지된 배경으로 과거 노사 합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은 점을 지적하고 있다. 노조는 2018년 노사 협의를 통해 3년에 걸쳐 기본급 비중을 70% 수준까지 높이기로 공식 문서를 통해 합의했지만 현재까지도 영업직 기본급 비중은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조는 이러한 합의가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이행되지 못한 배경으로 교섭 구조의 한계를 지목하고 있다.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오리온지회는 올해 처음으로 교섭대표 지위를 확보했으며, 그 이전까지는 다른 소속 노조가 교섭을 맡아왔다. 이 기간 동안 임금 구조 개선이나 노동강도 문제와 같은 현장 핵심 요구들이 교섭 과정에서 충분히 다뤄지지 못했거나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였다는 게 노조 측 설명이다.
화섬식품노조 오리온지회 관계자는 “기본급 비중을 높이기로 한 과거 노사 합의도 현장에서는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는 인식도 있다”며 “교섭권을 확보한 이후 처음으로 기본급 구조와 연장노동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 “실적·목표 따라 임금 흔들린다”, 노동강도 강화 구조 비판
노조는 문제의 핵심이 단순히 기본급 규모 자체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현재의 임금 체계가 실적 압박과 장시간 노동을 사실상 구조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조는 현재 임금 구조가 노동강도를 높이는 방식으로도 작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기본급 비중이 낮고 실적수당 의존도가 높은 구조에서는 회사가 판매 목표를 상향 조정할 경우 노동자들이 동일한 임금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판매 실적을 달성해야 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노조에 따르면 같은 판매액을 기록하더라도 회사가 설정한 목표치 수준에 따라 수당 규모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목표가 높아질수록 수당 지급 기준 역시 함께 올라가기 때문에 노동자 입장에서는 기존 수준의 임금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판매와 장시간 노동을 반복적으로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함 사무장은 “같은 판매 실적을 올려도 회사가 목표를 얼마로 잡느냐에 따라 수당이 크게 달라진다”며 “회사는 계속해서 목표를 상향 조정하고 있고, 결국 직원들이 임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높아진 목표치를 맞추기 위해 더 오래 일하고 더 많이 판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새벽 출근·야간 노동 일상화”, 실제 노동시간 불인정 논란
실제 현장에서는 새벽 출근과 저녁 시간대까지 이어지는 업무가 관행처럼 이어지고 있으며, 상당 부분은 공식 노동시간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노조에 따르면 일부 영업직 직원들은 물량 상차와 배송 준비를 위해 오전 5~6시부터 출근하고 있지만, 회사는 이를 자발적 조출로 보고 별도 근로시간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또 공식 근무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거래처 업무와 상차·정산 업무 등이 이어지면서 오후 6~7시 이후 퇴근이 일반화돼 있다는 게 노조 측 설명이다.
노조에 따르면 회사 측은 최근 교섭 과정에서 ‘현장 안정화 수당’ 명목으로 하루 1시간 수준의 추가 보상안을 제시했지만, 이는 올해 6월부터 12월까지만 적용되는 한시 방안으로 근본적 해결책과는 거리가 있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일상화된 추가 노동 시간에 대해 구체적 보상안이 협의되지 않을 경우 체불임금 소송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임기홍 화섬식품노조 오리온지회장은 “직원들이 빨리 나오지 않으면 물량 상차와 이동 자체가 어려운 구조라 사실상 새벽부터 업무가 시작되고 있지만 상당 부분은 노동시간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일상적 연장노동에도 수당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고 있는 처지인데, 근본적 임금 체계 개선 없이 임금 인상안으로 2% 수준만 제시된 상황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