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위한 개헌에 반대하며 표결에 불참했음에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참석을 위해 광주를 찾는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연합뉴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18일 5·18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광주를 찾는다. 그러면서 이날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저들에게 5·18은 지켜야 할 가치가 아니라 권력 확장의 도구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이어 "입으로는 5·18 정신을 외치지만, 정작 5·18 정신을 무너뜨리는 자들이 바로 이재명과 민주당"이라며 "우리 국민은 이재명과 민주당의 자유민주주의 파괴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 대표가 이렇게 '5·18 정신'을 강조했지만, 국민의힘은 정작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과 비상계엄 통제 강화를 담은 개헌안 표결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앞서 1987년 개헌 이후 39년 만에 추진된 헌법 개정은 국민의힘의 반대로 결국 무산됐다. 더불어민주당 등 6개 정당과 무소속 의원 6명을 포함한 187명이 공동 발의한 헌법 개정안은 지난 8일 국민의힘의 표결 불참으로 투표 자체가 성립되지 못했다.
개헌안에는 '부마민주항쟁'과 '5·18민주화운동'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는 내용과 함께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국회의 통제 권한을 강화하고 국가 균형발전 의무를 명시하는 방안 등이 담겼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8일 국회에서 열린 5월 임시국회 제2차 본회의에서 대한민국헌법 개정안과 다른 법안들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국민의힘을 비판하던 중 눈가를 닦고 있다. 우 의장은 이날 대한민국헌법 개정안 등을 본회의에 상정하지 않았다. ⓒ연합뉴스
국민의힘은 "졸속 누더기 개헌 폭주는 국민과 함께 결사 저지할 것"이라며 반대를 고수했고, 결국 개헌안은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한 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본회의장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은 끝내 눈물을 흘렸다.
이번 개헌 무산을 두고 비판이 커지는 이유는 5·18 정신의 헌법 수록이 좌절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개헌안에는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국회가 실질적으로 통제하도록 하는 민주주의 안전장치도 포함돼 있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이번 개헌안의 핵심은 비상계엄에 대한 국회의 통제 권한을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데 있다"며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면 즉시 국회의 승인을 받도록 하고, 48시간 내 승인이 이뤄지지 않거나 국회가 해제를 의결하면 즉시 계엄의 효력이 종료되도록 하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5·18민주화운동 46주기를 하루 앞둔 17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5·18정신 헌법전문수록 개헌 국민추진위원회 관계자들이 국민의힘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럼에도 국민의힘은 끝내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시민사회와 관련 단체들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5·18정신 헌법전문수록 개헌국민추진위원회 등은 17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민주의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의힘은 개헌 반대 당론과 표결 회피에 대해 국민 앞에 즉각 사죄하라"며 "말뿐인 참배와 기만적인 정치쇼를 중단하고 법적·제도적 보장으로 진정성을 증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1980년 신군부 검열에 맞서다 강제 해직당한 언론인들도 5·18 정신의 헌법 전문 명기를 촉구하고 나섰다. 매년 5월 광주를 방문하고 있는 80년해직언론인협회(80해언협)은 16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민주의 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의힘 소속 108명 의원 가운데 단 한 명도 양심에 따른 소신투표를 결행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참담함을 금치 못한다"며 "12·3 내란 계엄 당시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을 방해하기 위해 의원들을 의총으로 묶었던 것과 같은 반헌법적 행태"라고 비판했다.
80년해직언론인협회 회원들이 16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민주의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명기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연합뉴스
비판이 더욱 커지는 건 국민의힘 인사들이 과거에는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에 공개적으로 찬성해왔기 때문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국민의힘 대선 후보 시절 "5·18 정신은 우리 헌법 전문에 수록되어야 한다"고 공약했다. 대통령 취임 후 첫 5·18 기념사에서도 "오월 정신은 보편적 가치의 회복이고, 자유민주주의 헌법 정신 그 자체"라고 말했다.
2023년 김기현 당시 국민의힘 대표 역시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겠다는 것은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고 당의 입장이기도 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2024년 한동훈 당시 비상대책위원장도 "헌법 전문 수록에 단순히 동의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추진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이처럼 거듭 약속했음에도, 정작 개헌안이 국회 본회의에 올라오자 표결 자체를 거부했다. 결국 헌법적 가치와 민주주의의 원칙마저 선거 유불리 앞에서 뒤로 밀려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오월 정신은 헌법 정신'이라고 말해왔음에도, 실제 헌법에 담을 기회가 오자 등을 돌린 셈이기 때문이다.
5·18 민주화운동 46주기를 하루 앞둔 17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이 분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원식 국회의장은 개헌안 표결에 앞서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만큼은 정파를 넘어야 한다"며 국민의힘의 참여를 거듭 요청했다. 송언석 원내대표를 향해서도 "국민의힘에서 이번 개헌 표결에 함께해주시길 다시 한번 간곡히 요청드린다"고 호소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장동혁 대표를 비롯한 국민의힘 지도부는 18일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참석을 위해 광주를 찾는다. 그러나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은 외면한 채 기념식만 찾는 행보를 두고 참배 정치라는 비판도 커지고 있다.
장 대표는 지난해 11월6일 당대표 취임 이후 처음으로 광주 국립5·18민주묘지를 방문했지만 시민단체 반발에 가로막혀 참배를 하지 못했다.
한편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후보는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광주 방문, '무시가 답'이다"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저는 그 방문이 진심 어린 사죄와 참회의 걸음이라고 믿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민 후보는 이어 "오히려 분노한 시민들에게 '계란'이라도 맞으며 피해자 행세를 하려는 계산된 일정으로 보인다"며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얕은 계산 따위에 말려들지 말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