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사건을 담당하다 보면 의뢰인을 만나기 위해 구치소를 자주 드나든다. 마약 사범 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를까. 적어도 그날 내가 만난 청년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마약범의 모습. AI 이미지
바깥보다 한 계절 느린 밝은 하늘색 수의를 단정하게 입고서, 핏발 선 눈동자나 문신 대신 작고 흰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있었다. 그가 처음으로 마약을 접한 곳은 뒷골목이나 텔레그램 비밀방이 아니었다. 강남 한복판, 밝고 하얀 병원 진료실이었다.
최근 대한민국 마약류 범죄의 새로운 뇌관은 ‘향정신성의약품’이다. 수면마취제, 다이어트약, ADHD 치료제와 같은 약물들이 ‘합법’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우리 일상 깊숙이 파고든다. 잠들고 싶다는 이유로, 살을 빼고 싶다는 이유로 병원을 찾은 환자들은 일부 의사의 처방을 받고 중독의 늪에 빠진다. 이런 약들은 전문가의 방조 아래 평범한 이웃을 빠른 시간 안에 중독자로 만든다. ‘나비약’이 대표적이다. 나비 모양의 예쁜 외형을 가진 이 약물은 화학 구조가 필로폰과 유사한 암페타민 계열이다. 유명 방송인들이 이 약을 불법 처방받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이처럼 합법의 탈을 쓴 마약류가 막대한 범죄 수익을 창출하는 ‘의료 비즈니스’가 됐다는 사실이다. 그는 미용 시술을 빙자해 환자들에게 3700여 차례 프로포폴 등 수면마취제를 불법 투약했다. 중독자들의 갈망을 돈벌이 삼아 챙긴 수익은 41억 원에 달했다.
만약 일반 마약상이 텔레그램에서 41억 원어치 필로폰을 팔았다면 어땠을까. 필시 무기징역에 가까운 중형을 선고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의료 행위’라는 방패와 ‘하얀 가운’이라는 권위를 두르자 사법부의 저울이 기묘하게 기울었다. 105명의 삶을 파괴한 대가로 그에게 내려진 형량은 고작 징역 4년이었다.
내가 짚어내고 싶은 부분이 바로 이 지독한 모순이다. 우리 사회는 어두운 뒷골목의 마약 사범을 철저한 ‘악(惡)’으로 규정하고 단죄하는 데 거침이 없다. 반면 돈벌이를 위해 진료실에서 합법을 가장해 마약을 팔아넘긴 악행에는 뜻밖의 관대함을 보인다.
몸과 마음의 치유를 위해 병원 문을 넘었다가 전문가가 건넨 유혹에 중독자가 되어버린 환자들. 그리고 그들의 삶을 파괴하며 41억 원을 벌어들이고도 징역 4년이라는 면죄부를 받은 의사. 과연 누가 더 무거운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한가. 졸저 '나는 왜 마약 변호사를 하는가'를 쓰며 던졌던 ‘약하면 악한가?’라는 의문은, 길을 잃은 일부 진료실의 현실 앞에서 더욱 날카롭게 꽂힌다.
우리 사회가 들여다봐야 할 곳은 처방전이라는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중독을 조장하는 제도의 빈틈이다. 그리고 내밀어야 할 것은, 이미 그 틈새로 빠져 길을 잃은 사람들을 향한 치료와 재활의 손길이다. 범죄자와 환자라는 아슬아슬한 경계 위를 위태롭게 걷는 사람들. 마약이라는 낙인으로 그들을 밀어내기만 한다면 진료실 안의 비극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