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오래전부터 미신과 학문 체계를 적절히 결합해 인간의 성향을 특정 유형으로 분류해왔다. 동양의 경우 60갑자를 바탕으로 인간의 기질과 운명을 해석하는 사주가 널리 활용돼왔다. 1962년 최초로 개발된 MBTI는 인간의 성격을 16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인간은 항상 자신과 타인을 유형화하고 있다.
누리꾼들 사이에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무료로 사주를 볼 수 있는 프롬프트가 활발하게 공유되고 있다. ⓒ스레드
7일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내놓은 '위클리글로벌 475호'(4월6일 발간)을 보면, 태국 매체 TNN은 디즈니+가 제작한 예능 프로그램 '운명전쟁49'의 흥행을 조명하며 "한국이 무속 콘텐츠를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K-콘텐츠 모델로 발전시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K-팝과 K-드라마를 넘어 무당·사주 기반의 무속 문화까지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 수단으로 치밀하게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실제 네이버 블로그나 스레드, 엑스(X, 옛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SNS)에는 '챗GPT로 사주 보는 프롬프트' 게시물이 넘쳐난다. 생성형 인공지능(AI)에게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간을 입력한 뒤 연애운·직업운·궁합 등을 해석받는 방식이다.
전문가 매칭 플랫폼 '숨고'에서는 사주 명리학 레슨 카테고리가 별도로 운영되고 있고, 네이버 온라인 전문가 상담 플랫폼 '네이버 엑스퍼트'에 등록된 사주·명리 전문가 수도 수천 명에 달한다.
사주 콘텐츠는 이제 방송가에서도 익숙한 흥행 소재다. 과거 '무한도전' 관상 특집으로 대중적 인지도를 얻었던 명리학자 박성준씨는 올해 1월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단독 출연했다. 연애와 무속을 결합한 '신들린 연애', 무속 토크쇼 형식의 '귀묘한 이야기' 같은 프로그램도 자연스럽게 소비되고 있다.
대표적 온라인 사주 플랫폼 '포스텔러'는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방탄소년단·투어스 등 인기 아이돌의 궁합과 사주를 풀어주는 콘텐츠를 선보이며 2030 젊은층을 사로잡고 있다. ⓒ포스텔러 공식 유튜브 채널
누적 가입자 약 900만 명에 달하는 대표적 온라인 사주 플랫폼 포스텔러는 유튜브를 통해 사주와 아이돌, 연애 감성을 접목한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제작하고 있다. 과거 중장년층 중심으로 소비되던 사주 문화가 이제는 숏폼·AI와 결합해 2030 세대의 일상 안으로 파고든 셈이다.
인간이 자신과 타인을 일정한 '틀' 안에 집어넣으려는 욕망은 아주 오래됐다. 혈액형·MBTI·애니어그램·사주·성인 애착 유형(연애 스타일을 세 유형으로 분류)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오래전부터 자신과 타인을 분류하기 위한 장치를 끊임없이 생산해왔다.
사주의 경우 조선시대 때 집안 간 혼인을 결정짓는 중요한 기준으로도 작용했다. 오늘날에도 '궁합', '팔자' 같은 표현이 널리 쓰인다는 사실은 사주 명리학이 우리 문화에 얼마나 깊게 스며들어 있는지를 증명한다.
서양도 크게 다르지 않다. 태어난 시기에 따라 별자리로 사람의 성향을 규정해 왔다. 게자리를 타고 태어난 사람은 바람기가 많다고 하는 식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이토록 유형화에 매혹되는 걸까. 뇌과학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뇌는 끊임없이 패턴을 찾고 의미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우연 속에서도 질서를 발견하려 하고 그렇게 만들어낸 '자의적' 해석을 통해 심리적 안정을 얻는다고 심리학자들을 바라본다.
문제는 이런 분류 체계를 지나치게 맹신하는 순간부터 발생한다.
카드 뉴스 형태로 제작된 MBTI 콘텐츠. 이런 '인간 유형화'를 맹신하면 인간을 단편적으로 판단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인스타그램
첫 번째 위험은 '자기 인식의 축소'다. "나는 MBTI가 I(내향형)라 발표를 못해", "나는 원래 회피형이라 연애가 힘들어" 등 스스로의 가능성을 제한할 수 있다.
두 번째는 타인을 지나치게 단순한 틀 안에 집어넣음으로써 인간관계가 훼손될 수도 있다. 몇몇 행동만 단편적으로 본 뒤 "저 사람은 특정 혈액형이라 저런 성격이야", "사주에 특정 기운이 없더니 역시 진취성이 떨어지네"와 같은 식의 타인을 쉽게 판단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인간의 생각과 감정, 행동은 유전·환경·경험·관계·사회문화적 맥락이 복합적으로 얽혀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현대 뇌과학조차 아직 완전히 설명하지 못하는 영역이 훨씬 많다.
MBTI든 사주든 가벼운 대화 소재로 활용될 수는 있다. 실제로 사람들은 이를 통해 서로 쉽게 친밀감을 형성하기도 한다. 다만 그것이 인간을 설명하는 '중대 기준'이 되는 순간 문제는 시작된다.
사주와 MBTI 등 많은 유형 분류 체계는 생각보다 훨씬 단순하다. 그 단순한 틀은 '마구' 적용한다면 인간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무시하는 '단순화의 오류'에 봉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