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15일 제주 4·3 사건을 다룬 영화 ‘내 이름은’을 시민 165명과 함께 관람한다.
이 대통령은 직접 SNS를 통해 ‘대통령과 영화 봅니다’ 행사를 알리며 “이 작품은 제주 4·3의 비극을 겪고 기억을 잃은 채 살아온 한 어머니의 삶을 통해 시대의 아픔과 치유의 과정을 그린 영화”라고 소개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2025년 9월 20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부산국제영화제 공식상영작 '극장의 시간들' 상영 뒤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 행사에서 관람객에게 인사하고 있다(왼쪽). 이재명 대통령이 SNS에 올린 2026년 4월 15일 진행되는 ‘내 이름은’ 관람 행사 이미지. ⓒ연합뉴스, X
이 대통령은 평소 K-콘텐츠에 깊은 관심을 보여여 왔는데,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공유하는 데에도 적극적이다. 장항준 감독의 최신 흥행작 '왕과 사는 남자'가 300만 관객을 돌파했을 당시 직접 관람했고, 이후 천만 관객을 넘겼을 때는 감독에게 축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또한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감상평을 남기거나, 한국적 전통의 특징이 두드러지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파급력을 언급하며 ‘문화의 힘’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처럼 현직 대통령이 문화 콘텐츠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는 가운데, 역대 대통령들은 어떤 방식으로 영화와 드라마를 감상해 왔는지 살펴본다.
△이승만 : ‘영화는 오락’이라며 통제
집무실에서 타이핑하는 이승만 전 대통령. ⓒ국가기록원
이승만 전 대통령은 개인적인 영화 취향을 드러내기보다는 국가 차원에서 영화의 방향을 규정하는 데 더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영화 정책의 핵심은 ‘오락’이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은 국민들에게 현실을 직시하는 작품보다는 가볍고 단순한 웃음을 제공하는 영화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러나 이러한 기조에는 대중을 비판적 사고에서 멀어지게 하려는, 이른바 ‘우민화’ 의도가 깔려 있었다는 비판도 뒤따른다. 실제로 당시 평단에서 호평을 받았던 김소동 감독의 영화 ‘돈’은 지나치게 사회비판적이고 어둡다는 이유로 배제됐고, 대신 저속한 희극이라는 다소 박한 평가를 받은 한형모 감독의 영화 ‘청춘쌍곡선’이 제5회 아시아영화제 출품작으로 교체됐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영화제에서 입상권에도 들지 못했다.
또한 이 시기에는 김화랑 감독의 ‘뚱뚱이와 홀쭉이 논산훈련소에 가다’ 같은 코미디에 군사·애국주의 요소를 결합한 영화들이 제작되며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자율적인 장르 발전이라기보다 정권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물에 가까웠다. 결국 당시 한국 영화계는 코미디와 국가 이데올로기가 뒤섞인, 장르적으로도 규정하기 어려운 기형적인 형태의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게 됐다. 문화는 표현의 영역이 아닌 통제의 대상으로 기능하게 됐다.
△노무현 : ‘조용한 관객’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12월 청와대 본관에서 CNN과 인터뷰를 가진 후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적 메시지보다는 개인적 취향에 기반해 영화를 즐긴 대표적인 대통령으로 꼽힌다. 그는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자주, 그리고 비교적 조용하게 극장을 찾았다.
2003년 취임 이후 일반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했고, 2006년 1월에는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를 관람했다. 같은 해 4월 장애인의날에는 청와대에서 권수경 감독의 ‘맨발의 기봉이’를 상영했고, 2007년 1월1일에는 보좌관들과 함께 배창호 감독의 ‘길’을 관람했다. 이어 같은해 6월에는 제60회 칸 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이자 여우주연상 수상작인 이창동 감독의 ‘밀양’을 관람하는 등 꾸준히 영화 관람을 즐겼다.
그는 영화인들은 청와대로 초청해 열린 '칸 영화제 수상 축하' 자리에서 “‘길’, ‘왕의 남자’, ‘괴물’을 직접 극장에서 봤다”고 밝히며, 특정 메시지 전달보다 ‘관객으로서의 경험’ 자체를 중요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박근혜 : 애국주의 정서 강조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7년 3월22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뇌물수수 등 13가지 혐의에 대해 검찰 조사를 뒤 자택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영화 관람은 문화 정책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었다. 당선 직후에는 정치적 해석이 어려운 ‘뽀로로 극장판 슈퍼썰매 대모험’을 관람했지만, 이후에는 ‘문화융성’이라는 국정 기조에 맞춰 영화 관람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매월 마지막 수요일을 ‘문화가 있는 날’로 지정한 이후, 영화 관람은 정책 홍보의 일환으로 활용했다. 특히 2014년 설 연휴를 앞두고는 애니메이션 ‘넛잡 : 땅콩 도둑들’을 어린이들과 함께 관람하며 가정친화적인 모습을 연출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관람한 ‘넛잡 : 땅콩 도둑들’은 당시 세계적으로 히트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과 개봉 시기가 겹쳐 흥행에는 대참패했다.
또한 박근혜 정부에서는 특정 감독과 배우들을 대상으로 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논란이 불거졌을 뿐 아니라, 당시 흥행한 작품들이 정치적 해석에서 자유롭지 못하기도 했다. 김한민 감독의 ‘명량’,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 이재한 감독의 ‘인천상륙작전’ 등 이른바 애국주의 정서를 강조한 작품들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졌다. 이에 영화가 정책 메시지 전달 수단으로 활용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재인 : 소시민적 공감과 '메시지 전달'
2017년 6월 8일 문재인 전 대통령이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자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유사하게 영화를 자주 관람하면서도, 작품에 대한 감정과 메시지를 비교적 직접적으로 드러낸 인물이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추창민 감독의 ‘광해, 왕이 된 남자’를 관람한 뒤 눈물을 흘린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2014년 1월 부산에서 ‘변호인’을 관람한 뒤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다”고 발언하며 영화와 현실을 연결짓기도 했다.
동시에 그는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윤 감독의 ‘국제시장’, 김학순 감독의 ‘연평해전’ 등 다양한 성격의 작품을 두루 관람했다. ‘국제시장’에 대해서는 가족사와 겹친다며 개인적인 소회를 밝혔고, ‘연평해전’에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메시지를 전하며 눈시울이 붉거진 모습을 보였다. 영화 감상을 통해 소시민적 공감과 동시에 사회적 메시지를 함께 전달한 사례다.
△윤석열 : 사랑꾼의 '부정선거 영화' 관람
윤석열 전 대통령이 2025년 9월26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특수공무집행방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사건 1차 공판에 출석해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지난 14일 재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김건희 여사를 9개월 만에 처음 마주하며 옅은 눈웃음을 지으며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의 영화 관련 행보에는 ‘사랑꾼’ 면모와 탄핵 이후의 정치적 맥락이 함께 드러난다.
취임 초기에는 별다른 영화 관련 일정이 없었지만, 2022년 6월12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를 관람한 뒤 기자들과 만나 “칸에서 상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좋은 메시지를 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같은 날 대통령실 청사 앞 잔디마당에서 배우 송강호와 박찬욱 감독을 비롯한 영화계 인사들을 초청해 만찬을 가졌다.
윤 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영화 ‘변호인’을 자신의 ‘최애 영화’라고 언급하면서도, 정작 화제는 영화보다 개인적 추억으로 옮겨갔다. 그는 “연애 시절은 물론 결혼 후에도 대한극장에서 자주 영화를 함께 봤다”며 “주말이면 극장 옆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고 영화를 보는 것이 일상이었다”고 김 여사와의 기억을 꺼낸 것이다.
이후 한동안 영화 관련 공개 행보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2025년 4월4일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뒤에는 이영돈 PD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부정선거, 신의 작품인가’를 극우 유튜버 전한길씨과 함께 박수를 치며 관람하는 모습이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