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와 미국 PBS 키즈에서 8월 초 방영된 세서미 스트리트 특별편 ‘세서미 스트리트의 폭풍’이 지구온난화 논쟁의 중심에 섰다.
이 특별편은 주인공 엘모와 그 친구들이 폭풍에 대비하고 피해를 복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방송 어디에도 ‘기후변화’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았다.
'세서미 스트리트의 폭풍' 예고편의 한 장면. ⓒ 세서미 스트리트 유튜브 갈무리
16일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외신보도를 종합하면 미국 방송가에서 나타나는 '기후변화에 대한 침묵'은 정치적 논쟁을 피하기 위한 의도적 행위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보수정권의 지구온난화 부정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올해 2월 온실가스가 국민건강에 위협이 된다는 과학적 결론을 담고 있는 '위해성 판단(endangerment finding)' 공식문서를 폐기했다.
이는 미국 환경보호청(EPA)가 2009년 확정한 문서로서 앞서 17년간 미국의 모든 기후규제를 뒷받침해온 법적 근거가 됐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기후변화를 '사기이자 날강도 행위'라고 부정하면서 문서의 공식적 폐기를 지시했다. 세계 과학자 대다수가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를 사실로 인정하는 것과 정반대의 입장을 미국 정부가 취한 것이다.
미국 보수진영의 기후변화 부정은 과학 자체에 대한 불신보다 정부 규제 확대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된다는 분석이 많다.
비영리 연구기관 퓨리서치센터 조사에 따르면 보수적 공화당원 다수는 기후과학자 연구가 정치적 편향에 좌우된다고 의심하며, 기후대응이 화석연료 산업 규제와 국가의 개입확대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반면 민주당은 기후변화를 바라보는 보수진영의 논리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척 슈머 미국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위해성 판단 폐기를 '거대 석유업계에 대한 굴복'이라 규정했고, 민주당 상원의원 47명은 '과학과 법, 사실에 반한다'며 올해 2월 위해성 판단 폐기의 철회를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로이터=연합뉴스
기후재난은 보여주지만, 원인은 말하지 못한다
이런 좌우파의 정치적 논쟁은 어린이 방송 프로그램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서미 스트리트를 제작하는 비영리단체 세서미 워크숍의 로시오 갈라르사 부사장은 뉴욕타임스와 나눈 인터뷰에서 "지구온난화와 관련해 과학이 보여주는 바는 명확하다"면서도 "이번 특별편에서 초점을 맞춘 것은 지구온난화의 원인 설명이 아니라 아이들이 재난상황에서 느끼는 두려움을 다루는 데 있었다"고 말했다.
세서미 스트리트는 그동안 연방예산의 일부를 받아서 프로그램을 제작 및 유통해왔는데 지구온난화와 관련한 정치적 논쟁을 피하려는 모습으로 풀이된다.
기후변화라는 단어를 꺼내는 순간 방송제작업체가 트럼프 행정부의 정치적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작방향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렇게 조심스러운 태도는 세서미 스트리트만의 일이 아니다.
미국 비영리기관 아스펜 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어린이 프로그램 660여 편 가운데 기후변화를 다룬 비율은 1%, 인간이 원인이라고 설명한 비율은 0.3%에 그쳤다. 반면 부모의 74%는 어린이 콘텐츠에 기후 해법 정보가 담기길 원한다고 답했다.
미국 시사주간 타임(TIME)은 하버드대 교육대학원 티나 그로처 연구원의 말을 인용해, 2020년에 태어난 아이들이 1960년생보다 최대 7배 더 많은 기상 이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앞으로는 기후변화와의 연결고리를 더 명확히 다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세서미 스트리트 제작진의 선택은 지금 미국 사회가 마주한 딜레마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장면이 되고 있다. 폭풍과 홍수, 폭염을 이미 몸으로 겪고 있는 아이들에게 그 원인을 설명해주는지 않고 있다는 셈이다.
기후변화를 사실로 인정하는 진영과 이를 부정하는 미국 내부 좌우대립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미래 세대가 자신이 살아갈 세계를 이해할 기회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