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JD 밴스 미국 부통령이 나란히 이란과 벌일 종전협상에서 이란의 핵농축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은 이란과 벌였던 핵 협상에서 중대한 진전이 있었음에도 전쟁을 시작했다. 이란의 양보에도 뒤통수를 친 셈이다. 이란전쟁으로 이란의 협상 입지만 강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JD 밴스 미국 부통령. ⓒ AFP=연합뉴스(왼쪽)/주미한국대사관=연합뉴스(오른쪽)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 휴전에 합의한 다음날인 8일(현지시각) 사회관계망서비스 트루스소셜에 "이란에게 우라늄 농축을 허용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며 "미국은 이란과 협력해 깊숙이 묻혀 있는 핵잔해들을 파내어 제거할 것이다"고 적었다.
미국은 지난해 6월 벙크버스터 등을 동원한 12일 전쟁에서 이란 핵시설을 맹폭했고, 올해 들어 38일 간 지속된 전쟁에서도 핵시설을 집중 타격했다. 하지만 이란의 핵물질을 제대로 파괴하지 못했음을 자인한 셈이다.
밴스 부통령도 같은 날(8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귀국하기 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란이 핵농축 프로그램을 폐기하지 않는다면 휴전협상은 진행되기 어렵다는 뜻을 보였다.
밴스 부통령은 "이번 휴전협상의 주요 의제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란이 핵무기를 제조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며 "미국은 이란의 핵농축 물질을 확실히 통제할 것이고 이란이 핵농축 물질을 포기하도록 협상과정에서 요구할 것이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밴스 부통령이 모두 미국-이란 종전협상에서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겠다는 목표를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양국의 종전협상은 11일 파키스탄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이런 목표는 자신들의 '전략적 실수'를 감추려 하는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란은 이번 전쟁 직전까지 요르단의 중재로 열렸던 양국 핵협상에서 큰 양보를 미국 쪽에 제안했다. 미국이 이란 쪽 제안을 수용하면 느리지만 확실하게 이란 핵문제를 통제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미국은 기습 공격을 선택했다.
영국 가디언은 이란전쟁 직전 핵협상이 단순한 탐색전이 아니라 실제 타결가능성이 있는 단계까지 진전했다고 전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조너선 파월 영국 국가안보보좌관은 올해 2월 말 제네바에서 열린 미국과 이란의 핵협상에 배석한 뒤 이란의 제안을 두고 '놀랍고 유의미한 진전'으로 평가했고, 후속 기술협의가 3월2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당시 이란이 제시한 카드는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와 가디언의 보도를 종합하면 이란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시 아래 고농축 우라늄 약 440kg을 희석하고 추가 비축을 포기하는 방안, 3~5년간 핵농축을 멈추는 방안, 미국기업의 이란 에너지 부문 참여를 허용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주목받은 부문은 이른바 '일몰조항' 문제였다. 2015년 오바마 행정부가 이란과 맺은 다자간 핵합의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은 이란의 핵활동 제한에 시한이 붙어 있었지만, 올해 2월 미국과 이란의 제네바 협상에서는 이란이 영구적 성격의 합의까지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오바마 정부보다 더 진척된 양보안'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때문에 미국이 정말 이란의 핵농축 문제해결만을 목표로 했다면 굳이 이란전쟁을 선택할 이유가 있었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결과적으로 이란에게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무기를 안겨주고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은 꼴이라는 것이다.
외교부 제1차관을 지낸 최종건 연세대학교 교수는 9일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이란전쟁 전 누구나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던 공공재였던 호르무즈 해협을 이제는 이란이 사실상 관리권을 획득하게 됐다"며 "이란의 높아진 협상력 때문에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짚었다.
최 교수는 "미국은 이란전쟁으로 동맹국들의 원성을 사고, 결과적으로 이란을 글로벌 파워로 만들어준 꼴이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