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사옥 이전을 넘어, 최근 자본시장의 최대 화두인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관점에서 자본 효율성에 초점을 맞춘 거대한 마스터플랜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는 셈이다.
하나금융지주는 최근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본점 소재지를 서울 중구 을지로에서 인천 서구 청라국제도시로 변경하는 정관 개정 안건을 통과시켰다. 바뀐 정관은 올해 9월30일부로 법적 효력이 발생한다.
2013년 인천시와 ‘하나드림타운’ 조성 협약을 체결하며 시작된 청라 프로젝트가 10여 년 만에 완성을 눈앞에 두게 된 것이다.
하나금융그룹의 '청라 시대'가 개막에 가까워지고 있다. ⓒ허프포스트코리아
◆ 10년의 마스터플랜 완성, IT 집적으로 CIR 낮춰 '이익 체력' 키운다
하나금융그룹의 청라 이전은 전 계열사의 일괄 이동이 아닌 ‘거점 분산 체제’를 핵심으로 한다. 영업 현장과 캐시카우 역할을 하는 조직은 서울 핵심지에 남겨두고, 청라에는 그룹의 컨트롤타워, 즉 HQ 위주로 두는 분업화 구조다.
하나금융그룹의 청라 프로젝트는 이미 상당 부분 진척돼 있다. 2017년 1단계로 전 계열사 IT 인프라를 통합 관리하는 ‘통합데이터센터’가 준공돼 IT 인력이 입주했고, 2019년에는 ‘하나글로벌캠퍼스’가 완공돼 글로벌 및 연수 인력이 집결했다. 현재 청라에 근무 중인 인력만 약 1800명에 이른다.
여기에 올해 상반기 지하 7층·지상 15층, 연면적 약 12만8천㎡ 규모의 그룹 헤드쿼터가 완공되면, 지주와 은행, 카드, 생명 등 주요 계열사 조직 일부가 순차적으로 합류해 최종 2천~3천 명의 인력이 추가 상주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하나금융지주는 최근 발간한 주주총회 안건 설명자료를 통해 '청라 시대'의 전략적 효과를 두고 △거점별 관계사 재배치를 통한 그룹 협업체계 강화 △IT·디지털 인프라와 인력 통합 구축을 통한 그룹 디지털 역량 강화 등을 꼽았다. 하나금융그룹은 청라(미래금융HQ)·여의도(자본시장거점)·을지로(은행중심)·강남(혁신금융) 등으로 관계사를 재배치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하나금융의 이 같은 거점 분산과 IT·백오피스 집적이 단순한 시너지를 넘어 영업이익경비율(CIR) 개선을 위한 전략적 포석이라고 보고 있다.
은행, 증권, 카드 등 13개 계열사의 IT 인프라와 백오피스 인력을 한 곳으로 묶어 시스템을 통합하면 서버와 네트워크 이중 투자를 줄일 수 있고 임대료, 관리비, 보안비용 등 고정비를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CIR은 금융사가 영업이익을 낼 때 인건비, 임대료 등 경비를 얼마나 썼는지 보여주는 핵심 효율성 지표다. 청라 이전은 단순한 '이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중복되던 IT 인프라와 백오피스 비용을 걷어내어 장기적 밸류업의 전제 조건인 ‘이익 체력’을 강화하는 전략인 셈이다.
2025년 기준 4대 금융지주의 연간 CIR을 살펴보면 KB금융 39.3%, 신한금융 41.5%, 하나금융 41.2%, 우리금융 45.7% 수준이다. 하나금융그룹이 청라 이전을 통한 IT 집적화로 CIR을 30%대 중후반까지 낮출 수 있을지가 밸류업의 핵심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 7조4천억 원 실탄 장전 완료, 거점 재배치로 밸류업 동력 확보
비용 절감을 통해 다져진 이익 체력은 주주환원 확대를 뒷받침할 든든한 기반이 된다.
하나금융지주는 이번 주주총회에서 본점 이전 안건과 함께 7조4천억 원 규모의 ‘자본준비금’을 이익잉여금으로 전입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를 통해 비과세 배당과 자사주 소각 여력을 대폭 키웠다.
하나금융지주의 2025년 연간 총현금배당은 1조1178억 원, 배당성향은 27.9%였다. 여기에 올해 상반기에도 약 4천억 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및 소각을 추진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최고재무책임자(CFO) 역시 “앞으로 주주환원의 중심축은 자사주 매입 쪽으로 더 실릴 것”이라고 공언했다.
청라 이전을 통해 중복되는 고정비를 덜어내는 것이 대규모 자본 전입과 자사주 매입, 배당 확대라는 주주환원 정책을 ‘실탄’ 부족 없이 지속해 나갈 수 있는 기초 체력이 되는 셈이다.
◆ 공항 품은 '산탄데르' 모델, ESG와 지역 상생으로 투심 자극
하나금융그룹이 그리는 청라 시대의 또 다른 벤치마크 대상은 스페인의 대표 금융기관인 ‘산탄데르 은행(Banco Santander)’이다.
북부 산탄데르시에 본점을 둔 산탄데르 은행은 시내와 공항이 10~15분 거리로 매우 가깝다. 금융, 도시, 항만, 공항이 촘촘히 엮인 글로벌 금융도시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인천경제자유구역의 ‘금융·무역 허브’ 비전 아래 조성된 청라국제도시 역시 인천국제공항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글로벌 고객 접근성을 극대화한 한국판 산탄데르 모델을 구현하기에 최적의 입지를 갖추고 있다.
지역 경제 활성화와 상생이라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측면의 매력도 하나금융그룹의 노림수 가운데 하나다.
청라 본사 이전으로 인한 생산 유발 효과는 약 9천억 원 규모로 추정된다. 인천시는 올해에만 200억 원 이상의 추가 세수를 기대하고 있다. 하나금융그룹이 납부하는 법인지방소득세 약 1천억 원 중 본사 이전 효과로 연간 70억~80억 원의 세수가 인천시로 귀속되며, 5천억 원이 투입된 본사 건축물 사용 승인에 따른 취득세 140억~150억 원도 인천시 곳간을 채우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지역 상생과 균형발전, 글로벌 교통 접근성 개선의 스토리는 외국인 투자자와 글로벌 ESG 펀드의 투자 심리를 자극할 강력한 포인트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 70km 물리적 거리, '파편화' 극복 위한 애자일 조직 시너지가 최종 관건
다만 거점 분산에 따른 파편화 리스크는 함영주 회장과 하나금융그룹 경영진이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로 꼽힌다.
금융권 일각에서 청라 헤드쿼터와 핵심 상권인 서울 도심 영업 거점 사이의 약 60~70km라는 물리적 거리가 자칫 부서 간 소통 병목이나 의사결정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CIR을 낮추기 위한 물리적 집적이 오히려 조직 내 벽을 쌓는 역설적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청라 시대 밸류업의 최종 성패는 영업 최전선인 서울의 니즈와 청라의 컨트롤타워가 시차 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원팀’의 스피드와 물리적 거리를 뛰어넘는 디지털 소통망 구축에 달려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수도권에서 거리가 멀어진다는 점에서 자칫 떨어질 수 있는 직원들의 사기를 관리하는 것도 함 회장의 과제 가운데 하나다.
하나금융그룹 역시 이를 인지하고 보완책 마련에 힘쓰고 있다. 청라로 출퇴근하는 직원들의 통근 거리 증가에 따른 피로도와 사기 저하를 막기 위해 주 4일제와 반일제를 결합한 ‘4.5일제 근무’를 우선 적용하는 방안 등이 대표적이다.
디지털 헤드쿼터에 모인 인력의 생산성을 높이고 유연한 근무 제도를 통해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것이다.
하나금융그룹 관계자는 "하나의 통합된 '디지털 회사'로서 기능하는 것이 청라 이전의 전략적 목표"라며 "청라 HQ는 그룹 미래 성장의 핵심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