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테헤란의 한 검문소에서 아버지와 함께 보초를 서던 11세 이란 소년이 목숨을 잃었다. 이란 전쟁이 길어질수록 아이들마저 전쟁에 희생되고 있다.
2026년 3월 15일 공습으로 파괴된 주택 근처에 한 소년이 서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31일(현지시간) BBC는 이란 매체 함샤흐리를 인용해, 알리레자 자파리가 아버지와 함께 검문소를 지키던 중 이스라엘군의 드론 공격을 받아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산하 민병대인 바시즈의 순찰 활동을 돕고 있었다. 어머니 사다프 몬파레드는 "검문소 인원이 4명뿐이어서 인력이 부족하다며 남편이 아들을 데리고 갔다"고 말했다. 검문소가 미군이나 이스라엘의 타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아들을 데려간 아빠의 부주의함도 있겠으나, 중요 군사시설이 아닌 '동네 검문소'마저 폭격 대상으로 삼는 전쟁의 잔인함이 새삼 드러난다.
전쟁이 길어진면서 이란에선 전쟁 동원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 테헤란에서 근무하는 이슬람혁명수비대 문화 담당관 라힘 나달리는 26일 이란 국영 매체에 "참여 의사를 밝히는 아이들이 많아 최소 연령을 12세로 낮췄다"고 밝혔다. 이슬람혁명수비대는 '이란을 위한 국토 수호 전투원(Homeland Defending Combatants for Iran)'이라는 이름으로 순찰, 검문소 운영, 물류 지원 등의 활동에 참여할 인원을 모집하고 있다.
국제법은 15세 미만 아동을 전쟁에 동원하는 것을 '전쟁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지난 30일 "아동의 군사적 징집 및 이용은 아동 인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라며 "15세 미만 아동의 군사적 이용은 자발성 여부와 관계없이 국제형사법상 처벌 대상"이라고 지적했다.
아이들은 왜 총을 드는가
아이들이 전쟁터로 내몰리는 배경에는 경제적 현실도 자리하고 있다.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은 식료품이나 생필품을 대가로 동원되기도 하고, 가족의 생존을 위해 군의 문을 두드리기도 한다. 빵을 위해 목숨을 걸고 총을 드는 셈이다.
부모를 잃은 아이들의 경우 선택지가 거의 없다. 식사와 거처를 제공하는 군이나 무장조직이 이들의 유일한 생존 수단이 되기도 한다. 아이들은 스스로 선택한 것처럼 보이지만 생존을 위한 강요된 선택이 되는 셈이다. 아이들은 명령에 비교적 쉽게 복종하고 성인보다 적은 식량을 소비한다는 이유로 전쟁 수행의 효율적인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특히 이란 사회에서는 종교의 영향으로 '순교'가 명예로운 희생으로 여겨지는 문화가 있어 아이들의 전쟁 동원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활용된다는 지적도 있다. 검문소에서 목숨을 잃은 11세 소년 역시 아버지를 따라 나설 당시 어머니에게 "이 전쟁에서 이기든지 순교자가 되든지 둘 중 하나"라며 "신께서 뜻하신다면 우리가 이기겠지만 나는 순교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러한 장면은 낯설지 않다. 빅토르 위고르의 소설 '레 미제라블'에 등장하는 거리의 10대 소년 가브로슈는 총알이 쏟아지는 바리케이드 위를 오가며 탄약을 나르다 목숨을 잃는다. 19세기 문학 속 비극으로 여겨졌던 소년의 모습은 오늘날 전쟁터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이란은 과거 전쟁에서 소년병을 동원한 전력이 있다. 지난 30일 휴먼라이츠워치에 따르면, 이슬람혁명수비대는 시리아 내전 당시 이란에 거주하던 아프가니스탄 이민자 아동들을 모집해 아사드 정부를 지원하는 전투에 투입한 바 있다. 당시 14세 소년들이 전투에서 사망한 사례도 확인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시기에는 수십만 명의 아동이 전쟁에 동원됐고, 이 가운데 수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소년병의 비극은 특정 국가만의 문제로 한정되지는 않는다. 예멘의 후티 반군, 콩고민주공화국의 무장단체, 수단과 미얀마 내전 등 세계 곳곳에서 아이들은 전투원, 첩보원, 자살폭탄 테러 수행자, 군수 지원 인력으로 이용되고 있다.
매년 2월12일, 국제사회는 아이들의 손에 묻은 피를 닦아내자며 '붉은 손의 날'을 기린다. 그러나 2026년에도 전쟁 중인 나라들에서는 여전히 아이들의 손에 총이 쥐어지고 있다.
전쟁범죄는 사라지지 않는다
2026년 2월 28일 미국-이스라엘 공습으로 이란 테헤란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AFP/연합뉴스
폭격이 이어지는 전쟁터에서 국제법은 한낱 종이 방패처럼 무력해 보인다. 당장 전쟁의 폭력을 멈추게 하지도, 눈앞의 아이를 구해내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범죄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 사례는 이미 역사 속에 남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나치 전범들은 추적과 기소의 대상이 되고 있다. 유고슬라비아 전쟁 당시 약 8천 명 학살에 책임이 있는 라트코 믈라디치 역시 사건 발생 26년 만에 종신형이 확정됐다. 전쟁범죄는 시간이 흐른다고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물론 현실의 벽은 높다. 국제형사재판소를 통한 처벌은 강대국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가로막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럼에도 전쟁범죄의 책임을 묻기 위한 시도는 국제사회에서 꾸준히 이어져왔다. 아동의 전쟁 동원 문제 역시 향후 책임 논의에서 중요한 쟁점이 될 수 있다.
전쟁은 도미노와 같다. 한 번 시작되면 가장 약한 것부터 차례로 무너지고 그 끝에는 아이들이 서 있다. 전쟁을 촉발한 외부 세력의 책임과 그 속에서 아동까지 동원한 내부의 선택은 별개로 평가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어느 쪽도 아이들의 희생을 정당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