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근 발표한 검찰개혁 입법예고안을 두고 더불어민주당 지지층 내부에 거센 후폭풍이 일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SNS를 통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정교한 개혁”을 강조하며 진화에 나섰지만, 정부안에 실망한 지지층들과 검찰개혁 강경파들은 정부안을 ‘검찰개혁의 후퇴’로 규정하며 거센 반발을 이어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상생을 실천하는 기업인과의 대화'에서 참석자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이 대통령의 직접적인 메시지조차 통하지 않는 이례적인 상황의 배경은 무엇일까.
◆ 이 대통령을 믿자 vs 이재명에게 검찰을 용서할 자격 주지 않았다
13일 정치권 분석을 종합하면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합당 불발 이후 민주당 지지층은 이 대통령의 중도·실용적 행보를 지지하는 이른바 ‘뉴이재명’ 세력과 기존 주류 지지층으로 갈라지는 모양새가 연출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이 대통령이 직접 정부의 검찰개혁안이 자신의 뜻임을 밝혔음에도 추미애, 김용민 민주당 의원과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 등 검찰개혁 강경파들이 자칫 대통령과 맞서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음에도 ‘대폭 수정’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는 정부의 이번 검찰개혁안에 대한 기존 민주당 지지층의 실망감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정부의 검찰개혁안에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검찰에게 수사권을 부여하는 공소청법 개정에 관한 청원’은 9일부터 국회 전자 청원 동의 기간에 들어가 이날 오후 2시 기준 2만3750명이 동의했다. 국민 동의 청원은 30일 동안 국민 5만 명 동의를 받으면 국회의원 발의안과 같은 효력을 지닌 ‘사실상 의안’이 된다.
반면 이번 정부 검찰개혁안을 옹호하는 지지층은 국회 법사위 강경파 의원들과 김어준씨 등 친여 성향의 유튜버들의 검찰개혁에 대한 반발을 “대통령 흔들기”라고 비판한다. 강경파들은 이를 두고 “이재명 정부가 검찰 권력과 타협하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은 이재명에게 검찰을 용서할 자격을 준 적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민주당 지도부는 지지층이 이처럼 분열 양상을 보이자 깊은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1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통령의 (검찰)개혁 철학은 한결같고 강하다”고 말하며 지지층 달래기에 나섰지만 현장의 온도 차는 여전하다.
김한규 원내정책수석부대표도 이날 정책조정회의에서 “당원과 지지자, 국민들께서도 우리 손으로 선출한 대통령을 믿고 국민을 위해 혼신을 다해 일하시는 대통령과 함께해주시길 부탁드다”라며 “시간이 걸리고 조금 마뜩지 않더라도 서로 믿고 격려하며 든든하게 함께 가주시면 고맙겠다”고 호소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9년 5월1일 새벽 검찰 조사를 받고 난 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 검찰개혁의 역사적 맥락, 이 대통령의 ‘외과 수술론’이 안 통하는 이유
민주당 지지층과 검찰개혁 강경파들이 이토록 완강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검찰개혁이 단순한 정책 과제 이상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민주당 지지층에게 검찰개혁의 시발점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서거와 맞닿아 있다. 노 전 대통령을 비롯해 이후 민주당 주요 정치인들에 대해 이어진 검찰의 표적 수사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집권 과정을 거치면서 이들에게 검찰은 ‘개조’의 대상이 아닌 ‘청산’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이재명 대통령이 제시한 ‘부작용 최소화’나 ‘외과 수술적 개혁’이라는 실용적 접근법은 강경 지지층에게 ‘타협’ 혹은 ‘굴복’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이재명 정부가 끝난 이후 정치검찰이 다시 부활할 수 있다고 강하게 우려한다.
유시민 작가는 지난 2월 MBC 손석희의 질문들에서 “검찰개혁은 어느 정권도 다른 검찰을 만들지 못하게 하기 위해 필요한 개혁”이라며 “만약 마음 속에 검찰이란 칼을 잘 벼려가지고 우리 칼로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민심에 대한 배반이고 역사에 대한 배반이다”라고 말했다.
유 작가는 정부안을 두고 ‘검찰개혁을 하지 않겠다는 안’으로 규정한 뒤 “이 대통령과 김민석 국무총리, 정성호 법무부 장관,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검찰개혁이 어디서, 왜 출발했는지부터 원칙으로 돌아가 생각해 봐야된다”고 강조했다.
◆ 팬덤정치와 민주당 내부 주도권 싸움
더욱 강력해진 팬덤 정치는 검찰개혁 국면에서 발생한 지지층 사이의 갈등이 쉽사리 가라앉지 못하는 또 하나의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딴지일보’, ‘재명이네 마을’ 등 강력한 팬덤 기반 커뮤니티는 자신들이 이재명 정부를 탄생시켰다는 강한 자부심을 공유한다.
이들은 과거처럼 대통령이나 민주당의 지침을 수동적으로 따르는 ‘동원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이 대통령을 ‘올바른 길로 견인해야 한다’는 주체 의식을 갖고 있다. 즉 필요하다면 대통령의 결정에도 반기를 드는 것을 적극적인 지지 활동의 일환으로 여긴다.
특히 커뮤니티 별로 검찰개혁에 대한 입장이 명확히 구분되고 이들이 서로를 향한 비판을 쏟아내면서 지지층 내 갈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갈등을 민주당 내부의 헤게모니 싸움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정청래 대표 선출 이후 가시화된 선명성 경쟁이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논의, 공소취소모임 논란을 거쳐 이번 검찰개혁 입법예고안 논란을 통해 정점에 달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당 관계자는 “검찰개혁이 당내 역학구도나 다음 전당대회와 직접적 연관은 없는데 여러 흐름으로 당내에서 정치화된 것 같다”며 “지지자들의 감정이 격앙된 상태에서 특정한 입장을 내면 이른바 ‘좌표’를 찍힐 수 있어 지금 검찰개혁 정부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옹호하기도, 반대하기도 힘든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유튜브 델리민주 갈무리
◆ ‘실용’과 ‘원칙’ 사이의 고차방정식
정부안에 대한 지지층의 반발이 사그라지지 않으면서 향후 국회 입법 과정에서도 진통이 예상된다. 강경파 지지층의 요구를 외면할 경우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전통적 지지층인 ‘집토끼’들의 실망감이 극에 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재명 대통령의 검찰개혁에 대한 ‘실용주의’적 접근이 기존 민주당 지지층의 ‘정치검찰 청산’ 열망을 어느 정도로 흡수하느냐가 향후 민주당 지지층 동향에 크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물밑 조율’과 ‘정부안 수정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도 지지층 정서를 관리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11일 유튜브 박시영TV에서 “민감하고 갈등적 사안을 진짜 갈등이 폭발되는 형태로 다뤄지기 시작하면 나중에 힘을 모으기 어렵게 된다”며 “(검찰개혁에 대해) 내부 논의를 더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청래 대표도 이날 의원총회 모두발언에서 “검찰 개혁은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의 깃발이고 상징”이라며 “저와 원내대표, 당 지도부에서 이 문제를 국민적 열망이 실망으로 가지 않도록, 또 검찰 개혁의 기조가 훼손되지 않도록 다각도로 노력을 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