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카드업계는 기존 카드망에 블록체인을 얹어 ‘통행세(수수료)’를 챙기면서 고객 접점도 유지하는 실리적 전략을 통해 스테이블코인 시대에 대응할 준비를 하고 있다.
◆ ‘중개’ 없는 직거래 시대가 와도 카드사들은 '통행세' 받을 수 있을까
카드업계가 스테이블코인을 두려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중개 기관 패싱’ 가능성 때문이다.
카드사는 판매자와 구매자의 사이에 서서 거래를 중개해주고, 거래의 신용을 보증해주면서 ‘통행세’를 받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스테이블코인이 상용화되면 구매자와 판매자가 직접 가치를 교환하는 P2P(peer to peer) 결제가 가능해지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카드사와 같은 중개 기관이 설 자리가 사라진다.
특히 신용 공여가 필요 없는 '체크카드(직불결제)' 시장부터 카드사의 입지가 현재보다 축소될 수 있다는 인식이 업계 전반에 깔려 있다. 스테이블코인 시대가 찾아오더라도 신용을 제공하는 주체로서 카드사의 역할이 흔들리지는 않겠지만, 카드사 사업모델의 다른 한 축이 위협받게 된다는 것이다.
카드사들이 단순한 '중개자'에 머물지 않고, 스테이블코인이 흐르는 길목을 지키는 '인프라 사업자'로의 변신을 서두르고 있는 이유다.
글로벌 결제 공룡인 비자(Visa)와 마스터카드(Mastercard)가 스테이블코인 정산 및 토큰화 플랫폼에 집중하며 ‘가상자산 시대의 결제 허브’를 노리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비자는 USDC(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와 연동된 정산 시범 프로그램을 미국 일부 은행들과 협력해 운영하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 외국 언론에 따르면 현재 비자의 스테이블코인 정산 규모는 연간 45억 달러(약 6조6452억 원) 수준이며 매달 매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마스터카드 역시 핀테크 기업들과 협력해 사용자는 카드로 결제하고 백엔드에서는 스테이블코인으로 청산되는 상품을 제공하고 있다.
다만 이와 관련해 실제로 스테이블코인 시대가 찾아온다면 단순히 결제 경험을 유지하는 것 만으로 통행세를 받기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블록체인업계의 한 관계자는 "카드사가 거래의 중간에 서있다면 거래 단계 축소를 통한 수수료 제거라는 스테이블코인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무용지물이 된다"고 말했다.
◆ 특허부터 실증사업까지, KB·하나·BC카드 구체적 움직임 눈에 띈다
국내 카드사들은 각각의 사업 전략에 맞춰 특허 선점, 기술 제휴, 실증사업 등 다양한 방식으로 스테이블코인 시대를 대비하고 있다.
KB국민카드는 특허를 통한 기술 선점에 공을 들이고 있다.
KB국민카드는 최근 기존 카드 결제 인프라에 블록체인 전자지갑 주소를 연동하는 ‘하이브리드 결제’ 특허를 출원했다. 고객의 신용카드에 지갑 주소를 연동해 결제 시 스테이블코인 잔액을 우선 차감하고, 부족분만 자동으로 신용카드로 결제되는 방식이다.
고객 입장에서는 카드를 새로 발급받을 필요 없이 기존의 결제 경험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스테이블코인 결제를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나카드는 스테이블코인과 관련해 국내 카드사들 가운데 가장 먼저 구체적 제휴 움직임을 보인 기업이다. 2025년 10월 블록체인 인프라 기업 EQBR과 전략적 제휴를 체결하면서다.
EQBR과 하나카드는 EQBR의 블록체인 인프라와 스테이블코인 지갑, 하나카드의 서비스를 연동해 전통 금융 서비스에 스테이블코인 결제를 접목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단순 결제를 넘어 블록체인 기반의 금융 신사업, 실생활에 쓰일 수 있는 디지털자산 서비스를 함께 발굴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BC카드의 방점은 ‘글로벌’에 찍혀있다. BC카드는 미국의 대형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와 업무협약을 맺고 USDC를 보유한 고객이 국내 가맹점에서 결제할 수 있는 실증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BC카드와 코인베이스의 협력은 코인베이스의 ‘베이스 체인’ 기반 스테이블코인 지갑(월렛)에 BC카드의 QR 결제 솔루션을 연동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BC카드는 이 협력을 통해 외화 스테이블코인의 국내 사용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을 넘어 해외 관광, 쇼핑 수요까지 흡수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BC카드는 2025년 9월 스테이블코인 결제 처리 기술 특허를 출원하며 국내 카드사 중 가장 먼저 스테이블코인 관련 구체적 움직임(상표권 출원 제외)을 보인 회사이기도 하다.
◆ 따로 또 같이, 9개 카드회사 뭉쳐 스테이블코인 '연합 전선'도 만든다
카드사들은 업계 차원의 공동 대응을 통해 ‘연합 전선’도 구축하고 있다. 여신금융협회를 중심으로 구성된 ‘스테이블코인 도입 TF’가 그 구심점이다.
카드사들은 이미 2025년 7월 국내 9개 카드사(신한·삼성·KB국민·현대·롯데·우리·하나·BC·NH농협)가 참여한 1차 TF를 통해 시장 동향과 규제 건의 방향을 점검했으며 올해 1월부터는 ‘2차 TF’를 만들고 기술 표준, 가맹점 정산 속도, 단말기 호환성 등 실제 결제 인프라 설계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상표권 출원 역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2025년 6월 카드사 최초로 스테이블코인 관련 상표권을 출원한 신한카드를 시작으로 지난해 9월 NH농협카드까지, 삼성카드를 제외한 모든 카드사가 스테이블코인 관련 상표권을 출원했다. 가장 많은 수의 상표권을 출원한 곳은 현대카드로, 출원 건수는 모두 51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