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발표한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안을 두고 검찰개혁의 본질이 훼손됐다는 비판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도 "무엇을 위한 개혁이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검찰개혁추진단에 참여했던 일부 자문위원들까지 반발하며 사퇴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이 8일 국회 소통관에서 바람직한 검찰개혁 추진을 위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 지도부는 중수청 설치안을 둘러싼 당정 갈등이 발생할 우려에 '입단속'에 나섰지만 이재명 정부의 중요 과제 가운데 하나인 검찰개혁을 위한 막판 진통이 예상된다.
13일 정치권 움직임을 종합하면 정부 검찰개혁추진단이 전날인 12일 입법예고한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 법안을 두고 ‘수사·기소 분리’라는 검찰개혁 방향과는 동떨어진 내용이 다수 포함됐다며 여권 내부로부터 거센 반발이 나오고 있다.
특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여당 간사인 김용민 민주당 의원은 검찰개혁추진단의 입법예고안을 ‘검찰개혁을 가로막는 최선의 방법’이라 규정하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정부의 중수청과 공소청 설치안 내용을 살펴보면 수사권과 기소권의 엄격한 분리가 이뤄지지 못할 뿐 아니라 기관의 명칭만 바뀔 뿐 검찰 권력이 그대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13일 유튜브 방송 겸손은 힘들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검찰개혁추진단에서 수사 절차상 매뉴얼을 꼼꼼히 만들어 수사가 지연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낼 줄 알았는데 수사·기소 분리 정신을 흔드는 법안을 냈다”며 “검사물 20년 먹은 사람 작품이라는 게 느껴질 정도로 고리타분하다. 검찰이 경찰을 통제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깔려 있다”고 말했다.
판사출신인 김승원 민주당 의원도 같은 방송에서 “검찰에 권한이 집중되면서 폐해가 많아 국민의 정당한 선택권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수사조작이 있었고 이걸 바꾸기 위해 수사와 기소를 분리한 것인데 지금은 (검찰) 특수부를 둔 꼴이라 개악이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김용민 민주당 의원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의원들과 함께 13일 바람직한 검찰개혁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한다. 정부의 개혁안이 발표된 바로 다음날 개혁안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기 위한 내용의 토론회를 공개적으로 열어 강한 반대 의사를 나타낸 것이다.
가장 큰 논란거리는 중수청 조직의 이원화다. 정부의 중수청 입법예고안에 따르면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수사사법관'과 비법률가 출신의 '전문수사관'으로 나눠 조직을 운영한다는 건데 '검사와 검찰수사관'으로 이원화된 기존 현재 검찰 조직과 같은 구조란 평가가 적지 않다.
정부는 수사능력을 갖춘 현직 검사들의 중수청 전직을 유도함으로써 검찰개혁에 따른 수사기관의 역량이 떨어지는 걸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12일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검찰개혁의 결과로 국민이 불편하지 않게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1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민주당 내부에서는 무소불위 권한으로 수사와 기소권을 휘두르던 검찰의 힘을 빼려는 게 검찰개혁의 대원칙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검사들의 중수청 흡수나 이원화 구조는 선후가 뒤바뀐 인식이란 비판이 나온다.
5선 중진인 이인영 민주당 의원은 12일 페이스북에서 “국민 요구는 특수부 검사들의 잘못된 인지수사를 막아 정치 검찰의 행태를 끝내자는 것인데 중수청의 '수사 사법관'이 '전문 수사관'의 보좌를 받아 수사권을 행사한다는 건 기존 구조와 인적 구성을 답습하는 것”이라며 “똑같은 사람을 데려다 똑같은 구조로 중수청을 만들면 '검찰 특수부 시즌2'가 될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검사의 보완수사권을 명시한 형사소송법 개정도 주요 쟁점이다.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보완수사권 조항을 개정하지 않고 정부가 발표한 공소청법안 발효되면 공소청 검사는 보완수사권을 갖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정부는 보완수사권과 관련된 사항은 향후 형사소송법 개정에서 다루자는 입장이지만 민주당 내부에서는 논의를 미루지 말고 보완수사권 폐지를 분명하게 못박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최고위원인 강득구 의원은 이날 KBS라디오 전격시사에서 “보완수사권을 계속 존치한다면 언제든지 검찰이 정치 검찰로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보완수사권을 폐지하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국회 법사위원인 박지원 의원도 전날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가 끝난 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을 향해 “보완수사권 존치는 꿈도 꾸지 말라”고 말했다.
민주당뿐 아니라 조국혁신당, 진보당은 물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도 정부의 중수청·공소청 입법예고안에 강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심지어 검찰개혁추진단에서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던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교 교수는 정부안에 반발하며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당내 논란이 거세지자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의원들에게 중수청 설치에 관한 의견을 내지 말라는 자제령을 내렸고, 한병도 신임 원내대표는 중수청과 공소청 설치안을 둘러싼 당정 사이에 이견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검찰개혁의 상징적 조치로 여겨졌던 중수청 설치가 내부 반발이라는 암초에 부딪히면서 향후 입법 과정에서 정부와 여당 사이의 갈등은 불가피할 것이란 시선이 나온다.
결국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입장을 밝히는 상황에 이르렀다. 청와대 대변인실은 이날 언론 공지를 통해 “이재명 대통령은 검찰개혁 및 보완수사권과 관련해 당에서 충분한 논의와 숙의가 이뤄지고 정부는 그 의견을 수렴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