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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씨네큐브는 각종 사법 리스크로 얼룩진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의 삶에서 찾아볼 수 있는 흥미로운 구석이다. 사진은 2일 서울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열린 '씨네큐브 25주년 기념식'에서 장건재(왼쪽), 윤가은(가운데), 이종필(오른쪽) 감독이 건배 제의를 하는 모습. ⓒ뉴스1
광화문 씨네큐브는 각종 사법 리스크로 얼룩진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의 삶에서 찾아볼 수 있는 흥미로운 구석이다. 사진은 2일 서울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열린 '씨네큐브 25주년 기념식'에서 장건재(왼쪽), 윤가은(가운데), 이종필(오른쪽) 감독이 건배 제의를 하는 모습. ⓒ뉴스1

[씨저널] 굳게 다문 입과 선글라스, 파란 챙모자로 가린 얼굴.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대중과 처음 대면하던 모습이다. 

그는 2004년 회장 취임 이후 공식석상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없어 ‘은둔의 경영자’로 불렸다. 그런 그의 얼굴이 세상에 처음 대대적으로 알려진 것은 2010년 검찰이 편법 상속·증여 및 비자금 조성 혐의로 압수수색을 펼친 때였다.

압수수색 소식이 전해지자 네팔 트래킹 중이던 이 전 회장은 급히 귀국했다. 이어폰을 끼고 회색 머플러를 칭칭 감은 채 카메라 플래시를 뚫고 뒷좌석에 몸을 묻는 모습이 생중계됐다.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오너 리스크의 서막이다.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복역을 마친 뒤 2023년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되기까지 ‘골프 로비’ ‘황제 보석’ ‘김치·와인 강매 의혹’ 등 숱한 논란을 끌고 다녔다.

올해 이 전 회장이 횡령과 배임으로 고발당한 규모만 3천억 원이다. 황제 보석 논란은 최근 ‘이호진 방지법’ 입법 요구로도 이어졌다. 

◆ “예술영화관 만들고 싶다” 한마디로 탄생해 국내 최고령 예술영화관 되기까지

광화문 흥국생명 빌딩은 각종 사법 리스크로 얼룩진 그의 삶에서 찾아볼 수 있는 흥미로운 구석이다.

빌딩 설계 당시 흥국생명 상무였던 이 전 회장은 1600억 원짜리 프로젝트였던 빌딩 공사를 맡으며 지하에 예술영화관을 꼭 만들고 싶어 했다. 강당이나 미술관으로 지으려고 했던 원래의 방향을 “예술영화관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며 돌려세웠던 일화는 유명하다. 

그렇게 탄생한 지하 2층 씨네큐브는 이호진 전 회장의 숨겨진 면모를 드러내고 있는 공간이다. 영화산업과 관계없는 기업인이 예술영화관을 세운 국내 유일한 사례다. 

씨네큐브는 2000년 흥국생명 빌딩 준공과 함께 개관해 아직까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예술영화관으로 살아남았다. 12월 벌써 25주년을 맞는다. 

이호진 전 회장은 씨네큐브의 첫 운영을 영화사 백두대간에 일임했다. 2015년까지 영화관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5년간 1억5천만 원씩 지원한다는 조건도 함께 제시했다. 

개관작 <포르노그래픽 어페어>(1999)로 영사기를 처음 돌리기 시작한 씨네큐브는 국내 예술영화관의 상징과 같은 공간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계약기간 6년을 남겨둔 2009년 이호진 전 회장은 갑작스럽게 씨네큐브의 운영 주체를 백두대간에서 계열사 티캐스트로 바꾼다. 

당시 폐관 소문이 나돌 정도로 영화팬들은 씨네큐브의 변질을 우려했지만 티캐스트는 아직까지 별다른 잡음 없이 예술영화관의 정체성을 지켜나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씨네큐브의 누적 관객 수는 약 430만 명, 누적 상영 편수는 약 2500편으로 집계됐다. 역대 최다 관객(약 3만9천 명)을 동원한 영화는 2012년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아무르>로 이 기록은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박지예 티캐스트 씨네큐브 팀장은 영화관의 수익적 측면에 대해 “팬데믹 전까지는 적자가 난 적이 없었는데 팬데믹 이후로 적자로 돌아섰다”면서도 “태광그룹이 사회공헌의 목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 예술영화관이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면이 있기 때문에 수익에 치중해서 영화관 운영을 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극장 설비에 대해서는 자부심을 드러냈다. 박 팀장은 “스크린과 음향 설비가 상당히 좋은 편”이라며 “내년에는 설비를 더 업그레이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예술을 동경했으나 얼떨결에 경영자의 길로

이호진 전 회장은 예술에 특히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광화문 랜드마크가 된 조형물 ‘해머링 맨’은 이 전 회장이 직접 작가 조너선 보로프스키에게 의뢰해 설치한 것이다.

미술관과 다름없는 흥국생명 빌딩 로비도 이 전 회장의 작품이다. 정문과 후문 양쪽 바닥에 새겨진 너비 11m의 거대 바코드는 건물 초석을 대신한다. 

하지만 그의 이력 가운데 예술과 연관된 것으로 알려진 것은 없다. 

1962년 부산에서 이임용 태광산업 창업주의 3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나 서울 대원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코넬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MBA과정을 마쳤고 뉴욕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7년 아버지가 타계한 뒤 6년 만에 2003년 큰형 이식진 태광산업 부회장이 지병으로 사망하면서 뜻하지 않게 경영권을 이어받은 막내 아들이다. 둘째 형은 1994년 이미 사고로 사망했다.

이 전 회장은 7일 세화예술문화재단 제5대 이사장으로 선임됐다. 초대 이사장 이선애 전 태광그룹 상무는 그의 모친이다. 김주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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