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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연대 대표였던 고 성재기씨를 존경했어요. 나는 ‘의식 있는 아이’니까 ‘안티 페미’(페미니즘)가 된 거라고 생각했어요.”

‘남성 페미니스트’ 변현준(22)씨는 중학생 시절까지만 해도 반페미니스트였다. ‘왜 남자만 군대를 가야하는가’ 의문을 품었고, 생각할수록 ‘남성이 차별받고 있다’는 확신이 생겨서다. ‘군 가산점제 부활’을 외치고, 여성 출입만 허용한 제천여성도서관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던 성씨는 변씨에게 ‘억울한’ 남성들의 “대변자”이자 “남성 인권 운동가”였다. 그 시절, 변씨는 좋아하던 여자친구에게까지 “남성이 차별받고 있다”고 거침없이 얘기하곤 했다.

이런 생각에 균열이 생긴 건, 고등학교 때 학교 선배인 대학생 형으로부터 페미니즘에 대한 얘기를 듣고 나서다. 당시 한국 사회는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 ‘미투’ 논쟁 등 굵직굵직한 사건 등을 통과하며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로 달아오르고 있었다. “달라지고 있는 시대 흐름에 올라탄다는 마음으로 페미니즘을 들여다보게 된 거죠.”

변씨는 ‘나쁜 페미니스트’, ‘82년생 김지영’ 등 페미니즘 관련 책을 닥치는대로 읽었다. 남동생에 밀려 언제나 후순위인 딸, 버스에서 성추행을 겪는 여학생, 출산 이후 경력단절을 겪게되는 직장 여성까지 “특수한 사례인줄만 알았던 그런 일들이 여성들에겐 아주 일반적이라는 걸 (책을 통해) 알게 됐어요.” 변씨는 그 이후 ‘왜 페미니즘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자연스럽게 대답할 수 있게 됐다.

남성연대 대표 故 성재기 존경하던 남자가 페미니스트가 된 계기: 모든 여자들이 일상에서 겪는 문제를 알게 된 이후부터다
지난 1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이한열 기념관’에 있는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사무실에서 페미니스트 활동가 김연웅씨(왼쪽부터), 김태환씨, 이한씨가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했지만, 여전히 ‘입페미(말로만 페미니스트) 수준’이었다는 생각에 머리가 ‘댕’ 해질 때도 있었다. “저보다 한 학년 아래 여자 후배가 자습실에서 남학생들이 자기를 두고 ‘쟤 페미래’, ‘쟤 메갈이야’ (비난)하는 소리를 들었대요. 황당해서 그 얘기를 여자 동기한테 전했더니 그 친구가 ‘모든 여성들은 (그런 말을) 감내하고 산다’며 ‘일일이 반응하는 순간 살 수 없어진다’라고 하더라고요. (평소에) 여성들이 느끼는 무게감이 얼마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거죠.”

변씨 뿐만 아니라 최근 한겨레가 만난 ‘남성 페미니스트들’은 “주변 여성들 한명, 한명의 얘기를 듣다보면, 와닿지 않던 것들(여성 차별·혐오)이 ‘진짜 있는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한(32)씨는 2016년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때만해도 분노해 거리로 몰려나온 여성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정신질환자가 저지른 (우발적) 범죄에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는 게 아니냐고 여겼기 때문”이다. 여자 친구들은 그런 그에게 ‘불법촬영 카메라가 두려워 공중화장실을 갈 때도 마스크를 쓰고 가고 벽에 있는 구멍을 휴지로 틀어막는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나는 늦은 밤에 택시를 타면 곧장 잠이 들지만, 여자 친구들은 서로 택시 번호를 찍어 공유하더라고요. ‘같은 시대에서 다른 삶을 사는구나’ 싶었어요.”

이들은 페미니즘을 알고 난 이후, 여성혐오가 얼마나 일상 도처에 널려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고 입을 모았다. 김연웅(28)씨는 “여자 친구 계정으로 게임을 한 적이 있는데, (계정 이름만 보고) 저한테 자기 성기 사진이나 성희롱성 메시지, 심지어는 성매매 제안까지 보내는 사람들이 있었다”며 “처음 겪는 일이라 놀랐는데 친구는 ‘원래 그래’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남자들 사이에선 청소년 때부터 ‘더 웃겨야 한다’는 강박 속에 센 척하며 누군가를 놀리고 비하하는 분위기가 있거든요. ‘이래도 되나’ 싶지만 따돌림 당할 것 같아, 그냥 같이 여성이나 성소수자를 비하하며 웃고 떠드는 거죠.” 김씨는 여기 더해 “여성이 적은 군에서 2년 생활을 하다보면 평소에 안 그랬던 사람도 여성 혐오가 묻어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씨 역시 “남성들 사이에 퍼져 있는 혐오 문화의 핵심은 ‘내가 상대방보다 위에 서야 한다’는 위계질서 같다”며 “이런 질서 속에서 여성 등에 대한 (막말, 성희롱 등) 폭력이 이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변씨는 “주로 남성들이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하다보면, 여성 혐오 문화에 자연스럽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예로 그는 프로야구 엘지(LG) 트윈스의 팬이라 종종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 들어가는데 “여성 팬들을 ‘쥐순이(엘지의 ‘G’에서 따온 것)’라고 낮잡아 부르는 표현을 자주 본다”고 말했다. 야구를 제대로 모르는 여성팬들이 잘 생긴 선수를 따라다니며 물을 흐린다는 식으로 비난한다는 것이다. 그는 댓글로 논쟁이 붙으면 대뜸 “너 ‘피싸개’(월경을 하는 여성을 비하하는 말)지?”라는 비아냥이 따라 붙는다고도 전했다.

김태환(29)씨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중학교 시절엔 누구나 듣기 싫은 소리라도 하면 ‘니애미’ 같은 말을 유행어처럼 사용했다”며 “나도 가해자, 방관자였고, 피해자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중학생 시절,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맞을 때 주로 ‘남자답지 못하다’, ‘남자 xx가 자존심도 없냐’는 말을 들었어요. 이 때문에 청소년기 내내 나 스스로를 싫어했고요.” 그는 “페미니즘을 알고 난 뒤로 남자답지 못한 게 잘못된 게 아니라 (이런 규정을 짓는) 체계가 잘못이란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에게 페미니즘은 “존재를 그 자체로 인정하는 평등의 언어”였다. “남성다워야 한다’는 짐을 내려놓고 난 이후 너무 편안해졌어요. 페미니즘은 남녀를 떠나 인간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네 사람은 이런 ‘장점’을 누리기 위해서라도, 페미니즘은 남성에게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나를 가두는 나쁜 생각들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하고, 타인들도 자유롭게 하는 생각이자 도구”(김연웅)이자 “상대방과 수평적인 관계에서 깊은 인연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한)이 페미니즘이라고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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