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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문제와 국정교과서가 만날 때
ⓒ연합뉴스

북한 핵실험이 퍼뜨린 정치적 가스와 먼지 속에서 정부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조용하게, 하지만 집요하게 위안부 졸속 합의 후속 행동을 차근차근 밟고 있습니다.

여성가족부가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업무를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위탁하기로 하고 지난달 23일 협약서 문안까지 만들었지만 닷새 뒤 졸속 합의가 나오자 슬그머니 취소해버렸습니다. 이유는 뻔합니다. 졸속 합의 내용의 하나인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비판하는 것을 자제한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외교부가 홀로 사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개별 접촉해 졸속 합의 내용을 설명했습니다. 외교부 직원 5명이 어제 서울 등촌동의 한 아파트에 홀로 사는 할머니의 집을 방문해 지원재단 설립 방안 등을 설명하고 졸속 합의를 지지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이 또한 이유는 뻔합니다. 갈라치기 위해서입니다. 생존 위안부 피해 할머니 46명 중 쉼터에서 단체생활을 하지 않고 홀로 사는 할머니가 20여명인데 이들을 갈라치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분열을 끌어낼 수 있고, 졸속 합의에 대한 반발도 물타기 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참 나쁜 정부입니다. 흔히 말하는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시도까지 한다는 점에서 정말 나쁜 정부입니다. 유·불리를 떠나 역사에 기록을 남기는 일은 왕조시절의 폭군조차 거부하지 못했는데 이마저 감행하려 든다는 점에서 참으로 나쁜 정부입니다.

정부에 대한 이런 도덕적 평가와는 별개로 정부의 음험한 기도가 먹힐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의제 설정의 주도권은 정부가 쥐고 있고, 확성·전파의 주도권은 정부에 견마지로를 다 하는 방송이 쥐고 있습니다. 위안부 의제를 묻어버리고 비틀어버리자면 못할 일도 아닙니다. 앞서 추린 정부의 두 가지 움직임도 이런 맥락에서 진행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사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습니다. 계획은 틀어지기 일쑤고 싱크홀은 예측불가 지역에서 나타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부가 저지른 또 하나의 흉계가 '위안부 지우기' 또는 '위안부 물타기' 기도를 교란할지 모릅니다. 바로 역사 교과서 국정화입니다.

정부 책임 하에 집필되는 역사 교과서에서 위안부 문제는 어떻게 기술될까요? 일제의 만행이 상세히 서술되고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단정적으로 기술될까요? 마땅히 그래야 하는데 정말 그럴지는 미지수입니다. 국제사회에서의 비난과 비판을 자제할 뿐만 아니라 국내에 있는 소녀상조차 철거·이전하려는 판이기에 국민의 어이를 상실케 하는 상황이 현실화 될 가능성을 완전 배제하기는 힘듭니다.

지금 현재 조용하게, 하지만 집요하게 진행되는 졸속 합의 후속 조치는 의제 전환을 통해 국민의 관심을 분산시켰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국정 역사교과서 내용 초안이 공개되는 순간 상황은 달라질 겁니다. 정말 만에 하나라도 위안부 문제를 조금이라도 흐리는 내용이 그 초안에 포함된다면 전국적이고 국민적인 의제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의제에 대해 국민적 공분은 2단 추진력으로 분출될 겁니다. 위안부 졸속 합의에 대한 분노와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반발이 상승 작용을 일으켜 제곱 이상의 폭발력을 보여줄 겁니다. 정부가 자기 무덤을 파는 꼴이 연출되는 것입니다.

정말 궁금합니다. 정부는 국정 역사교과서에 위안부 문제를 담을까요? 담는다면 어떤 수위로 기술할까요? '위안부가 일본군을 따라다녔다'고 썼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교학사 교과서 비슷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물어볼 필요도 없습니다. 위안부 졸속 합의는 분노의 여론의 휩쓸려버리겠죠.

정부의 '조용한 속도전'을 예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위안부 졸속 합의와 국정 역사교과서가 만나 스파크를 내는 걸 방지하기 위해 위안부 졸속 합의를 정말 '불가역적인' 상황으로 조기에 굳혀버리려 시도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물론 조용하게요.

곰팡이는 사람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피는 법입니다. 국민적 경계대상이 바로 이것입니다.

* 이 글은 <시사통 김종배입니다> 홈페이지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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